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과 식물, 그리고 미생물들은 모두 알고보면 공통의 조상 생명체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조상 생명체에서 수없이 많은 세대를 거쳐 오다 여러가지 이유로 종이 갈라지는 분기점을 지나왔고, 그렇게 수없이 많은 분기점들을 거쳐 오늘날 지구는 수없이 다양한 생물들로 가득 차게 되었죠. 당연히 모든 생물들은 비슷한 재료들로 각자의 몸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생명체에게 단백질과 아미노산, 지방 성분, 당분과 탄수화물들은 필수이며 그 외 수없이 많은 화합물들도 공통의 생명체 구성 자원으로 쓰이고 있죠. 비유를 하자면 동일한 레고 블럭을 이용해 어떤 친구는 자동차 모형을 만들고 또 다른 친구는 비행기 모형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생물들은 비슷한 재료로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여러가지 물질들을 만들게 되고, 그래서 의도치 않게 어떤 생물이 만든 물질이 종이 완전 다른 다른 생물에게도 의미 있는 효과나 작용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젖소가 생산하는 우유를 사람이 맛있게 먹고 우유 속 여러 영양분을 흡수하는 경우, 효모균이 발효해 만든 음료를 술의 형태로 마시는 경우, 상처가 난 곳에 약초를 갈아 바르는 경우가 이에 속합니다. 이는 생물들의 몸을 구성하는 여러 기관과 조직들이 어느 정도의 유사성과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외계에서 온 외계인에게는 지구상의 많은 생명체에게 치명적인 병균이나 독 같은 것들이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겠죠. 외계 생명체는 생명의 원리와 작동 방식 자체가 지구 생명체와 다를 테니까요.
지구 위 생물들이 모두 비슷한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또한 현재 널리 사용되는 약들의 대부분이 식물, 동물 및 미생물에서 유래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강력한 마약 진통제로 사용되는 모르핀은 양귀비 꽃에서 추출한 약이고 해열 진통제로 널리 쓰이는 아스피린은 버드나무 껍질, 페니실린을 비롯한 여러 항생제들은 특정 곰팡이 등 미생물에서 추출한 약들이죠. 이같은 자연물 유래 약들은 대개 그 약 성분을 만들어낸 생물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모르핀과 아스피린은 곤충이나 동물이 먹고 신경 마비나 체내 심한 면역 반응으로 고통을 받도록, 페니실린 등의 항생제들은 미생물들이 주변 경쟁 미생물들을 죽이고 자기만 살기 위해 만드는 독과 같은 것들이죠. 과거 농촌에서 거머리가 농부들의 맨다리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 먹곤 했는데, 이 때 거머리는 '히루딘' 이라는, 혈액이 굳는 것을 막는 성분을 내뿜습니다. 피를 빨아먹을 때 피가 굳어버리면 안되니까요. 이 히루딘이라는 성분 역시 혈액 응고를 막는 목적으로 약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자연물 유래 성분들을 약으로 사용할 땐 농축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양귀비 꽃봉오리를 와구와구 씹는다든가 버드나무 껍질을 씹는다고 금새 마취가 되거나 통증이 바로 가라앉진 않는다는 의미죠. 어느 정도 고농축으로 사용해야 사람에게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페니실린의 경우는 발견 후에도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상품화가 되어 널리 쓰일 수 있었는데, 이는 초기에 페니실린을 만들어 농축시키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약효를 발휘하기 위해선 이런 약 성분들을 고농축시켜야 할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해당 약 성분들을 만든 생물들이 방어하려 했던 천적들, 그러니까 곤충이나 벌레, 작은 동물들 혹은 미생물보다 사람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죠. 아무래도 작은 생물 보다는 큰 생물에서 어떤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양이 좀 더 많아야겠죠? 물론 극소량으로도 큰 생물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약성분도 있습니다만 그런 예외를 차치하고서라도요. 두 번째 이유는 우리 몸의 자체 방어능력 때문입니다. 약성분이 몸에 들어오면 우선 우리 몸은 그 약성분을 독이나 몸에 피해를 끼칠 물질로 인식해서 방어 시스템을 가동 시킵니다. 해당 약성분을 분해하기 위해 화학 반응을 일으킨다든가, 온 몸에 면역 반응을 일으키기도 하고 약성분을 재빨리 몸 밖으로 배출해 버리죠. 그런 모든 방어 시스템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양만큼 우리 몸에서 약효를 발휘하게 되는 겁니다.
헌데 이쯤에서 뭔가 좀 이상한 점을 눈치채셨을 겁니다. 동식물, 미생물이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물질이라면, 즉 천적 등에게 피해를 주는 독으로 해당 성분들을 만든 것이라면, 왜 그게 우리 몸에는 약이 될까요? 그리고 우리 몸은 왜 그 약 성분으로부터 우리 몸을 지키기 위해 방어 시스템을 가동 시킬까요?
