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절제, 일상의 균형
MEMO : 이 글은 나중에 정리할 글이라 의식의 흐름대로 대충 쓴 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오래된 철학적인 질문은, 언뜻 '어떻게 살아야 나와 주변, 더 나아가 이 세상에 이로운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 것인가' 라는 다소 교훈적인 질문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과거나 현재 모두 이 질문이 탐구하는 궁극적 의문은 다음과 같이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만족하며 살다 갈 수 있을까
나 외에 자식 등 누군가를 위해 살든, 더 큰 공동체를 위해 희생적인 삶을 살든, 나만을 위해 살든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주 즐거움과 쾌감을 느끼고, 고통과 지루함, 권태로부터 최대한 벗어나는 것' '미래에도 그와 같은 만족감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거란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상태'.
그리고 이 철학적 질문에 대해 현대 과학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을만큼 충분히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답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알고 실천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또한 인류의 조상들이 고전이나 종교적 가르침을 통해 지겨울만큼 반복하고 강조해온 내용이기도 하죠. 하지만 안다고 해도 동시에 평생 실천할 의지나 의욕이 생기기 어려워 살면서 단 한 번도 실행에 옮겨보지 못할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 속에 담긴 매커니즘을 정확히 알기 어려워 굳이 실천할 가치가 있는지 의심이 들 여지가 많은 탓도 있죠. 이는 한편으로 감각과 감정, 인식과 관련된 인간의 한계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알고보면 매우 간단한 내용 입니다 :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할 것, 절제할 것, 일상의 균형을 유지할 것.
모두가 알고 있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살면서 좀처럼 체감을 해 본 적이 없고 이것을 과학적으로든 그 외 관점에서든 설득력 있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과거 서양의 스토아 철학이나 동양의 불교에서 강조하는 금욕적인 삶 비슷한 느낌에 벌써부터 지루한 느낌부터 들죠. 실은 이런 것들을 가르쳐온 사람들도 그저 윤리적 측면이라든가 개인 수양, 영적 고취와 같이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이를 설명했을 뿐, 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 과학적 관점에서 정확히 알지는 못했을 겁니다. 물론 스스로 그런 삶을 실천해온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몸이 무척 만족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겠지만, 그것을 설득력 있게 전파하기는 매우 어려웠을 겁니다.
논의를 더 진전시키기에 앞서, 이 글이 설명하고자 하는 개념을 한정시킬 필요가 있겠습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됩니다. 성인이 되기 전의 사람은 아직 독립적으로 자기 삶을 유지하기에 버거우며 생물학적으로도 여전히 성장 단계에 있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이끌어나가는 존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성장기 근처에 분비되는 폭발적인 호르몬의 영향, 사회가 청소년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불만과 같은 것들은 청소년 스스로의 의지 보다는 부모나 주변 어른들, 주위 환경의 영향이 더 큰 측면도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성인 이후의 인생을 논할 것입니다.
여기서 또한 인생이란 개념을 두 가지 별개의 개념으로 나눠 보았습니다. 하나는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 준비를 갖춘 독립적인 사람이 되는 것, 또 하나는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며 크고 작은 성취를 하는 과정입니다. 여기서는 전자의 개념에 대해서만 논할 예정인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이 글이 삼고 있는 거대한 전제 중 하나는, 어떤 일을 만족스럽게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적합한 준비가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사가 되어 만족스럽게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어야 하고, 가르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이 머리 속에 있어야 하지 단순히 교사 자격증만 있어서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겠죠. 물론 그런 준비를 교사 자격증을 딴 이후에 일을 하면서 천천히 갖추어 나가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계속 교사 일을 하면서 끝끝내 아이들에 무관심하고 가르치는 것이 지겹거나 머리 속에 최소한의 지식도 들어있지 않는다면, 그 일은 점점 더 삶을 괴롭게 만들겠죠. 직업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것, 일 외의 개인적인 부분에서의 성취를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대체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 준비를 갖춘 독립적인 사람이 되는 것, 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여기서는 철학이나 윤리, 도덕과 같은 자세에 대해선 일체 논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로지 '생물학적인 몸' 의 관점에서만 살펴볼 것입니다. 어차피 인생은 누구에게나 수많은 고난이 닥쳐오기 마련이고, 세상 자체가 불공평함 투성이 입니다. 내가 원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 투성이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모두와 가까워질 수는 없죠. 태어날 때부터 혹은 갑작스레 질병을 이고 살아야 할 운명일 수도 있고, 가족을 비롯해 가까운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죽는 것도 막을 수 없습니다. 내 직업적인 일에서조차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구요.
그러나 이 모든 문제들과, 내 몸이 그런 문제들에 어떻게 반응하고 내 감정과 기분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 그래서 내가 그 다음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는 별개의 것입니다. 어차피 내게 일어난 부정적인 일들은 언뜻 보기에 내 노력으로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그냥 운이 안좋아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나에게만 그런 일들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종류가 다를 뿐 수없이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만 그에 대한 각자의 반응들이 달라 내 문제만 심각하고 반응이 덜한 다른 사람들은 가벼운 문제들만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죠.
