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다이앤 엔스'는 '외로움의 책' 에서, ' 타인의 외로움을 마주했을 때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은...인간의 본질적인 취약함을 상기하기 때문이다...외로운 사람이 고통을 토로할 때....자신의 취약함을 두려워하는 사람일수록 ....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라고 말했다.
'홀로 서기' 혹은 '인생은 혼자 걷는 길' 이라는 말은 고립된 느낌과 외로운 감정을 떠올린다. 마치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내가 책임 져야 한다거나, 상처가 두려워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의미를 떠올린다. 게다가 공동체주의가 강했던 우리나라에서는 여행이나 식사를 혼자 한다거나 조직에서 다른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해 반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생이 홀로 걷는 길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남과 떨어져 혼자 살아간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다. 실은 그와 정반대의 의미에 더 가깝다.
홀로 서기란 나를 위해주는 것이 나 뿐이라는 것, 내 인생에 일어난 일 모두 내 책임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이것은 앞서 말했던 삶의 진실 - 인간은 물리적으로 서로 연결될 수 없다는 - 과 맥락을 같이 한다. 물론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과 헤어질 경우 머리 속 신경에서 실제로 통증 혹은 염증 반응이 발생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있다. 그럼에도 그 둘이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서로의 감각 기관과 신경계 역시 물리적으로 연결될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를 위해주는 것이 나 뿐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나를 위해주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나의 감각과 신경을 통해 나에게 만족과 불만족을 일으키는 것은 결국 나만이 알고 나만이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다. 누군가 나에게 아무리 그럴듯하고 좋아 보이는 물건을 준다 해도 내가 만족하는가 아닌가는 오로지 나의 몸과 마음이 결정할 뿐이며, 그것조차 내 의지로 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나는 내 몸과 마음이 어떤 것에 만족하고 불만족하는지를 알아내고 그에 따른 행동을 할 유일한 책임을 진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내 몸을 제외하고는 세상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의외로 별로 없다는 것이다. 갑자기 자산 시장의 변동이 심하게 출렁이거나 AI 등의 기술 발전으로 내 일자리가 위협을 받거나 전쟁 혹은 자연 재해가 일어난다 한들 나는 그것을 되돌릴 그 어떤 능력도 갖고 있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상황에 대응해 내 행동을 바꾸고 내 습관을 변화시켜 실행에 옮기는 것 뿐이다. 또한 그 결과 역시 홀로 책임을 지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데, 그것은 판단을 하고 실행한 주체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또 하나의 사실은, 애초에 이 세상은 나라는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즉 세상은 나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근원적인 이유가 없다. 내가 빈곤한 국가에 태어나든 부자집에서 태어나든 좋은 조건을 갖고 태어나든 그렇지 못하든 내가 반드시 태어나야만 했던 것은 아니다. 세상의 입장에서 나라는 존재는 그저 작은 버블 혹은 점 하나에 불과하며, 내가 세상을 떠난다 해도 주변인들은 슬퍼할 수 있지만 세상 입장에서는 그냥 사망자 숫자 하나가 카운트될 뿐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내가 질 수밖에 없는데, 다만 그렇다고 세상에 대한 비판을 하거나 사회 탓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얼마든지 세상을 욕하고 비판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꼭 바뀌어야 하는 당위가 있는 것이 아니며, 그런 행위가 나 자신이나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만족감을 주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를테면 누군가는 그렇게 사회 운동을 함으로써 실제로 자신을 사회 운동가 포지션에 두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이 사회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물질적, 정신적 만족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저 세상탓 남탓만 하느라 자기 시간을 낭비하느라 스스로의 인생에 더 유익한 만족을 줄 무엇인가를 얻지 못했다면, 그에 대한 책임 역시 스스로 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결국 홀로서기, 혹은 인생이 혼자 걷는 길이라는 사실을 자각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주체가 나 혼자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이 도움을 줄 수는 있을지언정 그런 사람에게 최종 책임을 부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뜻한다. 내 삶의 무게감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자기 인생에 무거운 책임감을 갖게 된다. 누군가 내 길을 방해한다면 그 사람이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든 단호히 끊어낼 수 있는 적극성을 지녀야 하며, 결과적으로 이것은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홀로서기가 되어야만 나는 나를 존중할 수 있고, 따라서 남 역시 존중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나를 존중해주는 느낌을 알고 나에게 해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그것이 남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이 세상에 홀로 던져진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처음에는 극심한 불안이 찾아올 수 있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나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같은 상황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제 아무리 대단한 권력과 부, 영향력을 가진 사람도 이같은 진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그런 사람들 주위에 현재 누가 있든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바뀌면 결국 언젠가는 홀로 남게될 수 있다는 것도.
