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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 (1) - 남성 탈모의 원리

by rextoys

나이가 들면서 수많은 사람들, 특히 남성들이 갖게되는 주요 고민 중 하나가 바로 탈모 입니다. 기원전 12세기 이집트나 2세기 고대 그리스의 기록을 보면 대머리는 훌륭한 교훈과 지식을 전파하는 현인들의 주요 특징이기도 했죠. 하지만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지 않고, 성경에서도 강한 왕의 모습에서 빠지지 않는 외모적 특징이 바로 풍성한 머리칼이었습니다. 남성 호르몬과 관련이 깊기 때문에 남성 탈모가 주로 많다고 알려져 있지만, 요즘은 젊은 여성들에서도 탈모인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만 생리학적으로 남자들에게서 탈모가 더 심하게 발생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종별로는 백인이 아시안이나 흑인보다 더 탈모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탈모 치료제로 몇가지 약이 나와 있고, 모발 이식 수술을 비롯해 레이저 자극 치료 등 물리적으로 모발 성장을 자극하는 치료법이 개발되어 있지만, 그 효과는 사람마다 다르며, 아직까지 탈모는 치료와 예방이 꽤 까다로운 상황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면 실은 탈모는 병이라고 하기는 어렵긴 하죠. 이 글에서는 남성 탈모의 원리에 대해 중점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간단히 모발이 어떻게 생성되고 유지되고 빠지는지를 알아보죠. 모발 생성을 하는 단위 기관을 '모낭' 이라고 하는데, 이 모낭은 모낭 줄기세포, 모낭 전구세포, 진피유두(dermal papilla), 그 외 피지샘과 모세혈관, 신경 등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체의 모든 기관은 기계처럼 딱 구분되어 있지 않지만, 이해하기 쉽게 말해 모낭해서 핵심은 모낭 줄기세포와 진피유두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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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낭의 윗부분에 불룩하게 튀어나온 Bulge 영역이 있는데, 이 곳에 모낭 줄기세포들이 있고, 이 줄기세포들이 다양한 세포로 분화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모낭 전구세포입니다. 이 모낭 전구세포는 hair matrix라는 곳으로 가서 모발 몸체로 분화하게 됩니다. 즉 이 모낭 전구세포가 keratinocyte로 분화해서 모발 그 자체가 되고, 모낭 줄기세포에서 유래한 또다른 세포인 멜라닌 세포가 이 모발에 색을 입혀주어 검은털이 자라게 되는 거죠. (백발이나 노란 머리 등은 멜라닌이 덜 입혀지는 것) 이 때 자외선을 쐬게 되면 모발에 색을 묻혀주어야 할 멜라닌 세포가 피부 쪽으로 이동해서 피부를 보호합니다. 그래서 햇볕을 오래 쬐면 머리카락 색이 바랜 걸 볼 수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색이 바랬다기 보다 애초에 덜 입혀진 거라 볼 수 있죠. 모발 바닥 부분에는 모발의 성장을 조절하는 진피유두가 있습니다. 그 외 모낭 줄기세포는 주위의 여러 부속 세포들을 만들어 모발의 성장과 유지 기능을 하도록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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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발을 뽑을 때 끝에 뭔가 불룩한 게 대롱대롱 달려 있어서 '어라? 모낭을 통째로 뽑은거야? 이제 여기선 털이 안자라는 거야?'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아닙니다. Bulge 영역의 모낭 줄기세포와 진피유두는 힘으로 뽑을 수 없으며 이 두 가지가 잘 보존되어 있는 한 해당 영역에서 모발은 다시 자라납니다. 대롱대롱 달려있는 불룩한 그 무엇은 모발로 분화한 모낭 전구세포들의 흔적입니다. (이미 분화했기 때문에 살아있는 세포는 아니죠) 결국 모발 성장에 가장 중요한 것은 모낭 줄기세포와 진피유두인 셈이죠.