여기서 곧 '약은 곧 독이다' 라는 명제가 탄생합니다. 거의 모든 약 성분은 독 맞습니다. 하지만 약이기도 하지요. 독 작용을 할만큼 강력하게 우리 몸에 이런저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약도 될 수 있다는 뜻이죠. 다만 그 용량을 얼만큼 조절하느냐에 따라 약도 되고 독도 될 수 있는 겁니다. 싱겁고 밍밍한 요리에 소금과 후추, 고춧가루를 조금 뿌리면 칼칼하면서 맛있는 음식이 될 수 있겠지만 너무 많이 뿌리면 그 요리는 버려야 할 수밖에 없죠. '간이 제일 중요하다' 라고 말했던 쉐프도 있었는데 이는 실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약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 입니다. 너무 싱거우면 몸 속 신경 반응이 미미해서 맛이 심심하다고 느낍니다. 소금이나 설탕 등등으로 간을 잘 맞추면 혀에서 신경 전달이 '적절하게' 이루어져 뇌에서 쾌감 호르몬이 나오고 위장은 음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간이 지나치게 세면 우리 몸 속 신경이 깜짝 놀라 독성 물질이 들어왔다고 인식하고 구토 작용으로 음식을 내뱉고 거부하게 되죠. 약 역시도 마찬가지 입니다.
너무 적은 양의 약은 우리 몸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기 어렵기 때문에 효과가 없고, 너무 많은 양의 약은 몸에 독성 반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언제나 '적당한' 양이어야 약효를 나타낼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우선 약이냐 독이냐를 결정짓는 것은 그 농축된 양이 얼만큼이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몸에 가장 좋은 보약은 잠이다, 라는 말도 비슷한 견지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이 자면 오히려 몸에 해로울 수 있으니 엄밀히는 적당히 자야 잠이 보약이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또한 약은 독이기 때문에 약으로 쓰일 수가 있습니다. 독이란 결국 우리 몸 속에서 생명 유지 활동에 필요한 여러가지 생물학적 활동을 좀 더 강하게 일으키거나, 멈추거나 약하게 만드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독인 것입니다. 이것은 수술처럼 몸에 칼 등 날카로운 기구를 사용하는 것도 마찬 가지 입니다. 수술에 쓰이는 칼과 사람을 해칠 때 쓰는 칼, 고기를 자를 때 쓰는 칼은 원리상 같습니다. 해당 부위에 피해를 입히는 것이죠. 우리 몸은 수술에 쓰이는 칼과 우리 몸을 해치기 위해 쓰는 칼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결국 수술의 성패는 얼마나 최소한의 피해를 입혀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우리 몸이 얼마나 잘 버티고 의도한 대로 반응을 해주는가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기계를 고칠 때는 기계를 모두 뜯은 후 부품을 뜯고 용접하고 망치로 때리기도 합니다.. 모두 과하게 하면 기계를 부술 수 있는 행위입니다만 적당하게 하기 때문에 기계를 수리할 수 있는 거겠죠.
밥도 너무 많이 먹으면 탈이 날 수 있고, 기분 좋게 마시는 술도 너무 많이 마시면 중독되거나 심지어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물도 너무 많이 마시면 구토가 나올 수 있구요. 몸에 들어가는 모든 것은 결국 어느 정도는 그 양에 따라 독이 될수도 약이 될수도 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약은 독이 되는가 약이 되는가를 가르는 그 '적당한 양'의 기준 폭이 매우 좁다는 점이 다릅니다. 조금만 적게 써도 약효가 없을 수 있고 조금만 많이 써도 몸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의미죠.
약에는 동식물, 미생물에서 추출한 화합물 외에도 사람이나 동물에서 추출해서 비슷하게 만든 단백질, 세포, 유전자나 유전자 복제품 등도 있으며 유산균 제제처럼 균주 자체도 약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약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의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고 있으며 약의 기능들도 더욱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몇 해 전 코로나 백신은 mRNA라는, 유전자 복사본을 약으로 사용했고 최근 널리 쓰이고 있는 비만약은 작은 단백질입니다. 한창 연구되고 있거나 조금씩 사용되고 있는 줄기세포 치료제들은 세포 그 자체를 약으로 사용하고 있죠. 약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면서 어디까지가 약인지, 즉 전통적으로 쓰여온 화합물과 작은 단백질 정도까지가 약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복잡한 단위 (세포 등)도 약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슨 이름으로 불리우든 몸 속이나 몸 표면에 적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약이라는 범주로 넣으면, 모든 약은 결국 적정한 농도일 때만 우리 몸에 유익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