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부터 남들보다 매우 예민하고, 불안 수준이 높았다. 물론 그 때는 내가 그런 증상이 있다는 것을 나 뿐 아니라 가족들 모두 잘 몰랐다. 다만 ADHD 진단을 받긴 했는데, 그게 그렇게 심한 수준은 아니었다고 한다. 실은 나의 불안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심장 질환 때문에 일상에서 자주 통증을 느꼈고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 많이 위축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명확하게 인과관계를 알지는 못했다. 찾아보니 불안에 대한 뇌과학적 기전이 밝혀지게 된 것 자체가 비교적 최근의 일이며, 더욱이 심장 질환과 불안 사이의 관련성은 개연성이 높고 추측하기 쉽지만, 역시 명확한 메커니즘은 여전히 모호하다.
그동안 상담을 통해, 정신과 진단을 통해, 그리고 나 스스로 이것저것 찾아 공부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다 결국 끝에 이르게 된 것이 불안과 관련된 여러 생물학적 메커니즘 연구들이었다. 이런 연구들을 들춰보다 생각보다 수많은 요인들이 불안에 관련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여전히 속 시원하게 밝혀진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요즘 인생 2막을 준비 중에 있는데, 아무래도 남은 인생은 불안을 다스리고 나같이 기질적으로 불안하고 예민하게 태어난 사람이 어떻게 하면 이 짧은 인생 잘 살다 갈 수 있을까를 연구하고 사람들과 공유하며 지내는데 보내는 것이 어떨까 하고 생각 중에 있다. 각설하고..
생각이 많으면 불안해지기 쉽다고 하는데, 실은 그 인과관계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불안은 뇌 속 편도체의 과민 반응과 관련이 있지만, 실은 뇌는 매우 복잡해서 편도체 외에도 불안이나 우울 등 정신적 문제와 관련된 기전들이 수없이 많고, 아직 이에 대한 퍼즐은 만족할만큼 풀리지 않았다. 불안하기 때문에 그 불안을 억제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많다. 실제로 많은 증거들이 감정이 먼저 발생하고 그 다음 의식이나 행동이 나타나는 기전을 가리키고 있다. 어쨌든 나 역시 늘 생각에 쉽게 빠지곤 하는데, 오랜 상담과 명상, 스스로의 연구를 통해 이제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생각이 떠오를 때면, 이것은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원인으로 또 내 뇌 속 신경세포들이 염증을 일으키고 있나보다 하고 알아채려 노력한다.
오랫동안 불안한 감정 속에서 살아온 덕분(?)에 남과 좀 다른 부분이 있다면, 나는 거의 모든 분야에 겉으로라도 일단 관심을 갖고 그 기저의 원인을 알아내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깊게는 아니더라도 대충이라도 세상사 이것 저것에 관심을 갖는다. 그 범위는 작은 생물과 인간의 생리학적 원리부터 정치, 경제, 국제 정세(?) 까지 이어진다. 이런 관심을 주식과 채권에 투자할 때도 응용하고, 불안한 사람의 투자 방식을 연구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오랫동안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은 후 내린 나의 결론은, 미래 경제 상황을 예측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투자를 할 때 내가 믿음에 투자하는 거지 객관적인 미시 거시 경제나 기업의 미래 따위를 예측해서 투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한다. 주로 배당주 ETF에 많이 투자하는 편이며, 한국과 미국의 기업들의 운명과 내 주식의 운명이 같이 가도록 세팅을 한다. 이 말은 즉 그만큼 수익률을 매우 낮게 잡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안하다보니 리스크에 대해서도 흥미를 갖고 많이 연구했다. 그동안 살면서 지켜보니 성공 = 리스크를 감수하는 능력 + 좋아하는 것을 찾아 몰두하는 능력이다. 나는 학벌이나 직업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편인데, 그것은 내가 서울대를 나왔고 약사와 치과의사 면허도 두 개도 갖고 석사까지 있지만, 아무래도 남은 2막의 인생에선 이 모든 것이 무용지물로 될 것 같아서이기도 하다. 내게 맞지 않는 것은 아무리 그럴듯한 것도 아무 쓸모가 없다.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안 수준이 높은 사람은 좋아하는 것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뇌가 불안을 처리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소모해 버려 늘 탈진 상태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도파민 보상 체계가 정상 작동하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불안은 지속적이고 안정감 있는 보상보다는 굵고 짧은 보상을 선호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을 '좋아한다' 라는 것은 그런 것에 있지 않다. 그렇게 굵고 짧은 보상은 금방 적응되고 이후에 허무감과 공허감만 몰려올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지병까지 있으면 불쾌한 감정만 더 커질 수 있다. 해부학적으로도 쾌와 불쾌가 같은 부위에서 처리된다는 증거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불안 수준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도 장기간 낮출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며, 현재로서는 약이 1차적으로 가장 큰 도움이 된다. 불안 수준이 낮아지면 그제서야 비로소 리스크를 걸 수 있는 용기도 생긴다. 많은 사람들이 무작정 하이 리스크 하이 프로핏을 외치는데, 리스크를 걸 수 있으려면 우선 불안수준이 매우 낮게 유지되어야 하고, 즉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어야 하고, 일단 리스크를 거는 대상에 대해 흥미가 높아야 한다. 