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인간게놈유전체 분석 프로젝트가 핫한 이슈로 떠올랐을때,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던 바가 있었다. 만약 기업 등 근로자를 채용하는 조직에서 개인의 유전 정보를 이용해 선별하면 어떡하지? 예를 들어 정신질환을 발생시키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미리 서류에서 탈락 시킨다면? 아이를 임신했는데 그 아이가 향후 고혈압, 당뇨 등 각종 성인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가졌다고 판단될 경우, 낙태를 허용해야 할까? 결혼 상대방이 서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질환 발병 여부를 사전 체크한다면?
이런 고민들은 모두 쓸데없는 것이 되었다. 물론 세상엔 특정 염색체나 유전자가 결손되거나 변형되어 발생하는 희귀질환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비교적 흔한 질환인 성인병이나 정신질환 등등을 '무조건' 일으키는 유전자는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몇 가지 지 관련 있는 유전자들이 있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유전자이지만 조금씩 그 유전 정보가 다를 뿐이라는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더욱이 그런 경우에도 유전정보의 차이는 개인의 다른 특성을 결정하는데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치는 정도이며, 특정 질환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다소 높더라도 그 반대급부로 다른 기능을 특화시키는 것과 관련 있을 수 있다. 여기에 환경적 요인의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자면 타고난 유전 성향과 환경의 영향이 합쳐져서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거나 낮다 수준의 판단만 할 수 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다. 비유를 하자면 곱상하고 여리여리한 외모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을 발산하지만 그 사람의 외모를 그렇게 만든 유전자는 그가 감염병에 쉽게 걸리게 만들어 늘 골골 대도록 만들 수 있다든가. 또한 어려서부터 늘 주변에서 사람들이 도와주고 살다보니 나이 들어서 스스로 독립하는 법을 잘 몰라 작은 일에도 쉽게 넘어져 큰 병에 걸린다든가.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쉬운 이해를 위한 비유일 뿐이고 외모와 질환 사이에 관련된 유전자는 밝혀진 바 없다.
불안 질환도 마찬가지다. 남들보다 더 쉽게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히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유전자 데이터를 이용한 대규모 연구가 그동안 꾸준히 있었다. 여기엔 덴마크의 정신질환 관련 빅데이터 연구, 영국의 바이오뱅크 연구, 미국 참전 용사 연구 등이 있다. 이 과정에서 뇌 가소성에 영향을 미치는 BDNF 인자라든지 부신피질호르몬, 에스트로겐 신호 전달 관련 유전자의 변이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정도의 결과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외 실험쥐를 비롯한 여러 동물들의 실험을 통해서도 관련 있는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 정도의 결론을 얻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결과는 인과관계가 부족하며 일관되게 나타나지도 않았다.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좀 더 확실한 결론을 얻을 수 있겠지만, 어쩌면 불안 질환 역시 다른 질환처럼 특정 유전자에 의해 발생하는 병이라기 보다는 그냥 그럴 가능성이 높은 성향이 있고,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어린 시절의 양육 환경이나 자라면서 겪는 인생의 사건들에 의해 불안 질환이 발달하는 것일 수 있다. 현재로서는 이런 결론으로 가고 있는 듯 하다. 실은 이는 오랜 인류 역사의 기간 동안 축적되어 내려온 인류의 경험적 통찰에도 부합하는 결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연구들에서 얻을 수 있는 유용한 지식이 있다면, 어쨌거나 다른 사람보다 더 쉽게 불안 질환에 빠지는 기질은 어느 정도 타고난다는 점이다. 따라서 남보다 더 쉽게 불안해지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이 성향을 무리하게 바꾸려고 노력하거나 불안하지 않은 사람을 따라하는 것은 말 그대로 시간 낭비 인생 낭비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쉽게 불안에 시달린다면, 경제 전문가와 기업가들이 말하는 리스크 예찬에 대해 귀기울이거나 따라할 필요가 전혀 없다. 리스크를 걸어서 투자하지 않으면 화폐 가치가 장기적으로 떨어지니 그게 더 위험한 거란 말이라든가, 결국 사업을 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는 말 등등은 모두 불안 성향이 낮고 위험 추구 성향이 높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그런 성향 자체가 지금 시대의 능력이며, 마치 누군가가 미술이나 음악적 재능을 타고 나고 그런 재능을 굳이 따라하거나 노력으로 따라잡으려 하지 않듯이, 그렇게 불안을 안느끼고 과감한 리스크를 거는 능력도 굳이 따라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렇게 내가 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정하고 굳이 그 밖을 넘보거나 쓸데없이 부러워하는 것은 그렇잖아도 짧은 인생을 엉뚱한 데 낭비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안이 높은 사람은 리스크가 높은 일, 하고 싶은 일이지만 보상의 가능성보다 실패 가능성이 높은 일을 하기 쉽지 않다. 어느 정도 주변 환경의 풍족한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어느 순간 불안이 과대하게 커져 자기 자신을 집어 삼킬 수도 있다. 물론 세상엔 악조건에서도 끝까지 버티고 이겨낸 사람들이 많지만, 불안 질환이 심한 사람의 경우엔 주변의 절대적인 도움 없이는 그게 불가능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정신력으로 이겨내라고 우기기엔 이미 인간의 뇌가 그렇게 모호한 정신력으로 고난을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정신적으로 힘든 것은 육체적인 고통과 생리적으로 동등한 메커니즘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극심한 불안과 그로 인한 고통을 정신력으로 버티라는 말은 매 순간 지속적으로 옆에서 누가 주먹이나 무기로 몸 구석구석을 때릴때 그것을 계속 정신력으로 버티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물리적 통증과 정신적 통증이 일어나는 기전은 유사한 것을 넘어 서로 깊게 연관 되어 있다. 풍족한 환경은 끊임없이 몸에 가해지는 물리적 공격을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막아주고 있는 상황과 같으며, 따라서 그런 조건이 없다면, 그래서 극심하게 불안에 시달린다면 그냥 포기하는 것이 나은 선택일 수 있다. 계속해서 맞으면 맞은 부위가 곪거나 영구히 장애가 올 수 있는 것처럼, 정신적 고통 역시 뇌에 영구적인 흉터를 남길 수 있는데,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 참조 >
Genetic insights into the neurobiology of anxiety Koskinen, Maija-Kreetta et al. Trends in Neurosciences, Volume 46, Issue 4, 318 - 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