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홀로서기에 대해 (1)

by rextoys
ChatGPT Image 2025년 6월 30일 오후 12_22_04.png


독립된 사람으로 혼자가 된다는 것, 홀로 선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이상 교류하지 않고 홀로 떨어져 나와 은둔하며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무리 거부하려 해도 달라지지 않는 삶의 진실, 즉 모든 사람은 결국 물리적으로 그 누구와도 연결될 수 없이 분리된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뿐이며, 따라서 내가 느끼고 인식하는 것만이 나에게 허락된 세상의 전부라는 것, 내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책임이라는 사실을 통렬히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이같은 삶의 진리는 애초부터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받아들일지, 혹은 인정하는 것을 최대한 뒤로 미루고 회피할지, 아니면 끝까지 스스로를 속이며 살 것인지 정도의 선택지는 있다고 하겠다. 즉, 진리가 변하는 것은 아니며 내가 나 자신을 완벽히 속일 자신이 없다면 언젠가는 그 차가운 진리를 누구나 깨달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나는 결국 홀로 살아가는 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마음은 타인에 대한 의존적인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질 자신이 없기 때문인데, 책임질 자신이 없는 이유는 내가 나 자신을 부족하고 불완전한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부족하게 보다보니 그 부족한 부분을 다른 사람으로 채우려고 하는 의지가 강하게 생긴다. 즉 나는 완전한 1명의 인간이 아니라 0.1~0.4 정도 되는 인간이며, 내가 의존할 누군가가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줘야 비로소 온전한 1명이 될 수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누군가 내가 완전히 의존할 수 있는 대상을 성공적으로 찾았다 해도 그 다음이 문제다. 나는 나 자신을 부족하고 불완전하게 보기 때문에, 나의 일부가 된, 내가 의존할 대상도 시간이 지날수록 부족하고 불완전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근원적인 관점이자 삶에 대한 진실을 보는 관점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 자신을 완전하고 독립된 존재로 보지 않기 때문에, 나와 합쳐져 완전체가 되었다고 믿는 상대방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불완전하고 부족한 일부로 보이게 된다. 기껏해야 0.x 정도의 사람으로 보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처음에는 의존을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내가 나 자신을 스스로 무시했던 것처럼 상대도 무시하게 된다.


이같은 무시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그 중 하나가 내 인생에 발생한 문제의 원인을 상대에게 돌리는 것이다. 즉 내게 문제가 발생한 것은 내가 의존한 상대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며, 내가 좀 더 완전하고 더 나은 사람에게 의존했다면 내게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결국 모든 것은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상대방이 부족해서이며,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의존했던 그 상대방을 무시하기 시작한다. 내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한, 알고보니 나와 비슷하게 부족하고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그래서 서서히 선을 넘게 되는데, 그것은 상대의 감정과 기분을 무시하는 태도로 나타나거나, 나의 욕구와 욕망을 위해 상대를 이용하고 소비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내가 의존했으니 마땅히 상대방이 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따라서 내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줘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부족한 것을 알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그저 상대에 대한 화풀이와 분풀이만 늘어난다.


그래서 의존적인 사람은 처음에는 몇몇 소수의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관계는 서로에게 상처만 입히게 된다. 사실 그 관계는 깊은 관계가 아니라 의존적인 관계였기 때문이다. 의존적인 관계는 겉으로 보기에 매우 강하고 단단해 보인다. 말 그대로 부족한 둘이 만나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그러나 결국 스스로를 불완전한 인간, 스스로를 무시하는 관점에서 비롯된 그런 관계는 서로에게 실망만 하는 관계로 변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탈모 (1) - 남성 탈모의 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