모발은 주기적인 생활사를 갖습니다.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고, 이 3단계가 계속해서 반복되면서 같은 모낭 자리에 꾸준히 모발이 자라고 빠지고 다시 자라는 것이 반복되죠. 우선 모낭 줄기세포로부터 비롯된 모낭 전구세포들이 모발 본체 (hair shaft) 로 분화해서 성장하는 단계인 Anagen 단계 (2-6년) 가 있고, 그 후 모낭에서 모발의 성장이 멈춰가는 상태인 Catagen 단계, 모낭이 멈춘 채로 가만히 정지되어 있는 Telogen 단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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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nagen 단계


모발 성장 단계인 이 기간은 대략 2-6년입니다. 우리가 머리를 기를때 계속 머리가 자라는 것은 바로 이 단계에 있는 모낭의 머리카락이라고 볼 수 있죠. 뒤에서 말하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Anagen 단계에 있는 모낭의 수가 줄어들고 이 단계의 길이 자체가 짧아집니다. 즉 원리적으로는 나이 들면서 머리카락을 어릴때만큼 길게 기르지 못한다는 말이겠죠. 그러면 평생을 길렀다면서 머리 길이가 엄청나게 긴 사람은 어떻게 된 걸까요? 우선 머리가 계속 자라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기도 하고, 해당 모발은 이 Anagen 상태가 상대적으로 오래 유지되고 있는 기이한 속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모든 머리카락이 똑같이 계속 길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나이가 들수록 모발 수는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이 Anagen 단계에서 일어나는 특이한 현상이 있는데, 바로 면역 특권(Immune Privilege)이라는 현상입니다. 이것은 모발이 만들어질 때 모발 주위에 면역 활동이 적게 일어나는 일종의 보호 작용입니다. 이는 모발이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기능을 합니다.


2) Catagen 단계


모낭이 퇴축되는 단계로 모발을 성장시키는 기능이 슬슬 멈추기 시작하는 단계 입니다. 모발은 더이상 자라지 않게 되며 이렇게 서서히 멈추는 데 2-3주가 걸리게 됩니다.


3) Telogen 단계


모낭에서 완전히 휴업을 선언한 상태 입니다. 대략 3-4개월동안 모발은 그대로 달려만 있고 더이상 자라지 않죠. 이 때 다시 모낭의 불룩한 Bulge에서 새로운 모낭 줄기세포가 작동하면서 새 모발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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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럼 모발은 대체 무엇인가? 세포인가? 단백질인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모발은 모발 전구세포가 keratinocyte 라는 세포로 분화한 후 자기 내부를 케라틴으로 쌓아서 죽은 상태로 층층히 이어진, 결국 죽은 세포이면서 케라틴 단백질이기도 한 것들이 쭉 이어진 게 모발인 셈이죠.




남성 탈모의 원인


모발은 결국 모낭에서 계속해서 생성되고 유지되고 퇴화되어 사라지고 다시 생겨나면서 유지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우선 점차적으로 Anagen 상태에서 Catagen 상태로 빠르게 전환이 됩니다. 즉 모발이 예전보다 덜 성장한 채로 멈추는 비율이 늘어나는 거죠. 결국 성장하는 상태인 Anagen 상태의 모발 수가 줄어드는데, 이는 각종 모발 성장 인자의 감소와 세포사멸을 촉진하는 cytokine의 증가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와 동시에 모발 본체가 얇아지면서 솜털처럼 얇은 털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모발 두께는 진피유두의 크기와 관련이 깊은데 나이가 들면서 이 진피유두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모발도 같이 얇아지는 거죠.