이것은 내게 일어난 '좋은 일들' 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누구에게나 감사할 일,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보다 더 좋은 것들도 성취할 수 있지만, 그것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런 긍정 에너지로 다음 행보를 내딛도록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몸의 반응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내 몸이 우울증에 빠져 있으면, 세상 그 어떤 좋은 것들을 가져다줘도 아무런 흥미도 즐거움도 못느끼고 그 어떤 의욕도 갖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까지 이 모든 것이 단순히 '태도의 문제' '의지의 문제' '생각을 어떻게 고쳐먹느냐의 문제'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위하며 살지 않았기 때문' 등등 윤리적, 도덕적, 혹은 철학적 문제로만 여겨왔죠. 그 근거는 매우 명확했는데, 왜냐면 실제로 세상엔 성공적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것이 바로 태도, 의지, 바른 생각, 타인에 대한 배려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만 보자면, 인과관계가 명확해 보입니다. 시간적으로 후자가 먼저, 전자가 나중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같은 인과관계는 그 둘만 보면 사실일 수 있습니다. 좋은 태도를 갖고 부정적인 생각을 줄이며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타인을 배려하며 늘 감사하며 살다보면,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습관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사람에게는 뭐 하나라도 기회를 줄 것이고, 그런 기회들은 결국 그 사람에게 좋은 결과물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의 수많은 인류 뿐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발견되는 면모이므로 그 누구도 이견을 달긴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다 좋은데,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느냐는 말이 쏙 빠져 있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태도, 의지, 생각을 갖는 것이 그냥 개인이 노력하면 된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던 것이죠.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우리 몸과 뇌의 기능에 대한 그동안의 무지가 한 몫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기 위한 독립적인 사람'이 될 준비를 위한 것으로 언급한 세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1)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할 것
2) 절제할 것
3) 일상의 균형을 유지할 것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건강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1)을 유지할 수 있지만, 2)와 3)을 지키지 않고서는 시간이 갈수록 결국 1)이 불가능해집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몸이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는지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알아야 하면서 또한 위에 추가해서 한가지 항목에 대해 반드시 숙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
4) 중독에서 벗어날 것
아니 마약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술 담배에 중독된 것도 아니라구요? 뭐 가끔 술 한 잔 하긴 하지만 중독될 정도는 아니라구요? 그럼에도 중독될 대상은 많습니다. 일 중독, 인정욕구 중독, 음식 중독도 중독입니다. 여기서는 중독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데, 인생을 살면서 사랑에 빠지거나 공부나 일에서 큰 성취를 하는 것, 그 외에 일상의 여러가지 자잘한 삶의 기쁨을 느끼는 것은 중독이 아닙니다. 중독은 '아무리 해도 해도 오히려 기쁨과 쾌락을 느낄 수 없지만 하지 않으면 괴롭기 때문에 계속 반복해서 할 수밖에 없는 상태' 를 뜻합니다. 마약과도 같지만 실은 마약이 아니어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중독에 빠질 수 있으며, 중독에 빠지는 순간 위에서 언급한 1)~3)이 모두 무너지게 됩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인생에는 수많은 고통스러운 일들이 발생하고, 세상은 기본적으로 불공평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나의 몸과 마음이 나에게 최적의 건강 상태에 맞춰져 있다면, 아무리 힘든 일이 발생해도 물론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은 괴로울 수 있지만 그만큼 쉽게 털어 버리고 다시 회복해서 그 다음 스텝을 밟아 나갈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자신이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느낀다면, 이는 단 하나의 사실만을 나타냅니다 :
'지금 현재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상태'
건강하다는 것은 우리 몸이 외부에서 일어난 고통스러운 일들, 우리 몸에 침입한 병원균 등으로부터 쉽게 회복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일부 타고난 심각한 중증 우울, 불안 장애,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 몸은 외부의 악조건이나 나쁜 일에 스스로를 파괴하거나 자살하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습니다. 실은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모두 뇌가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느낌이기 때문에, 뇌가 원한다면 그 고통을 없애버리는 것도 쉽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실은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상태인 것이죠. 즉, 외부에서 일어난 고통스러운 일들에 계속해서 고통스럽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어떤 신체적, 정신적 건강 이상이 발생한 것이라는 의미 입니다.
그와 동시에, 인생에서 즐거운 일, 보람된 일, 다양한 성취,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등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려면 역시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합니다. 자신의 인생이 불행으로 가득 차 있고, 어떤 것을 이루면, 무엇을 성취하면 이 불행이 사라지고 반드시 커다란 즐거움과 기쁨이 찾아올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우리 몸의 생물학적 원리를 무시한 생각 입니다. 지금이 불행한 것은 현재 불행한 일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몸이 현재 건강하지 않아서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끊임없이 우울과 불안에 침잠해 있는 상태일 뿐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아무리 대단한 성취를 하고 더 많은 것을 이루고, 더 좋은 무엇인가 혹은 더 좋은 사람을 얻는다 해도 결코 즐거움도, 기쁨도, 쾌감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기 위한 독립적인 존재' 란 요약하면 다음을 뜻합니다 :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
그러면 우선 우리 몸이 건강을 유지하는 방식을 대략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죠.
특이 질환을 갖고 있지 않는 이상, 누구에게나 각자의 몸에 맞는 가장 최적화된 건강 수준이 있습니다. 이 건강 수준이란 당연히 몸과 마음 모두가 건강한 상태를 뜻하는데, '마음' 이라는 단어는 다소 형이상학적으로 들리므로 '뇌의 건강' 이라고 표현해도 좋겠습니다. 뇌 역시 몸에 속하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인식 상에서 뇌와 몸은 조금 다른 영역으로 포지셔닝 되어 있을테니 이후에도 뇌와 몸을 분리해서 각각 말하기로 하지요. 우리 몸을 관리하는 두 가지 신경이 뇌와 척수 신경인데, 척수 신경은 몸에 속해 있으니 '몸' 이라는 단어에 모두 포함시키기로 하지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설명의 편의를 위해서입니다.
이 '최적화된 건강 수준' 이라는 것은, 어떤 고정된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적화된 건강 수준을 가장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 몸이 끊임없이 우리 몸이 가장 효율성 있고 안전하게 성실하게 운영되기 위한 균형을 빠르게 맞출 수 있는 상태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몸은 성장해서 성인이 될 때까지 골격도 성장하고 세포도 왕성하게 분열하며, 다양한 호르몬의 작용으로 여기저기 기관들이 발달합니다. 당연히 몸이 작을 때보다 커졌을 때 몸 구석구석 필요한 혈액의 양도 많을 것이고, 몸 여기저기를 관리해야 할 면역 세포들도 바빠질테니 그만큼 에너지도 많이 필요하겠죠. 다만 몸이 아무리 변해도, 그래서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더 많은 혈액 공급량이 필요하며 면역 기능을 활성화 시켜 관리해야 할 면적이 넓어져도, 그만큼 우리 몸이 상황에 빠르게 적응해서 여러가지 셋팅 값들을 조절할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몸과 뇌가 건강한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능이 좋고 고장이 안난 자동차는 평탄한 도로위를 달릴 때보다 울퉁불퉁한 진흙탕을 달릴 때 더 많은 저항을 받겠지만, 그만큼 엔진을 손상 시키지 않고도 출력을 높여 훌륭하게 진흙탕 길을 달릴 수 있습니다. 비행기는 맑은 날씨보다 기류 이상시에 저항을 많이 받지만, 성능 좋고 수리 상태가 좋은 비행기는 기류 이상에도 조종사의 조작으로 파손이나 손상 없이 적절히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이 상태가 '최적화된 건강 수준' 이라는 이야기는, 결국 외부의 상황이 악조건이어도 - 즉 우리 인생에서 온갖 불행한 일이 닥쳐도 - 자동차가 그 환경에 잘 적응해 결국 앞으로 나가고, 비행기도 다양한 기능을 통해 난기류를 헤치고 정상적으로 운행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건강하지 않다는 말은, 외부 상황이 악조건일 때는 당연하지만 평화로운 상황 - 일반적인 평탄한 도로와 맑은 날씨 - 에서도 자동차와 비행기에 이상이 생긴다는 의미겠죠. 그런데 우리가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 있어도 그것을 알아차리기 힘든 이유는, 우선 평소에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고통을 주는 고난들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실은 고통스러운 일이나 사고 같은 것들이 발생하지 않기에 우리 몸과 뇌가 혹 건강하지 않더라도 이를 알지 못한다는 의미죠.
