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맛있는 음식이다. 어린 시절엔 편식이 심해 김치, 시금치, 혹은 발효 음식 같은 것도 못먹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세상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해외 여행 중 만나게 되는 그 나라의 희한한 발효 음식도 거리낌 없이 잘 먹는다. 여러나라 음식들을 먹어 봤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입맛에 가장 맞는 음식은 한식이다. 세상엔 수많은 요리 재료들이 있고, 한국에서 구하기 힘들면서도 매우 좋은 맛을 자랑하는 재료들 (일본의 와규, 아르헨티나의 소고기, 남부유럽과 동남아의 크고 아름다운 해산물등) 이 많지만 그래도 한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 고추장과 고춧가루, 마늘과 간장, 설탕으로 맛을 낸 자극적인 맵고 짠 음식들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내가 끊임없이 맛있는 음식과 불편한 타협을 하며 내적 갈등에 자주 빠져온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건강 문제로 원래 이런 자극적인 음식들을 멀리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몸 상태의 이유로, 나는 싱겁게 먹고 덜 맵게, 덜 달게, 조리를 최소화해서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몸에 맞다. 무엇보다 소식을 하는 것이 건강에 최적이다. 물론 이는 전세계 모든 사람들의 공통이겠지만 나는 지병 관리 문제로 특히 더 그렇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자극적인 음식들에 대한 유혹은 마약 중독과 같아 도무지 끊을 수가 없다. 자극적이고 소위 맵짠단 음식들은 몸에서 염증 수치와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높이고 장내 미생물 균주에도 악영향을 미쳐 만성적인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특히 몸이 예민할수록 그 영향은 더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뇌 속에서 '마약 중독'과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중독된 탓에 완전히 끊기는 어렵다.
음식이라는 게 참 역설 그 자체다. 몸에 가장 좋은 건강식은 돈도 별로 들지 않고 힘도 안든다. 마트에서 생야채와 잡곡, 신선한 해산물과 고기 등등을 사서 아주 단순하게 조리하면 그만이다. 주로 끓는 물에 데치고 삶고, 굽더라도 기름 최소로 해서 살짝만 구우면 그만이다. 싱거우면 간장과 약간의 매콤 시큼한 양념 좀 넣고. 게다가 소식하면 몸에 더 건강하므로 건강하게 먹을라치면 비싼 고기도 자주 먹을 수 있다. 적게 먹으면 되니까. 하지만 입맛이란 게 참 그렇지 않은게 문제다.
수입과 자산이 늘고 생활수준이 올라갈수록 비싼 음식, 고급 음식을 즐기게 되지만 사실 그런 음식들에 입맛을 길들이면 길들일수록 점점 더 건강한 음식을 먹기는 힘들어진다. 그 어떤 비싸고 고급스런 음식도 집에서 마트의 신선한 재료로 대충 한 음식보다는 건강에 안좋다. 원체 타고나기를 건강한 사람은 아무 상관 없지만 지병이 있는 사람 혹은 나이 들어 성인병이 있는 사람들은 꽤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음식도 다른 중독 물질과 같아서 한 번 맛들이면 벗어나기가 왠만해선 힘들기 때문이다. 술담배 못 끊는 사람에게 왜 술담배를 못끊느냐 비난할 수 없다. 어차피 머리 속 중독 메커니즘은 똑같으니까.
나는 평일 아침 점심을 굶고 저녁 역시 최대한 집밥을 먹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잘 안되긴 하지만. 대신 맛있는 음식을 일요일에 먹는다. 설계(?)는 이렇게 해두었지만 잘 못지킨다. 다만 그래도 평일 아침 점심 굶는 것까지는 이제 완전히 습관화가 되었다. 카페에 가도 당을 쏙 뺀 차를 마신다. 습관이라는 게 참 대단한 것이 이렇게 습관을 들이니 정말로 이걸 별 어려움 없이 지키게 된다. 한 일 년을 이렇게 하니 정말 몸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지병에 의한 문제를 거의 느끼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을 정도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평일 저녁에 완전 건강식만 먹고 일요일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식의 습관 구축도 이론상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할 엄두 자체가 나질 않는다 아직은.. 언젠가 몸이 더 나빠지면 결국 도전하게 될까? 문제는 몸이 나빠지면 오히려 충동에 쉽게 넘어가기 때문에 습관을 만들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지금 건강할 때 만들어둬야 하는데..
자연스럽게 언젠가부터 먹는 것에 무척 관심이 커져 버렸다.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욕구와 참아야 한다는 이성적 사고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이 거꾸로 음식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버린 것이다. 어떤 식당에서 무슨 음식을 먹을 때든 먹으면서 분석하고,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고를 때도 한참을 조사하고 비교 분석하곤 한다. 해외 여행 나가서도 하루 종일 마트 식재료를 돌아보며 조사할 때도 있다.
다만 그래도 여전히 맛집 식당의 자극적인 음식에 대한 유혹을 끊을 수 없다는 것..결국은 담배처럼 평생을 참는다는 개념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