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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철학적 질문에 대한 과학의 답#2

by rextoys

MEMO : 후에 정리할 글.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


한 때 자존감에 대한 논의들이 수많은 책과 강의를 통해 이루어진 적이 있습니다. 자존감은 말 그대로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하는 정도, 얼마나 가치 있고 유능하다고 느끼는지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상당히 주관적인 설명일 수 있지만, 복잡한 정의를 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실은 용어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닐지 모르죠. 그냥 내가 나를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하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 정도라고 하면 의미 전달에 무리가 없습니다.


자존감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 중 특히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 혹은 상처, 어린 시절의 환경 등등이 많이 거론되어 왔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과거를 짚어보며 스스로에게 있는 정신적 문제를 탐구하고 관련 인간관계를 점검해보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방송 컨텐츠도 많죠. 물론 인간의 정신적 문제와 관련된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밝히는 과정은 매우 까다로우며 아직까지도 어디까지가 유전적인, 타고난 원인이고 어느 정도를 후천적인 영향으로 볼 수 있는지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경험적으로 어린 시절의 경험이 분명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자존감이 한 사람의 인생에 장기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도 모두 동의하고 있습니다.


자존감을 올리기 위한 방법으로 남과 비교하지 않기, 부정적인 생각 하지 않기, 자기 격려하기 등등 여러가지 인지행동적인 방법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이런 행동들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라기 보다는 자존감이 높아졌을 때 쉽게 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 즉 결과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자존감이 왜 낮은지 근본적인 원인이 분명 있을 것이고, 자존감을 높이는 것과 관련된 생물학적 메커니즘이 따로 있을 거란 뜻입니다.


우선 자존감이 낮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린시절의 경험, 어느 정도 타고난 부분 뭐 다 좋습니다. 그래서 대체 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자존감을 좀처럼 높일 수 없는 걸까요? 그 전에, '나'를 과연 내 몸과 뇌라는 실체와 분리할 수는 있을지 한 번 생각해 보죠. 이것은 당연히 잘못된 말일 겁니다. 내 몸이 느끼는 고통, 기쁨, 즐거움 같은 것은 결코 '나'와 분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즐거움과 기쁨을 자주 느끼는 '나' 와 어떤 이유에서든 고통과 괴로움을 자주 느끼는 '나' 는 결코 동일한 '나' 일 수 없습니다. 동일한 몸과 뇌에서 파생된 '나' 라고 할지라도 말이죠. 언뜻 철학적인 의미로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대단히 단순힌 원리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조금만 노력하고 행동해도 자주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며 살았을 때의 '나' 와, 같은 몸을 가졌지만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자주 고통과 통증을 느끼며 살았을 때의 '나'가 과연 같은 '나' 일까요? 자의식 자체도 결국 생물로서의 인간의 몸과 뇌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이 두 가지 '나'는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만약 철수가 어떻게 살고 어떤 일을 하고 누구를 만나든 자주 즐거움과 기쁨, 쾌감을 느낀다면, 철수의 자존감은 높을까요 낮을까요. 철수는 자신이 조금만 노력해도 행복한 기분과 감정을 자주 느낄테니 자신의 몸에 대해 긍정적인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런 자기 몸이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으니 당연히 자존감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에게 자주 기쁨을 주는 자기 몸이 가치 있게 느껴지지 않을 이유가 없죠. 하지만 만약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누구를 만나더라도, 무엇을 하든 계속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통증이 느껴진다면, 철수는 그런 자기 몸이 밉고 싫을 겁니다. 아무리 자기 몸에 이런 저런 조작을 가해도 불행한 감정만 느껴지니 자기 몸이 가치 있게 느껴질 수가 없죠. 성능 좋은 컴퓨터에 빠른 인터넷을 연결해 이런저런 소프트웨어를 돌렸을 때 원활하게 자료 처리가 될 때는 그 컴퓨터가 예뻐 보이지만, 뭘 누르면 금새 다운 되거나 조금만 무거운 자료 처리를 맡기면 한나절 걸린다면 그 컴퓨터가 못나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자존감은, 내 몸이 쉽게 즐거움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상태일 때, 그리고 그렇게 내 몸으로 행복감을 쉽게 느끼도록 하는 자기 몸 사용 설명서를 갖고 있을 때 높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몸을 가진다면, 그런 설명서를 갖고 있다면 내가 내 몸, 즉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여기엔 외적 조건들을 타고 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모두가 좋아해주는 외모를 갖고 있다거나 조금만 노력해도 쉽게 성취를 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면 그런 행복감을 느끼는 기회도 자주 생길테니까요. 하지만 타고난 것을 제외하고도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바로 부정적인 감정과 기분, 육체적 고통과 통증을 줄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 몸에 얼마든지 큰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을 기계처럼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우리 몸에 기쁨과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는 그에 해당하는 외부 활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기 쉽습니다. 나를 기쁘고 즐겁게 해줄 사람을 만나기, 맛있는 음식을 먹기, 즐거운 여행을 떠나기 등등. 그런데 앞서 반복해서 말했듯 우리 몸은 기계가 아닙니다. 실제로 그런 외부에서 행복의 요소를 얻는 것보다 더 쉽게 몸 안에서 행복의 감정을 일으키는 방법이 바로 몸의 건강과 균형을 유지해서 부정적인 감정과 통증이 더이상 올라오지 않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금 비유를 하자면, 즐거움과 기쁨의 감정을 느끼는 센서를 매우 예민하게 가꾸고 부정적인 느낌과 통증을 느끼는 센서를 둔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바로 건강과 몸의 균형, 그리고 '중독'인 것이죠.


