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시절의 파피루스에서 "요즘 젊은이들 버릇이 없다" 는 내용이 확인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어느 시대나 세대간 갈등은 늘 있었다는 의미다. 이것은 기성 세대가 구축해 놓은 질서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은 젊은이들의 속성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생물학적으로 윗세대에 반항하도록 유전자에 프로그래밍된 탓일 수도 있다. 또는 한 세대와 그 다음 세대가 경험하는 시대상이 완전히 달라져서일 수도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닐 것이다.
이를테면 1930년대 태어난 사람과 1960년대, 1990년대 태어난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한국에서 1930년대에 태어난 사람은 식민지 상태의 국가에서 태어나 일본군의 지배 속에서 자주 공포에 시달리고, 태평양 전쟁과 2차 대전으로 인해 간접적으로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낸다. 청년이 되니 6.25가 터지고 모두가 가난한 세상에서 하루하루 버티며 산다. 1960년대 태어난 사람은 가난하지만 지속적으로 경제가 발전하는 국가에서 살며 하루 하루 주변에 건물이 올라서고 점점 더 발전하는 세상을 경험한다. 청년이 되었을 땐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경제가 발전하며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커지는 세상을 경험한다. 1990년대 태어난 사람들은 이미 한참 발전한 국가, 민주화된 국가에서 태어나 아무런 부족함 없이 자라지만 한편으로 부모 세대만큼 부를 축적하거나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한 채로 청년이 된다.
서로 다른 시대를 태어난 사람들은 외부에서 서로 다른 자극을 받고 다른 경험을 하며 자란다. 서로 다른 자극과 경험은 사람들의 뇌를 서로 다른 형태로 발달 시킨다. 즉 같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서로 다른 시대를 살게 되면 뇌 자체가 다른 형태로 발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 뇌 발달이 마무리가 되면, 이들이 같은 공간 같은 시간대에 만나게 되었을 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엔 이처럼 서로 다른 시대를 경험한 부분이 매우 클 것이다. 과거 PC나 삐삐도 없던 시절의 사람들이 태어나자마자 초고속 인터넷이 깔려 있고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인터넷 네트워크 생태계에 바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과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다른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이런 상태에서 윗세대들이 아랫세대들을 보며 '근성이 부족하다' '우리 때처럼 스스로 공부를 안한다' '버릇이 없다' '꿈을 갖지 않는다' '너무 돈을 따지고 다른 가치관에 대한 개념이 없다' 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지금 자라나는 세대들은, 윗세대도 그랬고 그 윗윗 세대들도 그랬듯, 자신들이 겪고 있는 시대에서 잘 생존해내기 위한 최적의 것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최선을 다해 습득하고 있다. 다만 습득해야 할 최적의 것들이 그 윗세대, 윗윗 세대의 그것들과 다를 뿐이다. 지금 시대에서 쭉 이어질 앞으로의 시대, 즉 요즘 애들이 살아갈 시대는 생존을 위해 '근성이 많을 필요도 없고', '윗세대처럼 스스로 공부를 하기 보다 각종 인강을 보고 해도 충분하며' '버릇이 있을 필요도 없고' '꿈을 꾸는 것이 큰 도움이 안되며' '다른 가치관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것이 우월 전략인' 시대라는 의미다.
윗세대가 살아온 시대는 한국이 경제 성장기였고 나라의 주요 산업이 제조업이었다. 제조업은 규격화된 인재들이 많이 필요한 시대라 학교 공부 열심히 하고 회사에 취직해 정년 퇴임 때까지 열심히 일만하면 가정을 꾸리고 먹고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요즘 애들이 살아갈 시대는 AI 를 비롯한 수많은 기술 혁신으로 인해 한 치 앞을 내다보기도 힘든 시대가 될 것이다. 그런 시대를 일찍부터 경험한 아이들의 뇌와 몸은 바로 그 시대에 맞게 최적화되어 성장해 왔을 것이며, 그렇게 최적화된 뇌와 몸은 당연히 그 이전 세대들의 뇌와 몸과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 더 앞으로의 시대에 최적화되어 있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결국 윗세대들이 요즘 애들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이미 윗세대들의 생각이 시대 흐름에 뒤쳐졌기 때문이다. 윗세대들이 살아온 시대는 성실과 끈기만 있으면 예측 가능한 인생을 살 수 있고 집과 결혼, 출산 등 기본적인 생물학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희망이 있던 시대였다.
요즘 애들이 살아갈 시대엔 웬만한 직장에서 일해서는 평생 모아 집 한 채 사기도 힘들며,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었고, 결혼 여부와 상관 없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수많은 학문과 산업 분야가 몰락하거나 떠오르고 있으며, 하루가 다르게 각 분야의 흥망성쇠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 세대의 사람들은 인생을 조금씩 축적하며 쌓아올리는 것으로 여겼지만, 요즘 애들이 사는 시대는 더이상 그런 식으로 살기 어려운 시대라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윗세대들이 요즘 애들을 가르치려 들거나 못마땅한 부분을 지적하는 게 맞을까? 지금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사는 것이 최적인지는 요즘 애들만이 안다. 그런 시대에서 태어나 최적화되어 성장했기 때문이다. 구형 모델이 신형 모델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