본격적인 탈모는 모낭 자체에 이상이 발생하면서 시작됩니다. 모발이 Telogen 상태 후 다시 Anagen 상태가 시작되면서 모발 성장이 반복되어야 하는데, 노화가 시작되면서 이 모낭에서 아예 모낭 줄기세포가 떠나게 됩니다. 모낭 줄기세포와 진피유도 등등 모낭을 구성하는 조직들이 모두 노화가 이루어져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기 시작한 거죠. 이 단계를 Kenogen 단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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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시간이 지나 모낭에 모발이 빠지면, 이미 모낭 줄기세포가 사라진 후이기 때문에 이 모낭은 빈공간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이 빈공간은 그대로 남아있거나 아니면 각질로 채워져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왜 하필 남성에 탈모가 더 많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성 모낭의 진피유두에서 발현되는 안드로겐 수용체(Androgen Receptor) 때문입니다. 안드로겐은 남성 호르몬 전체를 뜻하는 용어이고, 안드로겐 중에 가장 활성이 높고 양이 많은 것이 테스토스테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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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테스토스테론은 진피유두 세포에 있는 5-alpha-reductase type 2라는 효소(5-AR)에 의해 DHT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 이 되는데, 이것이 안드로겐 수용체에 결합한 후 몇 가지 단백질을 만들고, 결국 이 때 만들어진 기능 단백질들이 모낭의 퇴축을 일으키게 됩니다.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나이가 들수록 안드로겐 수용체가 제대로 조절이 되지 않아 과잉으로 만들어지거나 더 민감하게 반응해서 남성에서 모낭의 퇴축을 더 심하게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면 대머리는 남성호르몬 분비가 많으니 정력의 상징 아니냐, 할 수 있지만, 아닙니다. 오히려 테스토스테론 등 남성호르몬의 분비는 나이가 들수록 줄어듭니다. 그리고 테스토스테론에 의해 만들어지는 DHT 역시 사춘기 이후로 항상 몸에서 꾸준히 만들어지며, 심지어 나이들면 이 DHT의 양 역시 줄어듭니다. 다만 이 DHT에 반응하는 안드로겐 수용체가 제기능을 못하는 것 뿐이죠. 한마디로 말해서 그냥, 전체적인 호르몬 균형이 무너진 것 뿐입니다. 여성에서도 남성호르몬은 만들어지지만 남자와 달리 양도 적고 안드로겐 수용체 기능도 적기 때문에 남성보다 이로 인한 탈모가 적은 것이구요.


문제는 탈모는 남성호르몬 불균형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외 단순히 노화로 인한 모낭 퇴축, 미세 염증, 식습관이나 몸 속 면역체계 이상, 스트레스, 유전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고 남성호르몬 불균형에 의한 문제는 그 여러가지 요인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남자에게서 이 문제가 크게 나타나는 이유는, 남성호르몬 불균형 문제가 탈모 유전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죠.