그러면 별다른 힘든 일이 발생하지 않을 때 우리 몸과 뇌가 건강한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매우 간단합니다. 특히 요즘에는 정말 손쉽게 알 수 있죠.
1)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모두 진심으로 너무너무 밉거나 특정 정당이 너무너무 싫은 경우
2) 실제로 일상에서 나를 괴롭히는 것도 아닌데 너무너무 밉거나 싫은 누군가가 있는 경우
3) 그 외에 나를 화나고 분노하게 만드는 일들이 희한하게 자주 발생하는 경우
4) 강렬히 원하는 어떤 목표가 있는데, 그 목표를 이루어야만 내 인생이 완전 행복해질거라 믿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불행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강하게 느끼는 경우
5) 손쉽게 쾌감을 느끼는 것들에 중독된 상태
앞에서 '최적화된 건강 수준'이란, 한마디로 우리 몸을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외부 상황에 대처하기 쉬운 상태라고 했습니다. 우리 몸은 몸 전체에 혈액 순환을 통해 에너지와 여러 필요한 영양분, 각종 호르몬과 신호 전달 물질을 공급하고 있으며 이 혈액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심장에서 비롯됩니다. 사실상 우리 몸에서 혈액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고 볼 수 있으며, 혈액이 닿지 않는 곳이 있다면 그 곳은 얼마 안가 조직이 죽게 됩니다. 그리고 혈액을 통해 몸 속에서 수많은 면역 세포들이 움직이면서 외부로부터 병원균이나 이물질이 침입하는지 감시하고, 만약 침입자가 있으면 재빨리 처리해 버리죠. 면역 기능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에서 발생하는 '염증' 과 관련이 깊습니다. 염증은 한마디로 세포가 어떤 위험에 처하거나 뭔가 '이상할 때' 발생하는 반응으로, 어디에서든 염증이 발생하면 우리 몸은 면역 기능을 비롯해 여러가지 시스템들이 세포와 조직의 기능 이상을 수선하기 위해 작동합니다.
여기서 혈액순환, 염증, 면역 기능이 우리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면역 기능이 없다면 사실 우리는 금새 죽고 마는데, 우리 몸은 매 순간 우리 몸을 덮고 있는 세균과 미생물들이 침입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혈액순환은 언뜻 생각하기에 굵직한 혈관을 통해 굵직한 기관들에 혈액이 그냥 전달만 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몸 속의 혈관은 큰 혈관부터 작은 혈관까지 수시로 여기저기 자주 문제가 생기고 수리되는 일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러한 일들이 잘못될 경우 심근 경색으로 사망까지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단순히 혈액이 돌고 있다는 말이 그냥 핏물이 흐른다 라는 개념이 아니라, 혈액 속에 충분한 영양분이 들어 있는지, 혹시 염증을 자주 일으키는 물질들이 가득한 건 아닌지, 호르몬과 신경 전달 물질들이 적절한 양만큼 포함되어 적절한 장소에 잘 전달되고 있는지 여부가 매우 중요합니다. 염증의 경우,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단순히 어디 다쳤을 때 혹은 감기에 걸리거나 위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열이 나고 아프고 붓고 하는 등의 것만 염증 같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직과 세포 내부에서 발생하는 염증입니다. 즉 별다른 뚜렷한 증상을 보이지 않고도 몸 여러 기관의 조직과 세포 속에서 진행되는 만성 염증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런 만성 염증은 조용히 몸을 망가뜨릴 뿐 아니라 뇌에서 우울과 불안 등 다양한 정신질환을 일으키게 됩니다.
우리 몸의 건강 수준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시스템은 '에너지 대사' 시스템 입니다. 이 시스템은 한마디로 외부에서 음식물과 물을 통해 몸에 필요한 영양분과 물을 흡수하고, 몸에 과잉 축적된 영양분이나 몸에 해를 끼치는 이물질은 몸 밖으로 원활하게 배출 시키는 역할을 하죠. 만약 휘발유로만 작동되는 자동차에 등유나 참기름 등 다른 기름을 넣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자동차 엔진은 휘발유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런 기름은 엔진에 손상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자동차가 휘발유 외에 다른 등유, 참기름 등 차에 맞지 않는 연료를 효과적으로 걸러내는 추가적인 장치가 있으면 어떨까요? 에너지는 좀 더 들겠지만 차의 엔진엔 이상이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 속 에너지 대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말은, 몸에 필요한 에너지는 충분히 흡수하고 필요 없는 성분들은 효과적으로 몸 밖으로 배출 시켜 몸에 무리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최근에는 우리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건강한 미생물군' 도 주목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건강한 미생물군이든, 혈액순환이든, 염증과 면역 기능이든, 실은 따로 떨어져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건강한 미생물을 유지하지만 혈액 순환에 문제가 있거나, 염증은 자주 발생하지만 면역 기능이 정상이라든지, 면역 기능이 정상인데 혈액 순환은 이상이 있거나 하는 경우는, 일시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그런 식으로 따로따로 노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앞서 이야기했듯, 결국 우리 몸이 건강하다는 것은 '효율적으로 몸을 조절하고 외부의 상황에 대처하기 쉬운 상태' 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에서 휘발유가 엔진에 제대로 공급이 되지 않는데 차가 잘 나갈리 없고, 컴퓨터에 전기도 잘 공급되고 내부 부품도 최신이지만 하드 디스크 곳곳에 오류가 생긴 경우 이를 두고 이상 없는 정상적인 컴퓨터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각자에게 맞는 최적의 건강 수준은 대체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 몸이 어떻게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지 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몸은 처음부터 최적의 건강 수준에 해당하는 셋팅 값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뇌와 척수 등 우리 몸이 잘 굴러가게 여러 조절 스위치를 가진 중추 신경계, 혈액이 온 몸 구석구석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조절하는 심혈관계, 외부 침입자를 걸러내고 내부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문제들을 수리하는 면역-염증 작동체계, 섭취한 영양분이나 외부 물질들 중 몸에 필요한 것을 흡수하고 나머지는 배출하는 에너지 대사 시스템, 그 외 우리 몸 속에서 우리와 함께 살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미생물들, 여기에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 외 몸 속의 미세한 부분에서 각자 제 역할을 하는 여러 조직과 기관들... 