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무관으로 10년 넘게 일했으나 직장을 때려치운 노한동이라는 작가가 쓴 책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작가는 우리나라의 공직사회가 무능하고, 책임 전가하기 바쁘고, 비효율적이고 쓸데없는 일에만 집중한다고 비판한다. 실은 노한동 작가 외에도 한국 사회의 수많은 조직들이 그동안 내부 근로자들에 의해 수없이 비판 받아왔다. 대기업을 다니는 사람들도 자기가 다니는 조직이 너무 비효율적으로 돌아간다든가 쓸데 없는 일과 정치질에 온갖 에너지를 소진한다는 비판을 블라인드와 같은 게시판에 올리고,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애들 교육은 뒷전에 쓸데없는 행정만 시키는 윗선을 비판한다.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들 모두 자기가 다니는 직장에 무능한 사람들이 가득하고 엉터리 같은 시스템에 다들 쓸모 없는 일만 하는 것 같다고 토로한다. 이쯤되면 뭔가 이상하다. 어라, 그럼 이렇게 다들 비효율적인 조직에서 쓸데 없는 일만 하는데 어떻게 우리나라가 그동안 매년 발전해왔지? 혹시 지금이 정점인 걸까?
글쎄, 우선 인정해야 할 것은 사람은 결코 큰 그림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이 작은 조직을 이끌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외국에 식당을 차리는 컨셉의 프로처럼, 해외 국가에 한식을 파는 식당을 연다고 가정하자. 먼저 상가 공간을 임대하고 최대한 현지에서 한식을 만들기 위한 식재료를 구한다. 없는 재료는 한국의 아는 인맥을 통해 저렴하게 대량으로 공수한다. 현지에서 사람을 뽑아 고용하고 계약서를 작성한다. 여기까지는 계획하고 예측한대로 진행이 가능하며, 거의 모든 과정을 쓸모 있는 일로 구성해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이다.
먼저 어떻게 알릴 것인가? 마케팅 업체의 조언을 구해본다. 하지만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 현지는 우리나라처럼 모바일 마케팅이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어쩌면 해당 지역은 주요 오프라인 인플루언서들이 있어서, 그들을 찾아 무료로라도 먹여 보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실제로 어떤 마케팅이 효과가 있을지는 식당을 열고 직접 밖에 나가 사람들을 호객하든, 고용한 직원들의 친구들을 데려와 무료로 먹여보든, 현지 마케팅 업체를 통해 이런저런 방식으로 마케팅을 실행하든 여러가지를 해봐야 안다. 그 과정에서 '효율' 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다. 마케팅 업계에서는 마케팅에 돈을 쓰긴 하는데 그 돈이 대체 어디에 쓰이는지, 어떤 효과를 내는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이 떠돈다. 그만큼 사람을 끌어모으는 것은 누구에게나 작은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막막한 일이다.
그리고 한식당에서 만든 우리 음식들을 과연 현지 외국인들이 좋아해줄까? 이것 역시 파악하기 어렵다. 무료로 시식회를 열어 사람들의 평가를 받아보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어쩌면 다들 대충 맛있다고 말은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선 뭔가 두 번 먹기는 싫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머리로는 맛있다고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에 남을만큼 대단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현지인들에 맞춰 요리법을 조금 바꾸거나 향신료와 소스 등을 바꿔야 할 수도 있고, 아예 현지인이 아니라 해당 지역에 찾아오는 관광객들, 그 중에서도 한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더 옳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이런저런 시도를 해봐야 하며, 그 과정에는 당연히 뒤돌아보니 쓸데없이 했던 일들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어찌어찌해서 장사가 꽤 잘되기 시작하고, 그래서 규모를 키우기로 했다고 쳐보자. 규모를 키우고 사람을 더 고용하기 시작한다. 그랬더니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한다. 직원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사내 정치가 생기면서 손님은 뒷전이다. 요리가 손님에게 잘못 전달되거나, 간이 잘 안맞고 재료가 잘못 들어가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규모가 커지면서 처음엔 매출이 커지는가 싶더니, 이런저런 문제들이 누적되어 점점 매출이 정점을 찍고 내려오기 시작한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컨설팅을 받으면 좀 나아질까?