리스크를 거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건 리스크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고 꾸준히 대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돈 잘버는 길을 포기하고 돈은 안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인문학의 길을 선택한 학자는, 사실상 자기 인생 전체를 리스크를 거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학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 중 의외로 사업가 만큼 배포가 큰 사람이 많다. 모르는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한데, 학자 하면 뭔가 겁이 많고 쪼잔한 사람을 상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불안하면 학자의 길을 걸을 수 없거나 가더라도 미쳐버릴 정도로 정신적 문제에 시달릴 수 있다. 당연히 사업으로 성공하는 것도 우선 그 사업 내용이 좋아야 리스크를 걸 수 있다. 요식업으로 실패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요식업을 하지 않는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요식업 창업의 실패율을 계산해 기대 소득을 계산하면 그 돈을 그냥 은행에 넣어 놓는 것이 훨씬 더 수익이 높기 때문이다. 요식업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그 일 - 식당 창업 - 이 우선 좋아야 하고, 그래야 대출 받아 돈 넣어서 그 식당을 신나게 운영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약, 운동, 단식, 건강한 식생활, 나와 맞는 사람들과의 소통 등등이 모두 높은 불안을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불안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진 못했는데, 실은 이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다. 불안이 높은 것은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질병과 다르게, 우리 몸이 부적응한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선호하는, 즉 적응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그 중 하나다. 다시 말해 불안이 높은 데엔 그만한 이유가 - 과거의 경험이든 유전이든 - 있고, 그 불안 덕분에 오히려 해당 개체의 생존과 번식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하기 때문에 더 노력하고 더 많이 이것저것 관심을 갖고 남보다 더 힘들게 살 수 있으며, 어느 정도 그 과정을 이루고 나면 그 후엔 대신 남들보다 더 빨리 탈진해 버릴 수 있다. 이것이 유전자 관점에선 그다지 나쁜 선택이 아니다. 유전자는 우리의 행복 따위엔 아무 관심이 없으니까.
그런데 아직 우리 유전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른다. 우선 사회는 우울, 불안 수준이 높은 사람을 걸러내고 격리하려 노력한다. 거의 모든 직장이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막으려고 애쓴다. 우울과 불안은 과거 흑사병때처럼 전염병이 돌 때 사람들을 집에 꼼짝 않고 머물게 함으로써 생존율을 높였다는 가설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우울과 불안이 극심해지면 히키코모리나 독거 노인이 되어 사회적 골치덩이만 될 뿐이다.
한편으로 보면 우울과 불안은 그만큼 사람들이 일정한 공간에 모이든 개인 공간에 있든 한정된 곳에서 꾸준히 자기 작품을 만드는데 시간을 들이는데 최적화된 성향으로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수많은 작가들이 - 문학, 음악, 미술 등 - 어차하면 우울/불안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것 역시 언뜻 보기엔 작품이 잘 안되서라고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그냥 그런 기질을 타고난 것일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그런 탤런트를 타고나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가 되는데, 실제로 그래서 오늘날 은둔자 생활을 하는 불안 / 우울이 높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해결책을 못찾고 있다. 그냥 시대를 잘못 만난 탓일 수도 있는데, 만약 과거 농업 국가에 태어났다면 어떻게든 일단 나가서 논밭이라도 매야 했을테니까. 아무리 우울/불안 수준이 높은 사람이라도 억지로라도 육체 노동을 하고 나면 잠시나마 정신적으로 맑아질 수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불안은 매우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문제이다. 다만 위에서 말했듯 이것을 꼭 다른 질환처럼 중요한 병으로 봐야할지 애매모호하며, 결국엔 지금보다 더 강력하고 부작용 적은 약이 나오기 전엔 이렇다할 방법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불안을 완화시키는 특별한 방법은 그냥 챗 지피티나 구글링으로 찾아보면 나오는 것 이상이 없으며, 뭔가 대단한 것을 안다고 말하는 학자나 의료인이 있다면 그 이야기도 잘 들어보면 결국 그 내용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현재까지로는 운동, 식단, 관계 이 세 가지이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한편으로, 저 어딘가에 대단한 해결책 -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된다거나 더 안정적인 직업, 배우자를 만나거나 자기 아이가 잘되거나 등등 - 이 있을 거란 생각은 착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히려 그걸 충분히 받아들이고 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보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