이들 모두는 결코 '늘 최선의 건강 상태를 위해' 조절되지도 않으며 실은 그러기 위한 셋팅 값이 어떤 건지도 잘 모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시스템을 한 눈에 보고 전반적으로 조절하는 초정밀 중앙 시스템 같은 것도 없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점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컴퓨터를 만든 사람들은 컴퓨터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기능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픽 카드, 하드 디스크, RAM, CPU, 모니터, 키보드 등등에 내장된 모든 회로 기판과 기기들은 인간이 수학과 공학을 이용해 만들어냈으며, 따라서 한 치의 오차나 예측의 오류 없이 원하는 기능을 적절한 시간에 최적의 방식으로 구현 가능하도록 조작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는 운영체제나 다양한 소프트웨어와 앱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애초에 개발자가 입력하지 않은 기능이 나올 수가 없고, 개발자가 코딩해서 넣은 기능이 작동 안할 수가 없습니다. 내부 시스템에 이상이 생기거나 소프트웨어와 컴퓨터가 가진 장치들이 서로 안맞거나 호환이 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죠. 실은 그런 경우에도 해결책이 반드시 있습니다. 하다 못해 돈을 더 주고 필요한 장치나 고장난 장비를 추가로 집어 넣어서라도 말이죠.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에 인간의 몸이 작동하는 방식이 컴퓨터가 작동하는 방식과 비슷하다는 오해를 사곤 합니다. 인간이 무의식중에 자신의 몸과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본 따 컴퓨터를 만들었을 거란 추측도 가능하죠. 그러나 본질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컴퓨터는 처음부터, 즉 집적회로가 들어가는 작은 기판부터 배선, 각종 장비들과 내부에 들어갈 소프트웨어 모두 하나하나 인간이 설계해서 넣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어떤 의지를 가진 존재가 그렇게 설계해서 조작하면서 만들어지 않았습니다. 인류의 역사만 수백만년, 그 이전 생명체의 역사가 또 수억년에서 수십억년, 그 오랜 기간동안 자연과의 끊임없는 상호 작용 속에서 균형을 맞추다 결국 살아남은 형태가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또한 누가 의도적으로 설계를 바꾸지도 않았죠. 예를 들어 '아 앞으로 모든 명령 체계는 뇌에 몰빵하는 것이 좋겠어' 하고 몸을 작동하는 모든 지배구조를 뇌에 이전 시키거나, '아 영양분 흡수와 배출은 모두 에너지 대사와 관계된 내부 장기에만 일임하는 것이 좋겠어' 하고 분업화시킨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생명체의 진화과정을 보면 뇌와 심혈관계, 면역 시스템, 에너지 대사 시스템, 미생물 등등 이 모든 것이 누가 더 윗선이냐 아랫선이냐, 어떤 위계 질서나 업무 처리 시스템이 있느냐 뚜렷하게 밝히기 어려울 정도로 모호하게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대 과학이 아무리 발전했다지만, 이 복잡한 시스템을 완벽히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문자와 수식, 사진과 영상 등의 표현 도구의 한계일 수도 있고, 과학적 분석 방법의 한계일 수도 있으며, 또한 인간 의식의 한계일 수도 있습니다. 흔히 내부 메커니즘을 알 수 없는 AI 기계를 인간 뇌의 작동 방식에 비유합니다만, 인간 뇌나 몸의 운영 방식은 AI가 하찮게 여겨질만큼 복잡합니다. 애초에 현재까지 인간이 밝혀낸, 인간 몸의 수많은 구성 요소들 즉 다양한 시스템, 조직, 기관, 세포들과 그 속에서 작동하는 미세 분자 화합물들의 작동 방식 역시 지금까지의 과학 발전 수준에 맞는 설명일 뿐, 추후에 과학이 더 고차원적으로 발전할 세대에는 전혀 새로운 해석과 분석이 가능해질 수도 있겠죠.
컴퓨터와 같은 기계, 그리고 우리 몸의 이런 차이를 뚜렷하게 인지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분명 우리 몸에서 중추 신경계, 즉 뇌와 척수 등이 몸 구석구석 여러가지 명령을 내리고 있지만, 이들의 기능은 제한적일 뿐 아니라, 실은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방식도 아닙니다. 게다가 중추 신경계는 수많은 기구들을 갖추고 있지만 몸 구석구석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도 못합니다. 몸을 구성하는 수많은 조직과 기관들, 세포들은 한편으로 중추 신경계의 명령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각자 완전히 독립적인 생명체처럼 움직이면서 중추 신경계나 다른 조직, 기관, 세포들과 소통합니다. 도로 교통부에서는 수많은 모니터에 전국의 실시간 교통 상황들을 담은 CCTV를 띄워놓고 한 눈에 도로 상황을 살펴보며 즉각 이런저런 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우리의 중추 신경계는 그렇지 못합니다. 물론 우리 몸 전체에서 조직과 기관, 세포에서 오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계속 받고 있습니다만 그 정보가 몸의 상황을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 특히 건강 수준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잘 전달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 뿐 아니라 뇌가 정보를 받고 명령을 내리기도 하지만 조직과 기관도 뇌에서 정보를 받고 자체적으로 명령을 내리기도 하는 등 근본적으로 몸 속 뇌와 다른 기관들 사이의 작동 방식이 기계와 완전히 다릅니다.
따라서 이 복잡한 우리 몸을 '기계' 나 '컴퓨터' 처럼 이해하는 것은 매우 곤란합니다.
우리 몸 속 수많은 기관, 조직, 세포들은 (실은 이 세 가지 역시 결국 세포로 구성된 것이죠) 끊임없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며 어느 땐 각자 생존할 길을 찾고 또 어느 땐 특정 단체끼리 생존할 길을 찾고 또 어느 땐 전체가 모두 잘 살 길을 찾습니다. 인간 사회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부분은, 더 큰 단위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일도 과감히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노화된 세포나 유전 정보가 잘못된 세포들은 면역 세포들이 과감히 제거 하거나 세포 스스로 자살하기도 합니다. 주위에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죠.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자살한 후 남은 찌꺼기들이 반드시 제 때에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큰 피해를 입히지 않았을 뿐 주변에 자잘한 피해를 입힐 때도 있습니다.
뇌와 장은 서로 소통하면서 영양분에서 최적으로 에너지와 필요 영양을 뽑아내고 나머지는 배출하려고 노력 합니다만, 이 노력은 '그래 우리가 합심해서 공통의 목표를 이루자!' 식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엄밀히는 각자 하던 일 잘 하고 각자 생존하고 서로 타협점을 찾는 식으로 이루어질 때도 있고, 우연히 서로 공통적인 목표가 찾아져서 시너지를 내기도 하죠. 여기에 장에 사는 미생물까지 끼어들면 상황은 더 복잡해지는데, 미생물의 이해관계는 우리 몸이 꼭 건강해야 할 이유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 미생물만 그렇다고 했나요? 실은 뇌와 장 역시 우리 몸이 꼭 건강해야 할 이유, 즉 반드시 건강 수준을 유지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현 상황에 잘 적응하고 몸이 별 문제 없이 잘 굴러가고 생존해 있으면 뭐 굳이? 라는 느낌이죠.