그제서야 비로소 내가 때에 따라 나를 낮추거나 겸손한 태도를 가지는 것, 남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통렬히 깨닫는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어도 언제나 그것을 둘러싼 이해관계인들과 타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서두르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혼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할 운명에 처해 있으며, 아무리 노력해도 그 누구든 나에게 종속시킬 수 없으니 함부로 건방 떨거나 거만하게 행동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 자신에게만 피해를 줄 뿐이다. 결국 홀로서기를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나와 가깝거나 먼 모두와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자기 자식도 자신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는 사실, 아무리 어리고 생존 능력이 없는 아이도 자신과 분리되어 있으며 언젠가는 품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자식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아이 역시 그동안 응석을 받아준 자기 부모라 할지라도 결국 각자의 삶을 사는 독립된 개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결코 부모에게 함부로 할 수 없다.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하듯, 존중 받고 싶은 만큼까지만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피해를 입어도, 전쟁이나 자연 재해가 나도, 시대 흐름의 변화로 내가 큰 손해를 입게 되어도 남 탓 세상 탓만 할 겨를이 없다. 법적인 책임을 묻든 달라진 상황에 적응하든 그 상황에서도 다른 길을 뚫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든 여전히 나는 행동을 할 수 있으며, 그 행동만이 내가 선택하고 실천할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넋 놓고 손실을 감수하기로 선택한 것조차 나의 선택이며 실천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도 모두 내가 져야 한다는 걸 안다.
사회는, 그리고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의 세계가 흔들리고 충격 받는 것을 싫어한다. 따라서 나의 행동이나 생각 역시 각자의 세계를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제재를 가한다. 내가 나를 위한 선택을 할 때 여기저기서 저항이 느껴지거나 내 행동을 되돌리기 위한 온갖 논리가 나를 억누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그런 압력에 굴복한다 한들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나 홀로 져야 한다. 그 압력을 뚫고 내 뜻대로 했을 때 일이 잘못된다 해도 그 책임은 오직 나에게만 있다. 자식 때문에, 배우자 잘못 만나서, 직장 상사 때문에, 돈이 없어서,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정치인들 때문에, 부모 잘못 만나서..모두 핑계다. 하다못해 나를 죽일듯이 괴롭히는 사람을 내가 먼저 살인하고 대신 국가의 지도 밑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내 선택지에 포함되어 있다. 누구 때문에 진심으로 죽고 싶으면 왜 그 사람을 죽이는 선택은 하지 못할까? 스스로에게 비겁하기 때문이다.
홀로 서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하루를 허투루 보낼 이유가 없다. 하기 싫은 일도, 누가 시키지 않은 일도 꾹 참고 나를 위해 해야 하며, 아무리 과거에 열심히 살았더라도 그에 대한 보상을 별로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열심히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를 스스로 세울 수 있다. 아무리 늦었어도, 인생이 뜻대로 안풀렸어도 앞으로의 인생을 위해 다시 뛰어야 하고 건강이 안좋으면 건강을 챙기기 위해 남들보다 배로 노력해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인간관계에도 최선을 다해야 하며 내가 존중받고 싶은만큼 남을 존중해야 한다. 오직 나 자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