앞서 살펴 보았듯, 몸이 불건강하고 균형이 깨진다는 것은 개운하고 말끔하게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 입니다. 몸 속 염증이 가득하고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을 경우 건강하면 100을 느껴야 할 쾌감을 50 정도밖에 못느끼는 거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는 행복 수준이 0이 아니라 마이너스 값을 가집니다. 왜냐면 수시로 염증이 발생하니 늘 자잘하게 고통과 괴로움이 느껴지기 때문이죠.


몸이 건강을 잃고 몸과 뇌 여기저기 염증이 자주 발생할수록 신체적 통증이나 정신적 우울, 불안과 고통은 더 크게 느껴집니다. 우선 통증 반응 자체가 염증을 발현시키고 진행시키는 수많은 생화학 분자들이 중추신경계에 전달하는 통증 자극 신호에 의해 발생합니다. 한마디로 동일한 충격을 받아도 몸이 건강을 잃었을 때 더 심하게 통증이 느껴진다는 뜻이죠. 정신적 고통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건강을 잃으면 작은 일에도 더 쉽게 상처 받고, 더 마음이 아프고 더 슬픕니다. 외부에서 벌어진 사건은 동일한데, 그 사건에 내 몸과 뇌가 더 예민하게 통증과 괴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고통을 느끼는 우리 몸 속 센서가 이처럼 예민해지면, 가만히 있어도 일상이 괴롭습니다.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을때도 몸에선 여기저기 지속적으로 염증이 발생하고 자잘한 통증이 뇌로 전달되기 때문이죠. 이처럼 만성 통증이 지속되면 몸은 또 그에 대한 방어 기작으로 꾸준히 도파민성 쾌감 물질을 분비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지속적으로 발현되는 쾌감 물질에 즐거움을 느끼는 센서는 반작용으로 무뎌지고, 결국 건강한 몸 상태였으면 당연히 느껴야 할 즐거움과 기쁨을 절반도 못느끼게 되는 거죠.


가만히 있을 때 지루하고 권태롭고 우울하고 짜증난다면, 이것이 바로 몸이 건강을 잃고 불균형한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빠르게 도파민 보상을 얻을 행동 외엔 모든 일이 다 지루하고 괴롭고 짜증날텐데, 과연 이런 몸을 우리가 사랑하고 가치있다고 느낄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에게 괴로움을 주는 몸을?


몸이 균형을 유지한다는 말 자체가, 내 몸을 내가 쉽게 컨트롤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즐거움을 느끼고 싶거나 고통을 피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무의식적으로 혹은 직감적으로 잘 아는 상태라는 뜻이죠. 당연히 몸의 건강과 균형을 유지하는 사람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쉽게 기쁘게 하는 자기 몸의 사용 설명서를 모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가장 쉬운 자기 몸의 사용 설명서는 결국 건강을 지키고 자기 몸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가지 생활 습관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몸은 내부의 균형이 잘 유지되고 혈액순환이 원활할 때, 몸 속에 염증이 없을 때 즐거움과 쾌감을 느끼는 센서가 가장 예민해지기 마련입니다. '작고 소박한 것에 기뻐하는 상태' 는,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고 이룰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몸 속에 염증이 많고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리 의식적으로 일상의 소소한 것에 기뻐하고 감사하려고 해도 그런 생각 자체가 좀처럼 들지 않습니다. 잠깐은 느낄 수 있어도 곧 사라지게 되죠. 19세기와 20세기는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과도한 신뢰가 사회에 만연해 있었고, 그 잔재가 남아 개인의 정신적 행복 수준마저도 의식적인 노력만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한동안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과 생각은 결코 몸과 뇌의 건강 상태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이 현대 과학의 연구를 통해 계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곧 몸 그 자체인 것이죠.


