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욕구

by 치의약사 PENBL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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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유명 관광지에 가면 동양인들은 하나같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남의 시선과 눈치를 중시했던 공동체주의 시절의 잔재일까? 한편으로 인정욕구를 채우는 방식으로 볼 수도 있는데, 공동체주의 문화권에 속한 국가 사람들일수록 이런 경향이 도드라지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는 어린 시절부터 유독 기묘한 방식으로 인정욕구를 채우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 인정욕구는 동서양 할 것 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채우고 싶어하는 욕구인 것은 분명하며, 매우 중요한 욕구이기도 하다. 생물로서의 관점에서 봐도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은 생존과 번식의 가능성을 높이는데 이득이 된다. 다만 인정욕구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채워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단계를 무시하고 인정욕구 자체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로는 인정욕구가 제대로 채워지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정욕구는 말 그대로 부모나 지인 등 타인의 칭찬, 권위자나 상급자의 인정 표현, 주변인들 혹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외부인들의 인정 표현 등등을 받는 것으로 채워진다. 그런데 이 때 인정을 해주는 사람들의 말투, 표정, 전달하는 언어적 비언어적 메시지, 태도 등등은 모두 나의 감각 기관을 거쳐 뇌에서 해석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즉 인정을 하는 사람들의 신경과 나의 뇌 속 신경이 직접 연결되어 그 인정의 내용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인정 표현이 내 머리 속에서 해석을 거쳐 그 내용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인정 욕구를 제대로 채우려면 남이 나에게 해 준 인정의 표현을 내 뇌가 나를 채우는 형태로 해석해야만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보여준 인정의 표현이 나를 채우는 형태로 해석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내가 그 인정과 관련된 성취나 나의 상태에 대해 나 스스로 만족하는 경험의 축적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시 말해 그 누구도 인정을 안해주더라도, 내가 그 일을 통해 얻은 크고 작은 성취가 진심으로 나 자신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남들의 인정 표현을 해석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뇌의 해석 기능에 달려있지 상대방의 표현 의도나 마음에 달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나와 타인의 신경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한 상식이다. 그래서 내가 그 일을 통해 나 스스로를 만족시켜본 경험이 충분히 쌓여 그 자체로 나를 채우지 못하면 타인의 인정 표현을 해석하는 기능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학생이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수학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수학 공부가 내게 별다른 만족감을 주지 못하고 그냥 좋은 점수를 위한 수단으로만 느낀다고 해보자.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학생의 수학 실력을 칭찬해도 애초에 학생이 좋아하는 과목이 아니니 그런 칭찬 역시 학생의 마음을 온전히 채우도록 해석할 수 없다. 학생 스스로 자신의 수학 실력이 스스로를 만족시켜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칭찬을 받으니 기분은 좋을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의 인정이 공허하다고 느낄 수 있다. 자기 마음에 와닿는 형태로 직접 바꿀 수 없으니까. 반면 수학 문제를 풀어내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기쁨을 준다면, 그리고 그런 기쁨이 쌓여 스스로 자부심과 만족감이 쌓인다면, 그 때는 내가 좋아하는 행위로 나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과정 전체를 온전히 인정받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즉 내가 어떤 것에 만족을 느끼는가 - 이것은 나의 타고난 성향을 뜻한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는데, 그런 내 성향 자체를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흥미 없는 일을 돈만을 보며 열심히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그 일이 지적 호기심을 채우거나 스스로 자부심과 자긍심을 느끼지 못하면, 스스로 그 일을 '하기 싫지만 돈 때문에 하는' 일로만 느끼게 된다. 이 때 상사든 권위자든 그의 업무 능력을 높이 사고 주변에서도 그의 능력을 띄워준다 해도, '여전히 하기 싫은 일' 이라는 느낌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로 인해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기대는 할 수 있지만, 여전히 인정 욕구를 제대로 채운다는 느낌은 들기 어렵다. 하지만 내 스스로 호기심과 열정이 있고 관심이 가득한 일을 한다면 그 과정에서 얻은 크고 작은 성취들이 나의 내면을 채우는 경험들을 기억에 차곡차곡 저장하게 된다. 이 때 그 성취들을 누군가 인정하면, 이 역시 나의 본성 - 내가 좋아하는 일이 곧 나의 본성과 깊이 닿아 있으므로 - 에 대한 인정으로 느껴지며, 내가 쌓아온 만족의 기억에 그러한 타인의 인정을 같이 연결지어 쌓을 수 있게 된다.


여행지에서의 사진과 영상을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것은 어떨까? 그 여행 장소에 있는 유적, 경치, 그 공간에서 머문 시간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면, 다른 사람들이 '부럽다' '행복해 보인다' 라는 말을 들어도 아무 감흥이 없거나 심지어 사람들을 속이는 기분마저 들어 현타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장소를 충분히 즐기고 누렸다면, 그래서 행복한 기억을 잘 저장했다면,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그 때의 그 행복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자극제가 된다.


자기 스스로 충분히 만족 후 그 다음 인정 욕구를 채우는 수순을 밟지 않고 처음부터 인정 욕구에만 매달리면, 결국 멀찍이 보이는 남들의 인정 표현이 그저 공허하고 허무하게 느껴질 뿐이다. 마치 사람들이 나를 보며 인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분장해서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보고 인정하는 모습을 옆에서 무심히 지켜보는 느낌과 같다. 그런 식으로 채우는 인정 욕구는 처음에는 그래도 조금 감질나는 정도의 만족을 주기 때문에, 혹시 더 큰 성취를 하거나 더 많은 것을 자랑하면 조금 더 큰 만족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자꾸만 인정 욕구에 매달리게 만든다. 하지만 신경학적으로 그런 식으로는 아무리 해도 인정 욕구를 채울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 노력을 하는데도 마음 속은 텅 비어갈 뿐이다. 결국 인정 욕구의 본질은 타고난 나 자신의 가능성을 인정받는 것을 나 스스로 느끼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타고난 나 자신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내가 끌리는 것, 내가 나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 행위들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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