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 사이에 이루어진 수많은 뇌과학 연구들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문제와 행복, 불안과 안정감, 공허와 충족감 등에 대해서 많은 답을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뇌과학이 인간의 마음에 대해 새로운 과학적 진실을 밝혀낼수록, 이미 우리들의 조상들은 먼 옛날부터 지금의 뇌과학 연구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것과 같은 삶의 지혜와 방식을 익히고 있었다는 것도 밝혀지고 있죠. 불교나 천주교, 기독교 등 종교적 가르침이나 인도의 요가와 명상, 탐욕에 대한 경계와 금욕적 삶, 절제된 식사와 단식 등등 언뜻 듣기에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활동들이 사실은 겉에서 보여지는 것과 전혀 다른 효과를 내는 활동들이라고 이제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수도승과 스님, 신부님의 지루하고 금욕적이며 때론 고통스럽기까지 한 삶은 오히려 지속적인 마음의 평안과 만족감, 때로는 쾌감마저 일으키는 삶의 한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종교'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종교가 없어도 그러한 삶의 방식이 비슷한 효과를 줄 수 있으며, 이는 특히 나이가 든 사람, 혹은 젊더라도 예민하고 섬세한 성향을 타고난 사람에게 더 큰 효과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뇌가 작동하는 원리를 완벽히 설명하는 것은 현재까지의 과학 연구로는 부족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 사실에 있어서는 점점 이견이 없는 것으로 과학적 합의가 모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정신 건강이나 행복, 만족감은 뇌의 보상 회로와 관련 신경 호르몬들과 관련 있다는 것, 또 하나는 불안, 우울, 공허와 같은 정신적 문제는 뇌 속 염증에 의한 뇌세포 파괴 등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교한 원리는 오히려 이해에 방해가 되므로 연구된 바를 조금 왜곡해서라도 알기 쉽게 설명해 보죠. 우리 뇌를 하나의 기계처럼 단순하게 생각해서 뇌가 다양한 일을 하는 신경 세포들로 가득 차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리고 뇌의 가운데 부위 어딘가에 '행복 회로' 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실제 사실과 조금 다릅니다.) 이 행복 회로는 매우 민감해서 쉽게 고장이 납니다. 신경 세포들이 건강하게 제 일을 할 땐 이 행복 회로가 정상적으로 운행됩니다. 우리가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성취를 할 때, 즐거운 일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이 행복 회로가 작동하면서 우리에게 만족과 쾌감, 안정감을 주죠. 하지만 만약 이 행복 회로를 과도하게 작동시키면 고장이 나는데, 이 때는 아무리 행복 회로를 작동 시켜도 제대로 행복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불안과 우울 등의 정신적 문제가 발생합니다. 또 하나 이 행복 회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뇌를 채우고 있는 신경 세포 어딘가에 염증이 발생해 신경 세포들이 파괴되거나 기능을 못하는 경우 입니다. 불충분하지만 대략 이 정도로 이해해도 무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이 신경 세포들의 건강도와 염증 수준, 행복 회로의 견고함 정도가 모두 다릅니다. 이는 육체적 건강과도 관련이 깊고, 어머니 뱃 속에 있을 때의 상태와 어린 시절의 경험, 음식, 인생에서의 성취, 인간관계, 그리고 유전적인 요인 등 수많은 요인들이 작용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 중 무엇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밝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무튼 어떤 사람은 뇌 신경 세포가 쉽게 염증에 의해 파괴되거나 조금만 행복 회로를 과열 시켜도 금방 회로가 고장 나기도 해서 조심하지 않으면 쉽게 정신 건강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뇌 신경 세포와 행복 회로 모두 튼튼해서, 아무리 행복 회로를 많이 가동 시켜도 별 문제가 안생기고, 염증도 덜 생기는데다 뇌 신경 세포 역시 단단해서 늘 정신 건강이 좋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전자의 사람 (뇌세포와 행복 회로가 예민한 사람) 과 후자의 사람 (뇌세포와 행복 회로가 탄탄한 사람) 이 어느 쪽의 뇌가 더 우수하고 열등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전자의 사람들은 오히려 인생을 살면서 후자의 사람보다 더 크고 강렬한 쾌감을 느낄 기회가 많고 그만큼 쉽게 정신적 문제에 빠질 수 있지만 후자의 사람들은 그럴 기회가 적은 대신 (즉 그 정도로 행복 회로가 강한 즐거움을 일으키지 않고) 어떤 역경에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정신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아직 학술적 결론이 난 것은 아니지만 이 두 타입의 뇌를 가진 사람들은 과거에 원시 인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며 진화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열을 가릴 문제가 아니라 다양성의 관점에서 인류종에 나름의 기여를 하며 진화해 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죠.
