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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에 대해 (2)

by rextoys
ChatGPT Image 2025년 6월 30일 오후 12_24_08.png


인생이 혼자 걷는 길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 결국 나는 내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데 실패하게 된다. 내 자신이 소중한 근거는 내 스스로 마음에 드는 어떤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내 인생이 나 혼자만의 것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내 인생이 나의 것이 아닌, 예를 들어 내가 믿는 종교의 신에게 바칠 것이라고 믿거나 내가 속한 공동체의 번영을 위한 도구라고 믿는다면, 그리고 그 믿음을 굳건히 지킬 수만 있다면 그런 상황에서는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것은 과거 공동체주의나 전체주의 사회, 종교적인 사회에서 만연한 현상이었고,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소중히 하지 않아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었다. 강한 믿음이 죽을 때까지 사람들을 삶의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데 성공했기 떄문이다. 그 시절에는 나보다 내가 속한 공동체나 가족, 국가, 종교의 신이 훨씬 더 중요한 존재였으므로 나는 마음놓고 나를 낮추거나 희생해서 내가 의존할 대상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나보다 더 가치 있는 세상의 무엇인가에 기여하는 것이니, 그런 삶은 오히려 영광스러운 삶이라고 스스로 믿었다.


그런데 내가 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수록 나는 나 스스로에게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된다. 그 이유는 내가 나의 몸을 벗어날 수 없으며 내가 다른 사람의 몸을 빌릴 수도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에서 비롯된다. 나는 내 몸을 통해서만 감각을 느끼고 감정을 일으키며 기분을 맛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즐겁고 쾌락을 느낀다 해도 그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나를 더 즐겁게, 더 기쁘게 할 것들을 찾고 그런 감정과 기분을 느낄 행동을 하겠지만 내가 나를 하대한다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내가 나를 즐겁고 기쁘게 하지 않으니 나의 몸은 점점 더 불만족스러운 몸이 되고 그런 내 몸은 점점 더 나에게 보잘 것 없이 느껴진다.


국가나 공동체, 종교적 신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던 과거에는 그래도 상관 없었다. 나의 몸은 나의 것이 아닌, 더 크고 가치 있는 실체에 종속된 것에 불과했고, 모두가 그 사실을 믿었기 때문이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만족시키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었고, 모두가 자기 몸을 스스로 만족시키게 된다면 그런 사회는 결국 가장 가치 있는 어떤 실체를 잃어버리고 무너질것이라 믿었다. 모두가 그런 믿음을 공유하고 모두가 불만족을 공유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외롭지 않았다. 내 몸만 불만족스럽고 나만 하찮은 존재이면 매우 불쾌하겠지만 모두가 그런 믿음과 감정, 생각을 공유한다면 오히려 그것은 모두를 끈끈이 연결시켜주는 공감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개인이 그런 믿음을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내가 그런 믿음을 갖고 싶어도 시대가 그 믿음을 유지할 체제를 갖추지 못하면 내 멋대로 진심으로 그런 믿음을 유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시대에 내가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나 자신만을 끝없이 외롭게 만들 뿐이다. 이는 내 인생이 나 혼자 걷는 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더이상 선택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뜻한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 같은 시대에 다른 누군가에, 혹은 내가 속한 공동체나 국가, 그 외 종교적 신 등에 의존할 수 없다. 나의 부족분을 그런 것들로 채울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것은 누군가에겐 비극일 수도 있다. 내 인생을 내 스스로 책임지지 않고 다른 더 가치 있는 대상에 의탁시키고 그 대상에 의존하는 것이 더 마음 편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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