심혈관계를 구성하는 심장과 혈관들은 몸 구석구석 혈액을 잘 보내기 위해 뇌와 잘 협력해서 노력합니다. 그런데 혈관 어디에선가 염증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 면역세포들이 그 쪽으로 모이게 되고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면 혈관이 매우 좁아지게 됩니다. 이 경우 고혈압을 비롯해 각종 심혈관계 질환이 발생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죠. 흔히 '혈관이 막히는 음식' 이라 해서 기름진 음식을 먹으며 농담을 하곤 합니다만, 반드시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혈관이 막히는 등 우리 몸이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도 멀쩡하고, 어떤 사람은 조금만 먹어도 혈관 곳곳에서 염증과 면역 반응이 자주 일어나 혈관이 막힐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그럼 이쯤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아니, 이럴 거면 왜 우리 뇌는 에너지대사 체계를 담당하는 기관들에게 명령해서 기름진 음식의 성분들을 혈관으로 보내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았나? 왜 면역 세포들은 굳이 중요 혈관 부위에 모여 들어서 혈관을 좁히는 염증 반응을 일으켰을까? 얘네들 서로 소통 안 해? 서로 입 꽉 다물고 일 안하기로 한거야?
앞서 말했듯, 우리 몸을 '컴퓨터'나 '기계' 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컴퓨터와 기계는, 사람이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갖고 만들고 조작합니다. 특정 인터넷 사이트 주소를 브라우저에 입력하면 브라우저는 회선이 끊어지지 않은 이상 반드시 해당 주소로 연결합니다. 회선이 끊어지면 '인터넷 연결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고 오류 메시지를 보내는데, 이것은 사람이 그런 상황에 해당 에러 메시지를 출력하라는 명령을 이미 입력했기 때문입니다. 컴퓨터 기판이 너무 뜨거워질 경우 갑자기 컴퓨터가 멈추는데 이 역시 하드웨어 설계자가 기계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프로토콜의 하나죠. 동영상 제작 툴을 실행시켜 동영상 편집을 한 후 저장 버튼을 누르면 저장이 반드시 되고, 만약 어떤 문제가 일어나면 소프트웨어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기록하고 알립니다.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다면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다' 라고 알리는데, 이 역시 개발자가 입력한 코드입니다.
사람 몸은 다릅니다. 위의 상황에 빗대어 보자면, 인터넷 사이트 주소를 브라우저에 입력했을 때, 브라우저는 뭔가 컨디션이 좋을 때는 연결하고 어느 날은 '괜히' 접속하지 않습니다. 회선이 끊어질 경우 '회선이 끊어졌다' 라고 명확한 오류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계속 접속 신호를 보낸 상태로 멈추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뭔가 길어지면 기분이 나빠지니 갑자기 모니터 화면을 꺼버리죠. 컴퓨터 기판이 너무 뜨거워지면? '겨울이라 괜찮아' 하고 가만 있을 수도 있고, 뜨거워지지도 않았는데 '여름이라 넘 덥지 않아?' 하고 갑자기 멈출 수도 있습니다. 사용자는 그런 명령을 보내지 않았는데 컴퓨터가 자체적으로 판단해 버립니다. 동영상 제작 툴을 실행시켜 저장을 할 때 문제된 부분이 분명 있는데 아무 말 없이 억지로 저장하다 영상 데이터가 이리저리 뒤죽박죽 섞여서 저장될 수도 있구요.
한마디로 우리 몸은 우리가 어떤 특정 목적을 두고 기계처럼 다루는 데에 한계가 있으며, 때로는 그 한계를 인지하지 못한 채로 계속 특정 방향으로 굴리다가 나중에 큰 문제가 발생해도 끝까지 모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죠. 체중을 '10kg' 감량 목표로 한다 -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현재의 체중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꽤 괜찮은 상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용 등의 목적으로 무리하게 체중 감량을 시작합니다. 식단은 왜곡되고, 과도한 운동이 실시되죠. 우리 뇌는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 스트레스는 두뇌에만 작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몸에서 분비된 스트레스 호르몬은 온 몸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다양한 조직과 기관에 영향을 미칩니다. '어? 뭔가 문제가 일어난거야?' 다들 화들짝 놀라서 금방이라도 염증과 면역 반응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신경을 곤두 세우게 되죠. 갑자기 특정 음식 성분도 안들어오고 몸이 축날 정도로 운동하니 우리 몸의 모든 조직과 기관들은 뭔가 큰 일이 난 줄 알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합니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짜증니 나고 때로 분노가 치밉니다. 특정 정치인들이 잘못해서 내가 불행해진 느낌도 들고 학교나 직장의 누구 때문에 신경질이 날 뿐 아니라 내가 입은 옷, 내가 가진 물건들이 초라해 보입니다. 결국 견디지 못해 어느날 조용히 친구를 불러 고기집에서 폭식합니다. 술도 진탕 마시죠. 우리 몸은 또 놀랍니다. 기름진 음식이 들어왔다! 재빨리 지방으로 저장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술이 들어와서 간세포가 힘들어합니다. 적응이 안됐으니까요. 결국 간세포는 과로하게 되고 다음 날이 되자 이상하게 더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더 늘어난 느낌이죠..
또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승진을 목표로 하고 달리는 중입니다. 얼마 전 연인과 헤어진 후로 이제 남은 것은 직장에서 악착같이 승진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매일 과로합니다. 일 때문에 피곤하니 운동할 시간도 휴식을 취할 시간도, 다른 사람들과 만날 시간도 없죠. 일이 힘든데 좀처럼 목표까지 근접하기 쉽지 않으니 초조해지고 정신적인 보상도 없으니 굉장히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달달하고 기름진 음식을 잔뜩 먹습니다. 잠깐 짬이 날 땐 자극적인 영상과 짧은 영상들을 중독적으로 보죠. 뭔가 개운하게 채워지는 느낌은 안들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뭔가 즐겁고 쾌락적인 것을 즐기고 나면 그래도 좀 숨통이 트입니다. 그리고 다시 일에 집중하고 과로하고.. 결국 승진을 해냅니다! 굉장한 쾌감과 기쁨이 느껴집니다. 그래, 내겐 일 밖에 없어! 이같은 생각으로 다시 일에 몰두하고 위와 같은 생활을 반복하게 됩니다..
