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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시대의 자기 확신, 자기 강화

by rextoys

최근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사람들이 극우 유튜버에 경도되어 현실에서도 극단적인 정치 행위를 하는 현상이 늘고 있다.


이것을 보고 평범한 사람들이 해당 유튜버들에 의해 속거나 휘둘려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다, 라고 판단하는 것은 오류다.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나 SNS의 특징은 사람들이 자신과 성격, 생각, 감성, 취향 등등이 비슷한 사람들의 컨텐츠에 더 공감한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자신과 여러 면에서 판이하게 달라 이해 불가능한 사람의 컨텐츠를 보며 '학습' 내지 '공부' 할수는 있지만, 공감을 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이런저런 그럴듯한 주장을 해도 그런 주장을 흥미롭게 제3자 관점에서 지켜보고 판단할 수는 있어도 심적으로 공감하진 않는다는 뜻이다.


이전 시대와 소셜 미디어,SNS 시대인 지금 시대에 있어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과거엔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살았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스스로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 한 명을 찾는 것도 공간적, 물리적으로 매우 힘들었고, 같은 삶의 공간을 영위하는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과 다른 성향의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과 닮은 사람들을 유튜브 등에서 쉽게 찾아 그들이 만들어내는 컨텐츠를 소비하면서 자기 확신을 갖기 쉬워지게 되었다. '아, 내 생각이 잘못된 게 아니구나' '내가 느낀 감정을 정확히 이 사람들이 설명해주고 있구나' 하면서.


이것은 즉 모바일 세계에서 자신과 닮은 사람들을 쉽게 찾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과거처럼 주눅 들거나 자기 검열, 스스로를 비판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정신 건강 측면에서 개인에게 매우 바람직한 현상일 수 있다. 한 때 성폭력을 당한 사람들이 미투 운동을 시작하고 그런 운동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나, MBTI 등 성격 테스트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자기 마음을 분석하는 심리 상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이 소셜 미디어와 SNS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2010년대 중반 이후라는 점은 이 현상을 뒷받침한다.


이렇게 소셜 미디어 세계 속에서 자신과 닮은 사람들만 찾는 사람들은, 비교를 할 때도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비슷한 사람과 비교하고, 모바일 세계에서 누군가와 싸우게 되어도 비슷한 사람과 싸우게 된다. 전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사람과는 이제 비교도, 싸움도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어차피 서로 공감도 이해도 안가서 관심도 안가기 때문이다. 그냥 무시할 뿐이다. 이를테면 정치적으로 극우와 극좌가 서로를 강하게 비난하고 무시하며 싸우곤 하는데, 이는 알고보면 둘이 비슷한 감성, 취향, 성격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당연히 평범에서 거리가 매우 먼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자라면서, 인생을 살면서 남들과 많이 다른 자신의 성향 때문에 주위로부터 특이한 사람, 또라이 취급을 받고 많은 경계와 공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위축된 삶을 살며 스스로를 비관하고, 자존감이 낮은 상태로 살다가, 어느 날 유튜브와 SNS 속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 행복하고 부유하게 사는 유튜브와 SNS 속 그들을 보면서 속에서 복잡한 감정이 치솟아 오른다. '왜 나는 저렇게 살지 못하지?' '어떻게 하면 저 사람처럼 잘 살 수 있을까?' '나도 저렇게 인정받고 살 수 있을까?'


그러면서 그들의 말을 추종하고, 따르고, 공감 버튼을 누르며 빠져든다. 유튜브 세상 속 성공한 그들은 자신과 닮은, 내가 추구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된다. 이제까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성공 버젼, 행복 버젼을 따라야 한다는 강요에 피곤하고 지친 상황에서 드디어 삶의 목표이자 궁극적 모델을 찾은 느낌을 받게 된다. 이는 그동안의 혼란스러운 삶을 깨끗하게 잊게 해주고,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게 하는 도파민 자극제로 다가온다.


그 결과가 바로 극단적인 유튜버들의 말을 듣고 현실에서 과감한 행동을 벌이는 사람들이다. 2020년 트럼프가 바이든에 패했을 때도 정확히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 비록 언론에서는 그들만 조명했을 뿐이지만, 이미 우리 일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자신과 닮은 유튜브와 SNS를 소비하며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 신념을 강화하고 있다. 그래서 점점 극단적인 생각들이 퍼지게 된다.


예를 들어 무조건 돈 많이 벌어 좋은 입지에 사는 것만이 최고의 인생이다 / 내 자식이 OO 학과 OO 대학에 진학해야만 한다 / 세상은 신분제 사회가 되었다 / 세상엔 빨갱이들이 가득하다 등등


이 생각들은 사실, 실제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반영하기 보다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동안 많았다는 것을 반영한다. 사람들 중에는 다른 모든 가치보다 돈을 최우선으로 하고 남을 등급화시켜 보는 사람들, 정치적으로 편을 갈라 자신과 다른 편을 해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다. 지금과 같은 시대엔 그런 비슷한 사람들이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 SNS에 모여 자신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자기 확신을 가지기 쉽다.


따라서 세상에 점점 그런 극단적 생각과 가치관이 퍼지고 있다기 보다는,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점점 더 자기 확신을 갖고 주변에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 컨텐츠로 퍼뜨리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수 있다.


뭐든지 극단적인 것은 사회나 개인 모두에게 문제라고 본다. 과도한 자기 강화가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사실 현실 혹은 삶의 진실과 매우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 삶의 진실은 게다가 하나가 아니다. 세상을 알고보면 사람 숫자 만큼의 현실, 삶의 진실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지만, 우리는 타인과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자기가 믿는 현실과 삶의 진실을 끊임없이 타인의 그것과 교류하고 조정하며 살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장기적으로 결국 스스로의 현실, 인생에 대한 이익으로 돌아오는데, 내가 구축한 세계, 내가 빠진 세계는 실제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나 자신에게 현실적 괴리감, 좌절만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와 비슷하고 닮은 누군가가 있더라도,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이 공감간다 하더라도, 그들이 겪는 현실과 인생은 엄연히 나의 그것과 다르다. 깊이 들어가보면 내가 내 삶의 만족을 위해 추구해야 할 가치는 내가 공감하는 그들과 매우 다를 수 있다. 그 모든 것들은 결국 끊임없이 나와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부딪히며 수정하고 미세 조정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추구하는 무엇을 현실에서 이루는 것은 결국 세상에 있는 나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현실의 실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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