다만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예민하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칼같이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뇌가 극단적인 예민과 둔함 사이 다양한 스펙트럼상에 위치하고 있겠죠. 그리고 위에 언급했듯 타고난 부분도 있지만 후천적인 삶의 경험으로 계속 변할 수 있고, 또한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이 들면서도 크게 변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신경 세포의 건강도 줄어들고 행복 회로의 가동률(?)도 떨어지겠죠.
그래서 정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느 쪽 성향인지 분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뇌과학, 그리고 조상들의 삶의 지혜는,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나름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약 하면 무조건 해롭고 기피해야 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달달하고 맵고 짜고 기름진 자극적인 음식은 우리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죠. 마약 중독은 누구나 나쁜 것으로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하루종일 게임에 빠지거나 소셜 미디어 영상, OTT에 중독 되는 것은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약 중독이 우리 뇌에 미치는 작용이나 자극적인 음식과 중독적인 영상 시청 등등이 뇌에 미치는 작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죠.
아무리 약한 중독적 자극도 장기간 지속되면 우리의 뇌신경 세포와 행복 회로에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서서히 끓는 물 속 개구리가 서서히 죽어가면서도 잘 모르는 것, 지붕에 비가 새는 것을 놔두다 점점 더 지붕 구멍이 커지는 것이 이와 같죠. 또한 위에 언급했듯, 뇌의 튼튼한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좀 더 작은 자극에도 쉽게 뇌가 큰 즐거움을 느꼈다 쉽게 피로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면 마치 마약 중독이 된 것처럼, 우리 뇌는 점점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되고 어느 순간 이제 심심한 자극에는 아무런 감흥도 없는, 그야말로 지루하고 권태적인 뇌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인생이 권태로움에 빠진다는 말은, 뇌의 행복 회로가 제대로 기능을 못하고 뇌신경 세포들이 상당히 지쳤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권태가 그저 삶이 좀 더 지루해졌다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죠. 권태에 빠지면 일도 하기 싫고, 사람도 만나기 싫으며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니 계속해서 자극적인 활동들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그런 자극적 활동들은 때로 쓸데없이 비용이 많이 들면서 정작 제대로 된 즐거움이나 행복은 주지 못하죠. 그 뿐 아니라 그런 자극적 활동들은 오히려 더 심한 중독 상태에 이르게 하기도 합니다. 정말로 마약 중독에 비슷한 뇌가 되어가는 것이죠.
이는 사실상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 입니다. 우울, 불안, 무기력, 삶의 공허감 등 표면으로 드러난 증상이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를 뿐이죠. 예민한 사람, 나이든 사람, 건강이 좋지 못한 사람일수록 정신 건강은 더욱 쉽게 나빠지며 이같은 정신 문제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쉬워집니다. 결국 거의 모든 정신 건강은 뇌신경세포가 자주 파괴되고 행복 회로가 고장난 것과 관련이 깊으니까요. 그런데 증상을 알아도 현실에서 치유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오히려 어디가 다치거나 부러지고 심하게 상처가 나면 치료가 쉬운데 말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치료를 할 방법을 찾는 것' '개선 방법을 찾는 것' '그런 방법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 등등의 판단과 의지를 결정하는 것이 뇌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정 주체인 뇌에 문제가 생겼으니 당연한 현상이겠죠. 문제가 생긴 뇌는 건강한 뇌와 사고 방식이 매우 달라집니다. 끈기 있게 참아가며 노력과 의지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쉽고 빠른 문제 해결 방식을 추구하게 됩니다.
