얼마전 길을 걷다, 손에 스마트폰을 든 채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걷고 있다는 걸 깨닫고 화들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부터는 어딘가로 이동할 때 항상 팟빵이든 뭐든 켜놓고 방송 프로그램 속 패널 게스트들이 잡담하고 떠드는 걸 들으면서 다니곤 하죠. 깜빡하고 에어팟을 집에 놓고 온 날은 뭔가 빠진듯 허전하고 그렇습니다. 이것이 중독인가, 하고 매우 심각하게 고민이 듭니다.
우리 뇌에 적합한 현실은, 아마 대부분 지루하고 별 자극 없는 시간으로 채워진 일상일 겁니다. 시간을 돌려 스마트폰 이전 시대를 상상해 보죠. 어딘가로 이동을 하거나 사무실 같은 자리에 앉아 일할 때, 주위에 누가 있어도 대부분 혼자가 된 기분이 들었을 겁니다. 가족과 집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도 중간 중간 아무 말 없이 쉬고 있는 시간들이 반드시 있었을테죠. 친구, 지인들과 만나면 대화와 대화 사이 침묵이 지속되는 시간이 간간히 끼어 있었겠죠.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시간의 여백을 재빨리 스마트폰 속 컨텐츠들로 채울 뿐 아니라, 스마트폰 속에서 다른 친구 지인들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옛 시절의 '현실'은 다분히 내가 있는 공간, 내가 보낸 지루한 시간, 나와 만나는 사람 등등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런 물리적 제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겠죠. 친구가 멀리 떠나면 언제 다시 보나, 다시 만나서 대화할 날이 오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테고.. 내가 어느 직장에 소속되면, 다른 직장의 사정은 이제 고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 일단 다른 직장 정보를 접할 수조차 없었을테니까요. 멀리 떨어진 누가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사는지는 중요하지도 않고 알 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시대에 나는 스마트폰 사용을 통해 과연 그 시절의 사람들보다 나의 현실 세계를 실제로 확장 시켰는가? 내 현실의 범위와 가능성은 그 때보다 더욱 커지고 무궁무진해졌는가? 과연 그럴까, 의문이 들곤 합니다. 기술이 발전했다고 현실 인식을 할 수 있는 우리의 감각 기관과 뇌기능이 같이 진화한 건 아닐 테니까요. 그래서 스마트폰에 빠져 있다 원래의 내 현실로 돌아오면 굉장히 초라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다시 스마트폰으로 들어가게 되고. 이런 식으로 자주 현타를 느끼니까, 자기 현실에 불만족하게 되고, 그러면서 남의 인생과 자신을 비교하기도 쉬워진게 아닌가 싶습니다. 진짜 문제는, 스마트폰 속의 남의 인생이란 것도, 알고보면 가공된 현실에 불과하다는 거죠. 우리는 누군가의 인생과 우리 자신의 그것을 비교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이라 우리가 착각한 것과 우리 인생을 비교하는 꼴이 되었지요.
누군가 골방에 쳐박혀서 두껍고 지루한, 오래된 옛 서적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읽고 있다고 하면, 뭔가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스마트폰으로 실시간으로 날라오고 떠먹여주는 최신 정보들이, 과연 오래전 쓰여진 옛 서적의 내용보다 앞으로의 인생과 경력에 더 큰 도움이 될까요? 검증된 바는 없지만, 우리는 이미 그럴거라 믿고 있죠.
스마트폰으로 사람들과 연락은 하지만 그럴수록 실제로 접촉하는 시간은 줄어들어서 점점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과 연결 되어 있고 연락을 주고 받는다고 믿긴 하지만, 우리의 감각기관까지 속일 수는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대상과의 대화는 그냥 상상 속 인물로 인식될 뿐입니다. 하지만 이미 필요한 메시지는 전부 전할 수 있으니 만날 필요는 없을테고. 쉽게 연락할 수 있는 도구가 결과적으로 만남을 차단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과연 스마트폰에 이대로 중독되어도 괜찮은 걸까요? 정말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