영화 '미스 슬로운'엔 이처럼 균형이 무너진 삶을 사는 여성의 모습을 놀라울만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 해야 한다고 믿는 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주위로부터의 엄청난 압박을 받고 스스로도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만 지독할 정도로 참고 일에 몰두하는 주인공은 주기적으로 매춘 남성을 불러 성욕을 해소합니다. 인간 몸의 생리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는 작가가 쓴 시나리오가 틀림 없습니다. 자기 몸의 균형을 깨뜨릴만큼 어떤 부분에서 무리를 하면 반드시 몸은 그에 대한 불만족과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 괴로움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답답하고, 몸은 고통스럽고, 일상은 불행하게 느끼니 빠르게 손쉽게 강력한 쾌감을 느끼고 싶어하게 되죠. 마약에 빠지는 것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중독적 쾌감을 끊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실은 그런 중독적 쾌감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합니다. 우리 몸은 몸이 과도한 스트레스와 괴로움 상태에 빠져 불건강한 수준에 머무르면 제대로 된 쾌감을 느끼지도 못하니까요.
우리는 우리 몸을 잘 모르지만, 실은 우리의 뇌를 비롯한 몸 전체의 기관과 조직들도 우리 몸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냥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그에 맞게 몸이 잘 적응하고 생존 활동 및 번식 활동 등 생물로서 필수적인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그 때 그 때 최선을 다할 뿐이죠. 인생은 지금 이 순간을 잘 사는 것 뿐이라고 수많은 철학자와 현인들이 말해 왔습니다만, 실은 그걸 제일 잘 실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몸입니다. 정해진 목표인 건강 수치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주어진 상황에 맞게 그 때 그 때 맞추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죠. 어떤 관점에서 보면 우리 몸과 뇌,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우리의 자의식 중에 우리 몸의 건강을 그 누구보다도 원하는 것은 우리의 자의식 뿐일지도 모릅니다. 몸과 뇌는 그냥 주어진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의미죠. 그런데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건강을 원하지 않게 되면 그 때는 우리 몸의 모든 구성원들이 전부 우리의 건강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게 되겠죠.
몸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열풍이 불어 근육을 과도하게 키우기 위한 운동이 주기적으로 유행하곤 하죠. 어떤 사람은 매우 많은 근육이 붙어도 괜찮을만큼 여러 신체적 조건이 갖춰져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조건을 명확하게 하나하나 규정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타고난 체력이 좋고 에너지대사 기관도 원활히 작동하며 혈액순환도 잘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에 대한 반응도 균형 있게 유지되는 등 여러 요소들이 있겠죠.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은 그런 신체적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아 근육이 붙어도 꾸준히 유지되기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멋있는 근육' 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그런 근육을 붙이기 위한 노력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과도하게 운동하고, 손상된 근육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해 과도하게 단백질 파우더를 먹으면서 식단을 왜곡 시키고, 심한 경우 스테로이드를 맞기도 하겠죠. 이 경우 자신은 아니라고 느낄 수 있지만 몸은 늘 긴장 상태, 스트레스 받는 상태를 유지하고 에너지 대사 체계는 왜곡된 식사에서 영양분들을 처리하기가 버거워져 실수를 하고 과로를 하면서 조금씩 망가지기도 합니다. 알게 모르게 계속 몸이 힘들고 근육을 만드는데 모든 역량을 쏟아 부으니 몸의 균형이 항상 무너져 있고 결국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단기간에 폭발적인 쾌감을 느낄 무언가를 찾아 헤매게 됩니다. 식단을 엄격히 조절해야 하니 달달하고 기름진 음식 말고 다른 것들에 빠지겠죠. 유흥이라든가 자극적인 영상과 위험한 스포츠, 그 외 뇌 속에 짧고 강렬한 쾌감을 지속적으로 느끼게 만들어 쉽게 중독에 빠질 수 있는 것들요.
몸의 균형이 무너지면 결국 우리는 보다 강렬하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쾌감에 집중하게 됩니다. 앞에서 우리는 달콤한 음식에 의한 쾌감, 어떤 일을 성취한 것으로 얻는 쾌감, 유흥이나 중독적인 영상에 의한 쾌감, 마약 등 약물에 의한 쾌감을 각각 다른 것으로 구분 했습니다. 물론 뇌 속에서 기쁨과 행복, 짧고 강렬한 쾌락을 느끼게 하는 행동이나 사건들엔 무수히 많은 것들이 있고, 각각의 것들이 뇌에서 행복의 보상을 일으키는 방식도 모두 조금씩 다르긴 합니다. 보상을 일으키는 방식이 모두 같다면 우리는 하나의 행동만 반복하며 살겠죠. 당연히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수많은 행동을 해야 하고, 따라서 그에 따른 여러가지 행동들이 각기 다른 차원의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이 즐거움과 기쁨 등의 보상이 일어나는 방식 하나하나에 알파벳 A, B, C.. 를 붙여 보죠.