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탈모를 피할 수는 없지만, 보다 심하게 진행되는 탈모는 분명 유전의 문제가 맞습니다. 그리고 워낙 탈모인이 많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어떤 유전자가 명확히 탈모에 관여하는지를 밝히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현재 Xq12 염색체라는 곳의 남성호르몬 수용체 변이를 비롯해 10여가지 유전자가 밝혀져 있지만 명확하게 규명된 것은 아닙니다. 또한 아버지가 탈모이면 자식이 탈모인가? 이것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우선 어머니 유전자의 효과도 있고, 무엇보다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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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탈모를 비롯한 여러 탈모를 일으키는 원인에는 이처럼 노화, 남성 호르몬 수용체의 이상 반응, 유전적인 요소 외에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미세 염증' (microinflammation) 입니다. 미세염증은 상처가 났을때 상처 부위가 부어 오르거나 감기에 걸렸을 때 온 몸이 쑤시고 열이 나는 것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염증 증상 없이, 세포 내에서 별다른 증상 없이 자잘하게 발생하는 염증을 뜻합니다. 말 그대로 '미세한 세포'에서 만성적으로 발생하는 염증이죠. 미세염증은 두피에 사는 여러가지 미생물들 (Propionibacterium sp, Staphylococcus sp and Malassezia sp등)의 집락체, 그리고 모낭 주위의 오염물질들, 세포 내부의 활성산소, 담배, 자외선 등등 여러가지 요소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주 미세염증이 발생하면 자연스레 모낭 줄기세포와 진피유두 역시 염증 반응에 의해 공격을 받아 그 기능에 이상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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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위에서 언급했듯, 모발이 자라는 Anagen 단계에서는 '면역 특권', 즉 모발 주위의 면역 기능이 줄어들어 모발 성장이 공격받지 않는 기전이 작동하는데, 어떤 이유에서든 이 면역 특권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오른쪽 그림과 같이 수많은 면역 세포들이 모낭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탈모가 바로 '원형 탈모' 증상이죠.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어떠한 이유로든 몸 안의 면역계가 비정상적으로 과잉 활성화될 때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직장 상사에게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너무 힘든 과제를 맡아 해결하기 위해 여러날을 고생하는 경우 원형 탈모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모발 줄기세포를 활성화시키는 'Gas6' 이라는 인자를 억제하여 모발 성장을 억제하는 방식으로도 탈모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고지방 식사를 많이 하거나 비만인 경우 모발이 얇아지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여드름과 뾰루지 증상을 나타내는 피지샘이 비대해질 경우 남성형 탈모가 더 심하게 나타날 수 있는데, 아직 정확한 기전은 연구중에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남성형 탈모는 노화와 유전적인 요소, 그 외 여러 건강 문제나 환경적인 요소로 인해 모낭을 구성하는 조직들의 노화, 몸 안의 호르몬 균형과 면역 체계의 균형이 깨지면서 발생하는 복합적인 증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실은 이것이 바로 탈모의 완전한 치료와 예방이 무척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냥 너무 자연스러운 생리학적 과정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뭐 하나 바꾼다고 해서 되돌리기가 힘든 거죠.



탈모 진행과 검사 방법


흔히 탈모인들을 보면 뒤통수에선 탈모가 진행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뒤통수는 영구 모발존이라고 불리우며 탈모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뒤통수에 존재하는 모낭들엔 테스토스테론을 DHT로 바꾸는 효소와 남성호르몬 수용체가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DHT와 남성호르몬 수용체의 반응이 남성 탈모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남성형 탈모는 보통 머리 이마 부분과 정수리에서 시작되는데, 이 역시 이 부위에서 DHT를 만드는 효소와 남성호르몬 수용체가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남성 탈모의 진행과정은 1951년 Hamilton의 연구와 1975년의 Norwood의 연구를 합쳐 < the Hamilton-Norwood 분류 > 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분류는 남성형 탈모 진행 단계를 7단계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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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류의 단점은 오직 남성형 탈모에만 적용되는 분류법으로 여성 탈모에는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탈모의 진단은 두피피부경 검사 (Trichoscopy)로 진행하며 두피에 소량의 오일을 바른 후 피부경의 렌즈와 조명을 비춰 모발과 모낭의 상태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보통 모낭당 모발이 2-5개가 나오고 정상 상황에서 모낭당 모발이 1-2개인 경우는 30% 이하인데, 이 비율이 증가하면 탈모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외에 모발을 당겨보는 시험, 4mm가량 뚫어서 조직 검사하는 방법 등을 시행해서 진단을 하게 됩니다.



결국 모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모발을 성장시키는 핵심 조직, 즉 모낭을 최대한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탈모는 치료가 아니라 예방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 이유이며, 모발이 빠진 자리가 케라틴 조직으로 채워지면 이미 더이상 방법이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최근 많이 시행되고 있는 모발 이식 수술 역시 심겨진 모낭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 즉 모낭이 있던 자리나 그 부근 등 혈관이 가까이 있고 줄기세포가 잘 자랄 수 있는 조직이 있는 곳에 시행되어야 모근의 생착률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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