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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맘대로 Aug 23. 2024

스쿠버 다이빙의 추억

오래전 태국에서 스쿠버 다이빙 오픈워터 자격증 코스를 수료한 적이 있다. 방콕의 여행자 거리 카오산 로드에서 새벽에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마침 가끔씩 다이빙을 즐기러 온다는 다른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 오픈워터 코스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수영장에서 먼저 충분히 연습 후 바다로 들어가는데, 바다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가끔 몇몇이 두려움에 포기하는 일도 있다고 하니 설레면서도 괜히 걱정이 되었다. 배를 타고 꼬 사무이 섬을 지나 울릉도보다 더 작은 크기의 꼬 따오 라는 이름의 섬으로 들어갔다. 참고로 여기서 '꼬'는 태국어로 '섬'이라는 뜻이라 한다. 꼬 따오엔 우리 말고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온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들은 대로 강의도 듣고 수영장에서 충분히 반복해서 연습도 한 후, 배타고 나가 입수를 시작했다. 잠수복과 산소통을 메고 밧줄을 잡고 바다에 들어가는데, 덜컥 겁이 났다. 동남아 바다라 멀리서 볼 땐 물이 맑아 투명할 줄 알았는데, 밧줄로 이어진 바다 깊숙한 길은 앞이 잘 안 보일만큼 어두컴컴했다. 수압 때문이라기 보다는 심리적인 압박이 크게 느껴졌다. 순간 나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조금씩 들어갈수록 오히려 시야가 트이는 것이 느껴졌다. 


서서히 바닷속 깊이 들어가면서 여러번 침을 삼키며 귓 속 압력 균형을 맞췄지만, 바닥 모래에 발을 디딜 때까지 주기적으로 가슴과 머리에 압박이 느껴졌다. 중간에 머리가 좀 띵한 느낌이 들었지만 곧 해소되었다. 드디어 18미터 깊이 모래 바닥에 발을 디뎠다. 나를 비롯해 오픈워터 코스에 참여한 몇 명과 선생님만이 보이고 숨쉬고 내뱉을 때 나오는 거품 소리 외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때였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답답했던 가슴도 시원하게 풀렸다. 머리 속에서 생각이 사라지고 온 몸 구석 구석 감각이 일깨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걱정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고요히 그 공간, 그 순간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이 들며 평온한 감정이 찾아왔다. 


스쿠버 다이빙을 할 때처럼 물 속 깊이 들어가게 되면 몸 주위를 누르는 물의 압력이 올라가며 우리 몸의 심장과 혈관을 비롯한 심혈관계는 강한 압박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산소 부족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우리 몸을 구성하는 수많은 세포들 속 유전자는 여기에 반응해 SIRT (Sirtuins)라는 효소군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SIRT 효소는 평소 세포 속에서 염증, 대사, 신호 전달, 독성 산소 제거 등 역할을 하며 세포가 생존하는데 필수적인 기능들을 수행한다. 강한 수압을 느끼면 몸 속 세포들은 위기를 느껴 평소보다 더 많은 SIRT 효소들을 발현하게 되고, 그 덕분에 우리 몸 속 심혈관계는 높은 수압에서도 곧 안정을 찾게 된다. 


내가 스쿠버 다이빙에서 18미터 지점에 착지한 후 느껴지는 안정감과 편안함도 바로 이같은 SIRT 발현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연구 중에 있지만, 이런 현상을 보고 과학자들은  우리 몸 속에서 항산화 기능을 하는 약, 심혈관계 질병 개선을 위한 약 등을 개발하는데 있어 바로 이 SIRT를 만들어내는 유전자를 타겟으로 삼아 연구를 진행 중이다. 


평소 몸과 마음이 편한 쪽으로만 움직이고, 스트레스와 걱정을 피해 살기 위해 게으르게 살다 보면, 우리 몸도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져 버린다. 머리를 쓰지 않으면 머리가 굳는다는 속설처럼, 새로운 상황에 부딪히거나 스트레스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일을 게을리 하면, 우리 몸도 그에 맞춰 최소한의 일만 하고 그 이상의 일은 하지 않게 된다. 우리 몸을 일깨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끔씩이라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힘든 일 하기 싫은 일을 굳이 맞닥뜨려 해결하려 노력하고, 끊임없이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스쿠버 다이빙을 즐기는 사람들 중 다이빙에 중독되었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분들의 표현에 의하면 바다에 잠수해 들어가는 일은 늘 새롭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것은 물론 전세계 모든 바다속이 끊임없이 변하는 대자연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앞서 말했듯 우리 세포가 평소 하지 않던 새로운 일, 즉 평소보다 더 많은 SIRT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며 세포의 생존 감각 하나하나를 일깨우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마치 요가를 하며 평소 쓰지 않던 근육에 자극을 줄 때 찌뿌둥했던 몸이 개운해지는 것처럼, 평소 사용하지 않던 세포 기능을 활발히 사용하며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몸의 반응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어한다.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렇게 얻은 것으로 나중에 편안한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도 분명 그 비중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편안한 상태는 죽음 뒤에 더이상 움직이거나 생각할 필요가 없는 상태라는 것을 떠올려 보면, 계속해서 생기 넘치게 늘 젊게 사는 방법은 그와 같은 바램과는 반대로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머리가 굳었다는 이유로 머리 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주기적으로 머리가 아플만큼 머리를 쓰고, 하기 싫은 운동도 주기적으로 틈틈이 하고, 골치 아픈 일 미루고 싶은 일 복잡한 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작정 시작해서 스트레스를 견뎌보는 것, 그럴 때마다 우리 몸은 한동안 쓰지 않던 기능들을 쓰며 녹슬어가는 감각들을 일깨우고 우리 몸과 뇌를 좀 더 생동감 있게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참조

https://www.nature.com/articles/s41392-022-01257-8

https://pubmed.ncbi.nlm.nih.gov/24969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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