이를테면 A는 잠잘때 일어나는 보상입니다. B는 배고플 때 허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먹을 때 일어나는 보상, C는 달콤하고 기름진, 맛이 매우 좋은 음식을 먹을 때 일어나는 보상이죠. D는 짝을 만나 사랑을 나눌 때 일어나는 보상, E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놀거나 즐거운 일을 할 때 일어나는 보상입니다.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이같은 A,B,C,D,E의 보상들은, 그 어느 것도 다른 보상들보다 무조건 더 큰 쾌락만을 선사하지 않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는 A부터 E에 해당하는 각각의 행동들 - 잘 자고, 배고플 때 먹고, 때로 맛있는 것도 먹고, 짝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 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죠. 이 중 어느 것 하나, 예를 들어 C가 다른 모든 것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이 사람은 A,B, D, E에 해당하는 행동들을 잊고 C에 해당하는 행동 즉 달콤하고 기름진 음식만 먹게 되어 비만이 될 겁니다. 아, 그런데 혈기 왕성한 사춘기와 청춘의 시기에 유독 다른 것보다 더 강하게 보상을 주는 행위가 있긴 합니다. 그게 바로 D, 즉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느끼는 보상이죠. 그래서 이 시기에 사랑에 빠진 남녀는 다른 모든 것들보다 사랑을 우선순위에 두고, 연인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 것만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거라 믿게 되죠. 그러다 실연을 당하면 실제로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못이룰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연락을 끊기도 합니다. D 때문에 A,B,C,E 가 모두 멈춘 상태라 할 수 있죠. 이것은 예외적인 상황이긴 한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우리 몸이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흔히 '시간이 약' 이란 말이 있듯, 우리 몸은 당연히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에 적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해야 우리 몸의 입장에서 젊은 시절에 이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목표 - 짝을 만나고 자손을 번창시키는 것 - 를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D의 보상을 강력하게 셋팅해 두죠. 실제로 생식이 가능한 연령을 지나면 이제 더이상 D의 보상은 강력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B,C,D,E는 분명 다른 종류의, 다른 차원의 정신적 즐거움과 기쁨이라는 보상이긴 합니다만 실은 뇌에서 이런 정신적 보상 대부분이 이루어지는 부위는 동일한 곳이라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장소가 중뇌의 복측피개핵과 전뇌의 측좌핵 입니다. 흔히 '도파민 보상 시스템'으로 알려져 있죠. 물론 오로지 이 부위에서만 도파민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는 뇌의 여러 부위에서 다양하게 보상 시스템이 작동하긴 합니다. 그런데 이 도파민 보상 시스템이 중요한 이유는, 이 부분이 다른 어떤 부분보다 더 강렬한 쾌감을 느끼는데 관여하는 곳이기 때문이죠. 우리 몸과 뇌가 건강하고 전체적인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면, 우리는 A,B,C,D,E 와 관련된 행위를 할 때마다 뇌의 여러 보상과 함께 바로 이 도파민 보상 시스템에서도 적절한 쾌감 보상을 받습니다. 이 쾌감 보상은 우리가 주기적으로 관련 행위들을 반복하게 만드는 원천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식사때가 되면 무엇을 먹을지 기대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메뉴판을 뒤적이고 식당 검색을 시작한다든지, OTT나 유튜브에 접속해 보고 싶은 방송을 클릭할 때 마음이 두근 거리는 것도 이 도파민 보상 시스템이 가동중인 상태 입니다. 하지만 몸과 뇌가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을 때는 A,B,C,D,E 중 어느 하나에 특별히 중독되지도 않고, 그 중 어떤 것이 매우 큰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들 다시 빠르게 빠져나와 일상으로 금새 복귀할 수 있습니다. 이는 몸과 뇌가 균형을 유지한 상태, 즉 건강한 상태에서는 그 어떤 보상 행위를 하지 않아도 특별히 괴롭거나 지루하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 뇌는 도파민 보상 시스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적당히 만족스럽고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세로토닌 회로와 옥시토신 회로 등 여러 다양한 보상 시스템을 갖고 있고, 건강하고 균형 잡힌 상태에서는 이런 시스템들이 원활히 작동해서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을 때도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몸과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죠.
여기서 또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는데, 우리 몸이 건강하고 균형잡혀 있을수록 정신적 쾌감 등 보상도 온전하게 최대로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에 중독되지 않고 순식간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도 잘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우리 몸이 '균형 잡힌 상태' 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강한 쾌감을 느끼면 우리 몸은 중독되지 않기 위해 재빨리 보상을 느끼기 위한 장치들 (이를 수용체라 합니다) 의 기능을 꺼버리고 도파민과 엔돌핀 등의 쾌감 호르몬을 흡수해 버립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보상 장치들이 다시 원상복구 되는데, 모든 보상 장치 즉 수용체들이 정상 작동을 한다는 것은 곧 해당 보상 행위를 했을때 가장 크게 최상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그런데 우리 몸이 균형이 무너지고 몸과 뇌가 건강을 잃게 되면 이 때부터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우선 우리 몸이 평소에도 끊임없이 괴롭거나 불안하고 짜증이 자주 발생하는 상태가 될 뿐 아니라, 기존에 균형 있는 보상 수준을 유지했던 A,B,C,D,E 보상들의 보상 수준에 큰 차이가 나기 시작하죠. 이를테면 C, 즉 달고 기름진 맛있는 음식으로 인한 보상이 더 크게 느껴지거나 D, 즉 성욕과 관련된 쾌감 보상이 비정상적으로 크게 느껴지기도 하고 E, 즉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지나치게 큰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거죠. 여기서는 다섯가지만 말했지만 그 외에 사람마다 여러가지 방식으로 특정 행위와 관련된 보상 시스템이 과도하게 발현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특별히 보상이 크게 느껴지는 C, D, E... 등 저마다 발현된 특정 보상 행위들을 반복해서 하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중독이 시작되는 거죠.
그럼 왜 갑자기 A~E의 보상 수준에 차이가 생길까요?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그것이 우리 몸과 뇌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균형이 깨져버리다보니 몸도 뇌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에 있거나 그런 상황에 최적화된 땜질 처방을 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즉 애초에 우리 몸이 그걸 의도한 게 아니라, A~E의 균형을 잃어버려서 다시 맞추기에 우리 몸과 뇌가 버거워하는 상태가 바로 건강이 망가진 상태라는 의미죠.
또 하나는 우리 몸이 균형을 잃고 건강을 잃은 경우의 몸 상태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경우 가만히 있을 때도 몸 여기저기 뚜렷한 증상 없이 끊임없이 염증이 일어나고 면역 시스템이 오작동을 하고, 미생물들에 의해 독성 물질이 발현되고, 온 몸 구석구석 스트레스 호르몬이 돌면서 온갖 조직과 기관, 세포들을 비상 대기 상황에 밀어넣습니다. 그러다보니 몸이 피로하고 괴롭고 불만족스러운 상태가 되니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손쉽게 쾌감을 얻을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게 만드는 거죠. 달콤하고 기름진 음식, 술과 담배에 탐닉한다든가 유튜브나 OTT 동영상에 집착하거나 성욕을 채우기 위한 행위들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몸이 불만족스러우니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도파민을 일으키는 행위들을 꾸준히 찾아 즐기게 만드는 거죠.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얻는 도파민은 결국 돈의 지출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에게 돈만 내면 쉽게 도파민을 채울 수 있는 상품들이 얼마든지 개발되어 있고, 그 수와 종류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상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상품과 서비스들은 이처럼 돈으로 단기간에 살 수 있는 도파민 상품들이라 할 수 있죠.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앞서 우리 몸은 기계가 아니라고 했죠. 엔진오일이 떨어진 기계는 엔진오일을 넣어주면 그만입니다. 윤활유가 필요하면 윤활유를 넣어주면 해결되죠. 그런 것처럼 우리 몸도 평소 계속 괴롭다면 그 괴로운 만큼 도파민 쾌감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행위들을 반복해서 기쁨과 즐거움의 감정을 채워 넣어 상쇄 시켜주면 그만일까요?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인간의 몸을 기계로 보는 시각에 다름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우선 불건강한 상태, 균형이 깨진 상태 자체가, 그렇게 우리 몸을 정교하게 고통과 스트레스 - 기쁨과 즐거움을 정교하게 맞출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즉 건강을 잃고 몸의 균형이 깨진 상태가 되면 그 때부터는 우리 몸과 뇌가 스스로를 최적의 상태로 적절하게 맞출수 조차 없게 되어버린다는 의미죠. 균형을 잃었다는 말 자체가 오히려 우리 몸을 기계적으로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식으로 맞출 수조차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는 쾌감과 관련된 도파민 보상 체계를 비롯한 뇌의 다양한 보상 체계의 작동 방식과 관련 있습니다. 위에 언급했듯, 빠르고 많은 도파민 방출은 그만큼 강한 쾌감을 일으키지만 순식간에 해당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장치, 즉 쾌감 수용체들의 숫자를 줄여버리거나 기능을 못쓰게 만들고, 체내 도파민 양도 줄여 버립니다.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몸이 건강하고 균형 잡혀 있을때보다 같은 행위를 했을때 오히려 쾌감, 즐거움, 기쁨을 덜 느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이것이 '중독' 상태라 할 수 있죠.