사실 답은 왠만한 사람들이 아는 그 모든 것들에 있습니다. 채식을 곁들인 건강한 식단, 운동 , 제 때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 덜받는 선택들, 명상, 좋은 인간관계 등. 여기에 또 하나가 추가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어느 정도 금욕적인 삶의 방식을 유지하고 자극적인 것들을 멀리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바로 위에 언급한, 수도승이나 스님, 신부님들이죠. 어떤 원리인지 하나씩 살펴 볼까요? 우선 채식을 곁들인 건강한 식단은 장 내 유익한 미생물을 유지하게 도와주는데, 이로 인해 몸과 뇌 속 염증 발생이 줄어들고 행복 호르몬 분비가 자주 일어납니다. 적절한 운동은 몸을 튼튼히 하는 것 외에 스트레스 호르몬의 발생을 줄이고 체내 염증 발생을 줄이죠. 명상은 역시 뇌 속 염증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구요, 생활 리듬에 맞춘 충분한 수면 역시 스트레스 호르몬을 줄이고 뇌 속 노폐물을 씻어내 줍니다. 게임이나 소셜 미디어, OTT 중독, 그 외 다양한 중독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니 뇌 속 행복 회로는 늘 민감하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죠. 비슷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니 인간 관계도 만족스러울 거구요.
이렇게 해서 뇌 세포가 늘 건강하게 유지되고 행복 회로가 항상 원활히 돌아갈 수 있는 상태로 셋팅이 되면, 작은 것 하나에도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가 됩니다. 사람들은 세상 어딘가에 더 큰 즐거움, 더 자극적인 무엇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삽니다. 한 두 곳의 도시를 여행한 후 아쉬우니 세계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그걸로 부족하니 더 자극적인 여행을 시도하죠. 간단한 스포츠에 발을 들이는 것으로 만족 못하고 더 자극적인 스포츠를 추구하고, 주변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벗어나 더 맛있고 더 자극적인 음식들을 먹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 믿죠. 심지어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자신에게 더 큰 쾌감과 자극을 주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면서 사람들을 자신의 쾌감을 채워줄 소비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죠.
위에 언급했듯, 그런 활동들을 통해서도 계속해서 뇌세포의 건강을 유지하고 행복 회로를 튼튼하게 유지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습니다. 오히려 행복 회로가 둔할 경우 점점 더 자극적인 활발한 활동들을 해서 더 큰 기쁨과 행복, 쾌감을 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존재가 인류의 활동 영역과 지평을 넓혀온 것도 사실이구요. 과거 새로운 대륙을 개척하고 인류를 부유하게 해 준 신기술을 개척한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이겠죠. 물론 부작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한 것도 사실입니다만 모든 것엔 장단이 있으니까요.
다만 그런 것들로 채워지지 않거나, 오히려 헛헛함, 공허감만 더 커지는 타입이 자신이라면, 그런 길은 자신의 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정신 건강 문제를 알아채기 어려운 이유는 위에 말했듯이 사람의 뇌가 그것을 알아차리게 하는데 방해만 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지금보다 더 자극적인 무엇이 부족해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만 생각할 뿐이죠.
세상은 평생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수도승 같은 사람과, 다양한 쾌락을 즐기고 수많은 사람들의 인기와 사랑을 받는 화려한 연예인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이 둘은 매우 다른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둘 다 자신에게 허용된 수준의 적절한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며 살고 있을 뿐이죠. 서로의 뇌 구조와 상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더 짜릿한 무엇을 하지 않아서 내가 힘든 것이다' '더 대단한 무엇을 이루지 못해서, 더 자극적인 성취를 하지 않아서 내가 불행하다' 우리의 뇌는 이런 생각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이에 대한 적절한 설명으로는, 아직 우리의 이성적 뇌는 자기 자신에게 생긴 문제, 즉 뇌세포와 행복 회로에 생긴 문제를 정확히 인지할만큼 진화하지 않아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단지 우연한 계기로 금욕적인 생활에 진입하게 되었다거나, 우연한 일로 몸 속 염증을 줄여줄 수 있는 여러 활동들 (수면, 음식, 명상, 운동 등등) 을 통해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 뿐이죠. 그조차도 인과관계를 알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왜냐면 분명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갖게 된 것은 뇌가 더 건강해져서인데, 이성적 생각은 '최근 어떤 좋은 일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인생이 나아진 것 같다' '최근 좋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로 인해 행복해진 것 같다' 라는 생각을 만들어낼테니까요.
점점 정신 건강 역시 육체 건강의 하나로 다루어야 한다는 과학계의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 우리의 인생에서 건강이 차지하는 정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반면 성취나 재산, 어떤 즐거운 활동들을 할 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덜 중요할 수 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