작은 자영업이 규모를 키우기 시작하면 그 전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 이유? 인간의 감각과 사고 체계의 한계 때문이다. 조직이 크고 시스템이 복잡해지면 한 명의 리더가 전체 그림을 세세하게 분석하고 자세히 알기가 힘들다. 뇌의 용량 부족 이런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 모든 것을 세세히 관할할 만큼 진화하지 않은 것 뿐이다. 그래서 조직이 커지면 중간 중간 수많은 관리자를 넣게 되는데, 중요한 건 그렇게 관리자를 넣어도 어차피 전체 그림을 못본다. 중간 관리자들 역시 개개인의 능력 차이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 역시 아무리 똑똑하다고 가정하더라도 한 명의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렇게 계속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망하는 수밖에 없을까? 실제로 지난 50년간 한국의 수많은 이름 있는 기업들이 망했다. 망한 기업들에는 대우그룹, 한보그룹, 삼미그룹, 진로, 해태, 기아, 쌍용 등등 한 때 재벌 기업들도 포함된다. 물론 부도가 난 후 다른 기업이 인수해서 살아남은 경우도 많다. 1955년 미국 포츈 기업 500대 기업 중 1994년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32%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다. 생각보다 수많은 기업들이 망한다. 하물며 자영업이 좀 규모가 커진 후 내부 문제가 발생한다면 어떨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너든 중간 관리직이든 근로자든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컨설팅을 부를 수도 있고, 마케팅 업체를 새로 알아볼 수도 있고, 문제를 일으키는 근로자나 관리자를 해고하고 새로 뽑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계약한 컨설턴트나 마케팅 업체가 제대로 유용한 방향과 길을 제시해준다는 보장은 없고 새로 뽑은 근로자와 관리자가 이전보다 더 나을거란 보장도 없다. 조직이 커지고 손님이 늘면 수많은 실수들도 발생할 수 있지만 그 모든 실수를 다 통제할 수는 없다. 사람들 입맛이 변할 수도 있고, 경쟁자가 생길 수도 있고, 그냥 갑자기 한식 유행이 지날 수도 있다. 그동안 망한 기업들 중에는 기업 오너나 CEO, 근로자가 태만한 경우도 있겠지만 반대로 발에 불이 나도록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뭐가 문제인지 최선을 다했던 경우도 많다. 그저 인간의 한계가 거기까지인 것이다.
결과를 놓고 볼 때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 미국의 기업들 중 70% 가까이가 쓸모 없는 일에 시간 낭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한국 기업들 중 부도를 낸 기업들은 전부 쓸모 없는 일에 시간 낭비를 한 결과일까? 그런데 이 모든 것은 결과론일 뿐이다. 그동안 그렇게 망했던 기업들도 최선을 다해 무슨 일인가를 했고, 사회에 어떤 기여를 했고, 그래서 비록 망했지만 그런 기여와 실패의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그 이후의 기업들이 더 좋은 비지니스를 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해당 기업들의 실패 사례는 책으로 연구 기록으로 남아 향후 세워질 기업들을 발전시키는데 계속해서 기여를 했을 것이고, 그 결과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미국 기업들, 한국 기업들을 만들었을 거다. 다만 그 상세한 메커니즘을 알 수 없을 뿐이다. 그런 메커니즘은 대략 이런 식으로 추정만 가능할 뿐, 그 어떤 과학적 연구로도 완벽하게 밝혀낼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니까.
우리나라의 정부 기관이나 공공기관이 쓸모 없는 일을 하고 쓸데 없는 곳에 행정력을 낭비하고 책임 소재를 미루며 정치질에만 몰두하고 있다 해도 해당 기관들이 정말로 이 사회에 마이너스만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혹은 해당 기관들을 해체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볼 수도 없다. 그냥,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일 따름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대기업, 중소기업, 학교 등 사람들이 모두 비효율적으로 돌아간다고 토로하는 모든 조직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 어떤 곳도 리더, 중간관리직, 근로자 개개인 누군가가 특별히 잘못하고 특별히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해당 기관들이 그렇게 엉망으로 돌아가는 것이 잠시의 일인지, 아니면 늘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그 원인이 정말로 내부의 문제인지 아니면 국제 사회나 국제 정세와 경제의 문제인지 알 수 없다. 물론 수없이 많은 연구자와 관계 기관 근무자들이 원인 분석을 하겠지만, 그런 분석들 역시 수없이 많은 원인 중 몇 가지만을 지적할 뿐이고, 그것이 정말 제대로 된 원인인지도 알 수조차 없다.