'중독'은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자 이해하기가 어려운 개념입니다. 담배에 중독되면 담배를 피울 때마다 즐거워야 하지만, 실제로 뇌는 그렇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처음 필 때의 담배만이 가장 큰 쾌감을 주고, 그 다음부턴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괴로운 상태로 만들어 버리죠. 그래서 담배를 또 피우게 되는데, 이 때 느끼는 쾌감은 처음의 쾌감보다 훨씬 줄어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피우지 않으면 계속 괴롭기 때문에 자꾸자꾸 피우게 되고, 피우면 피울수록 쾌감은 점점 줄어들게 되어있죠. 그러나 그것 외엔 괴로움을 줄일 더 저렴하고 손쉬운 방법이 없기 때문에 중독되는 것이지, 담배를 피우면 계속 행복하기 때문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달달하고 기름진 음식에 중독된 상태도 마찬가지 입니다. 건강을 잃고 몸의 균형이 손상되면 우울과 불안 등 정신질환에 쉽게 빠지는데, 이는 뇌 속에서 끊임없이 염증 반응이 일어나 뇌세포가 지속적으로 파괴되는 상태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이는 뇌 속 보상 체계와 관련된 뇌세포의 기능도 손상시키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달달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어도 건강할 때보다 그 만족감이 훨씬 덜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먹지 않으면 계속 우울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먹게 되고, 먹을 때마다 몸 속 염증은 더 자주 발생하고 에너지 대사 시스템과 관련된 장기들의 기능은 악화되지만, 계속 먹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되죠. 그래도 계속 먹으면 조금이라도 보상 회로를 자극해 괴로움을 잊게 만들어줄 수 있으니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계속 먹을수록 점점 더 뇌는 만족시키기 어려운 뇌로 변해가게 됩니다.
결국 앞서 언급했듯, 몸과 뇌의 건강을 유지하고 균형을 찾는 것은 중독에 빠지지 않는 것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몸과 뇌가 건강을 잃으면 중독에 쉽게 빠지게 되고, 중독에 빠지게 되면 몸과 뇌는 더욱더 건강을 잃게 됩니다. 이상하게도 세상의 수많은 건강을 해치는 것들은 전부 중독적인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우연이 아닙니다. 인류 역사 내내 우리 몸과 뇌에 가장 큰 쾌감을 주는 것들을 상품화시키는 기술이 꾸준히 발달해왔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과소비와 허영, 더 큰 쾌감을 주는 것들에 대한 소비를 통해 지탱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해칠 정도로 달콤하고 기름진 음식을 많이 소비하지 않으면 식당 자영업은 전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타인에게 과시하고 자기 스스로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옷을 사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패션업계가 시장 규모를 크게 유지하고 있죠. 더 많은 사람들이 성욕을 채우고 싶어하기에 수많은 종류의 관련 유흥이 발달했고, 성적 대상화를 자처하는 연예인들이 늘어나고 그렇지 않은 연예인들도 은근 섹스어필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죠. 그와 동시에 이런 상품을 파는 기업들은 사람들의 일상을 끊임없이 지루하고 재미없고 한심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온갖 종류의 마케팅과 광고를 펼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일상에서 가만히 있어도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낀다면, 자본주의는 더이상 발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경제는 순식간에 축소되고 말 것입니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을 불만족스럽게 느껴야 더 많은 것을 소비로 채우려 할 것이고, 그렇게 계속해서 소비를 해야 돈이 돌고 돌아 경제가 발전하고 기술도 발전해서 역설적으로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겠죠.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자랑하고 비교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늘어야 거기에 열받은(?) 사람들, 질투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무리해서 소비를 하고, 그러기 위해 과로하고, 과로하니 또 술과 맛있는 음식을 즐겨 자영업에 활력을 돋고, 그렇게 또 전체 경제에 기여하겠죠. 한마디로 애초에 우리 몸에 병주고 약주는 상품들이 계속해서 개발되어야 국가 경제가 제대로 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 과연 몸과 뇌의 건강을 유지하고 균형을 찾는 것이 필요할까?
누군가는 자기 몸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공부하고 일을 해서 남들은 이루지 못한 수많은 사회적 성취를 이룹니다. 그런 사회적 성취는 더 많은 재산과 사회적 지위, 개인적인 명예를 가져올 뿐 아니라 국가 전체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기도 하죠. 개인 뿐 아니라 자기 가족들에게도 더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시켜줄 수 있고,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 더 좋은 집, 더 잦은 여행과 여가를 즐길 수 있게 만들기도 합니다. 자기 몸을 괴롭혀서라도 과하게 살을 빼거나 근육을 만들어 몸을 매력적으로 만들면, 그만큼 짝을 만나는데도 유리할 수 있겠죠. 앞서 말했듯, 세상 모두가 현자처럼 만족하게 되는 순간 경제는 축소하기 시작해 순식간에 국가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럴 일은 결코 없습니다. 언제나 통계적인 다수는 과거에나 지금에나, 그리고 미래에도 지금과 비슷한 삶을 유지하며 살 것이기 때문이죠. 인간이 급속도로 지금과 다른 유전적 구성을 가지는 쪽으로 진화하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일어날 수도 없고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몸의 균형을 잘 유지하며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건강하게 자기 자신에게 만족한 상태로 잘 살고 있습니다. 결국 이 글에서 말하는 것은, '스스로 아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은 자각을 느끼고 있는 분들로 한정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서, 그러면 그렇게 몸과 뇌의 건강을 유지해서 균형을 찾는다고 치면, 그로 얻는 대가는 무엇인가? 물론 앞에서 말했던대로 '더 큰 즐거움을 느낄 뿐 아니라 다시 원상 복구하는 탄력성 좋은 몸이 되는 것' 도 있지만,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그제서야 비로소 내 몸 사용 설명서를 알 수 있게 된다는 점이죠. 이것은 곧 한창 유행했던 이슈인 '자존감' 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자존감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을 먹는 것만으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애초에 몸과 뇌가 불건강하면 그런 마음가짐을 먹는 것조차 불가능하구요. 인과관계가 철저히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