앞서 불건강한 상태로 다음의 내용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


- 특정 정당의 정치인에 분노가 치솟고, 그 정치인 때문에 내 일상마저 괴롭다.

- 누군가 강렬하게 미운 사람이 있고, 나를 자꾸 화나고 분노하게 만드는 일들이 주변에서 자꾸 발생한다.

- 어떤 특정한 목표 (성취, 재산 등) 를 이루면 반드시 행복에 이를 것 같고 그 전까진 불행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뭔가에 쉽게 중독된다.


이제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몸과 뇌가 건강과 균형을 잃은 것이죠.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타입의 사람으로 태어났고, 따라서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명확히 갈릴 수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타입과 싫어하는 타입의 정치인이 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내게 이익을 가져다 줄 정치인, 손해를 끼칠 정치인이 따로 있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정치인에 분노가 치솟는다든지 그 정치인 때문에 내 일상이 괴롭게 느껴지는 것은 병적 상태입니다. 흔히 그런 상황에서는 정치인 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괜시리 무척 미운 사람이 있거나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이 있고 자꾸만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일들이 이상하게 자주 발생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화나게 한다든지, 화를 북돋는 사건 사고들이 자꾸만 일어난다든지 등등. 이것은 두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결국 하나의 원인으로 통합됩니다. 하나는 내가 그렇게 나와 갈등을 일으키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상황 입니다. 사람들은 결국 유유상종, 즉 비슷한 사람을 끌어들이게 되어 있습니다. 내 몸과 정신이 건강하지 않으면 비슷하게 불건강한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입니다. 또 하나는 이때까지 우리가 알아본 대로, 뇌에 염증이 가득해 그 쉽게 불안해지고 괴로움과 고통을 자주 느끼게 되는 것이죠.


가만히 지켜보면 세상은 결코 평화롭지 않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국가간 갈등은 끊임없이 있어왔고, 그런 갈등은 복잡한 메커니즘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갑자기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전혀 뜬금 없는 사건 사고들도 알고보면 그 원인이 될 씨앗이 늘 주변에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그 씨앗들이 우연히 모여 합쳐질 때 폭발하는 것 뿐이죠. 게다가 근본적으로 인간 사회는 수시로 각종 변화가 일어나고 끊임없는 문제들이 발생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럼에도 별 동요 없이 잘 살고 있지만 누군가는 뭔가 일이 터질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한정해서 보더라도, 어느 때는 세상에 별 일이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갑자기 계속 나의 일상을 괴롭히는 일들이 발생한다? 그럴리는 없겠죠. 내 몸과 뇌의 반응이 달라진 것 뿐.


여지껏 살펴본대로, 몸과 뇌가 불건강하면 이처럼 일상을 괴롭히는 일들도 자주 일어나지만, 그와 동시에 뭔가에 쉽게 중독되기도 합니다. 내가 남들보다 더 즐거운 것, 더 강한 기쁨과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찾았다는 것은 착각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그렇게 한 두 가지에 중독된다는 것 자체가, 대부분의 일상을 괴로움과 지루함 속에서 보내는, 평균적인 행복수준이 남들보다 낮은 수준일 가능성이 훨씬 높죠. 중독 자체가 바로 그런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연예인들을 비롯해 유명인들이 마약에 빠지는 이유는, 남들보다 너무나 큰 쾌감을 단기간에 맛본 후 뇌가 다시 회복하지 못한 상태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뇌가 바뀌어버린 것이죠. 그래서 마약을 하지 않고서는 일상이 끊임없이 괴롭고 지루하고 짜증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불행한 것이죠. 게다가 중독의 특성이기도 한데, 마약을 한다고 강렬한 쾌감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처음엔 가능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강도는 점점 약해지고, 나중에는 마약을 하지 않으면 너무나 괴로운 상태가 되어 마약을 해야만 비로소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소위 '문제를 안일으키고 오래 가는' 연예인일수록 자기 관리가 철저합니다. 직감적으로 자기 몸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아는 거죠. 너무 과한 쾌감에 빠져도 안되고 지루한 일상이 이어져도 꾹 참고 운동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연예인들은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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