그저 자기가 맡은 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는 별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세상은 모두가 큰 그림에서 봤을때 혹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때 별로 쓸모 없는 일들만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렇게 모두가 쓸모 없는 일 a,b,c,d,e... 들을 하고 있으면, 그것이 모이고 모여 언젠가 매우 유익한 A,B,C,D... 라는 결과를 만들게 되고, 그런 결과들이 모이고 모여 이 나라를 계속해서 발전시키게 될거라고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전후 수십년간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발전 모두 그런 관점으로 볼 수 있다. 특정 리더가 잘했거나 못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 어떤 대통령이 잘 했고 어떤 대통령은 잘 못했다? 천만의 말씀. 대통령이 잘한 건지 그냥 국민들 모두 잘살아보겠다는 욕망으로 하루하루 자신을 갈아 넣어가며 열심히 일한 결과인지 알 수 없다. 게다가 과연 자신을 갈아넣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은 '쓸모 있는 일'을 하긴 했을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라져 버릴 일들에 평생을 다 바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은 컴퓨터로 간단히 조작해서 처리했을 일을 한참 시간을 들여 종이에 쓰는 문서 작업에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들였다든가.. 그런데 장기적으로 그런 쓸모 없어 보이는 일들이 오히려 그런 비효율에 대한 문제의식을 일으켜 더 쉽게 문서를 완성하기 위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발전을 촉발시켰을 거다. 그런 식으로 수많은 쓸모없는 일들이 모이고 모여 지금의 한국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과연 이 사회에 피해만 끼쳤다고 할 수 있을까? 윤석열은 계엄을 일으킴으로써, 지금의 대한민국이 대통령 마음대로 사유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여겼던 국민들의 눈을 띄웠다. 즉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국민들에게 정치적 각성을 일으키고 국민들이 과연 어떤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지에 대한 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었다. 물론 이는 윤석열이 의도적으로 한 것은 아니고, 윤석열의 쓸데없는 계엄 짓거리에 국민들이 잘 반응해 준 덕분이다. 하지만 윤석열이 쓸데없이 계엄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국민들의 정치적 각성도 일어나지 않았을테니, 윤석열도 나름 이 나라의 정치적 선진화에 지대하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학계 연구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어떤 분야든 학계에 쓰인 논문들의 대다수는 별다른 주목도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들이다. 그러나 사실 학문의 발전은 소수의 천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별 주목도 못받지만 미미한 영향력을 끼치는 수없이 많은 '쓸모 없어 보이는' 연구들이 모이고 모여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오늘도 지구상에는 눈 먼 돈처럼 쓰이는 연구비들이 엄청나게 많고, 그런 연구비들은 쓸모 없는 연구에 쓰이고 있겠지만, 그런 연구들이 계속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인류의 기술적 진보가 또 한 단계 이루어지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AI 기술이다. 딥러닝이란 말이 최근에 쓰인 것 같지만 실은 그 기술적 토대는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며, 80년대와 90년대, 2000년대에 이루어진 연구들이 아직도 주된 기술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
이런 관점은 실은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무엇을 하면 잘 살까' '어떤 것을 선택하면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잘 나갈까' 이런 고민은 대단히 쓸데 없는 고민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생각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것 뿐이다.
아무리 쓸모 없어 보여도 그냥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것이 나를 즐겁게 만들어준다면, 그냥 그 일을 하면 된다. 그게 내 인생에 쓸모 있는지 없는지는 판단할 수도 없지만 하더라도 죽기 전 관뚜껑 닫기 전에 몇 초 정도만 가능할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내 인생에 일어난 일들을 '메커니즘' '인과관계' 의 관점으로 분석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일단 그런 것을 분석하는 것 자체가 인간으로 태어난 나의 한계에 도전하는 허무 맹랑한 일일 뿐이다.
그동안 인생을 허투루 살았다고, 남들은 야무지게 살았는데 나만 헛된 것만 쫓으며 헛살았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그런 것들을 쫓을 때 '게으르게'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수동적으로' 쫓았다면 그 부분은 반성할 일이다. 하지만 충분히 즐거웠다면, 그만큼 열심히 추구했다면 상관 없다. 어차피 그 외의 다른 방법은 알고 있지 못했을 테니까. 세상은 엄연히 재능의 차이, 능력의 차이, 타고난 기반의 차이 등등 온갖 영역에서 불평등이 존재한다. 또한 시대 변화와 운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통제하고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 인생 비효율적으로 사는 것 같거나 쓰잘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한 것 같으면, 바로바로 다른 행동을 시도해보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게 정말로 비효율적이고 쓰잘데 없는 것들이었는지도 그 순간의 판단일 뿐이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중요한 것은 역시, 꺾이지 않는, 지치지 않는 마음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