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주제

알고는 있었는데

by 치의약사 PENBL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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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으면 행복하지 않다고 하지만, 그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힌 연구는 없다. 다만 상관관계가 있다는 정도일 뿐. DMN이라 해서 내적인 탐구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기 반추 혹은 과거에 대한 반복된 생각에 갇혀 불행해진다는 말도 많지만, 이 역시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밝혀진 것은 아니다. 역시 상관관계가 있다는 통계적 근거가 있을 뿐.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생각이 늘 많았지만, 그리고 남들보다 더 예민하고 불안한 성향을 지녔지만, 그렇다고 남들보다 더 불행하게 살았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좋아하는 것이 명확하고, 싫어하는 것과 피하고 싶은 것들이 명확해서, 내 마음이 다치거나 너무 괴로울 것 같으면 얼른 피하고 방어하면서 마치 현실을 물수제비 뜨듯이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는 그걸 보고 신경증적인 삶의 태도, 회피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보다 남들보다 더 약하게 태어난 사람이 내 분수를 지키고 산 것으로 생각한다. 다리가 다쳐서 평생 장애를 지니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걷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회피적인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럼에도 꽤 오랫동안 인정하지 않고 살았던 부분이 있다. 나는 인간의 마음, 특히 마음 건강에 관심이 많고, 불안과 우울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에 관심이 많으며, 철학적 관점이 아닌 몸의 건강과 뇌의 건강 차원에서 행복을 유지하는 방법과 메커니즘에 관심이 많다. 이런 것에 초점을 맞추고 이와 관련된 글만 쓰고 이런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면 별로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없다. 항상 우울한 사람, 무거운 사람, 어두운 사람 취급받기 일쑤다. 그래서 나는 그런 나의 타고난 기질과 그런 것에 대한 내 취향을 오랫동안 억누르거나 숨기며, 다른 더 밝은(?) 주제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한 적도 있다. 물론 모두 실패했다. 그것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정신 건강이라든가 행복, 우울과 불안 문제는 그냥 뇌의 호르몬 균형이 깨진 상태이니 약을 증량해서 먹는 게 답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불편한 마음, 늘 괴로운 정신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교에 의지하거나 출가를 선택하기도 한다. 그것 역시 답이 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최대한 외부와의 접촉을 피한 채 자신이 좋아하는 창작 활동에 전념하거나 마음이 다치지 않는 인생길을 택하기도 한다. 그 역시 답이라고 생각한다. 본인 스스로가 그에 대해 확신을 가진다면.


나는 세상 속 나와 같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며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지, 혹은 지금 살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책과 논문을 뒤지고 수많은 모임들을 돌아다니고 다양한 취미 활동,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며 직감적으로 - 나 같은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눴다. 역사 속에서 그들은 평생을 두문불출하며 철학을 연구하거나 어두운 내용의 책을 쓴 사람들이기도 했고, 현재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는 히키코모리처럼 집에서 나오지 않거나 마약에 빠져 살고 있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무엇인가에 오타쿠적으로 몰두하며 속세와 거리를 두며 살기도 한다. 누군가는 인생이 괴로우면서도 현실에 맞춰 사느라 애쓰고 있고, 또 누군가는 과감히 일을 그만두고 자신의 마음을 챙기는 쪽으로 삶의 방향을 틀었으며, 어떤 이들은 직접 불안과 우울, 행복을 주제로 연구를 하거나 창작을 하고 있다.


그동안의 연구들을 종합해 볼 때, 이런 성향 사람들의 조상들은 과거 농경사회 혹은 그 이전 원시 사회에서 주로 밤에 활동하면서, 고요한 가운데 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거나, 먼 곳에서 발생하는 어떤 문제들을 예민한 신경으로 탐지하며 자기가 소속된 공동체에 그런 정보들을 알리며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즐겁고 활기찬 일들이 가득한 낮보다는 어둡고 조용한 밤에 더 도파민과 엔돌핀이 분비되며, 밤에 더 흥분하는 성향을 가졌을 뿐 아니라, 행복한 상황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일보다는 불행한 상황을 원래 상태로 돌리기 위해 치유하고 고치는 데서 기쁨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그들의 후손들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다. 밤은 조용하긴커녕 낮보다 더 시끄러울 뿐 아니라 실내는 오히려 낮보다 더 밝을 때가 많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날 숲은 사라졌고, 세상은 너무나 안전해져서 이들이 할 일은 사라졌다. 거의 모든 직업들이 아침형 인간을 선호할 뿐 아니라 이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해야 할 저녁과 밤 시간엔 오히려 업무가 끝난다. 가장 도파민과 엔돌핀이 활발히 분비되어 최고로 흥분이 일어날 때는 다음 날의 근무를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해야 한다. 어둡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는 가리고 밝고 긍정적인 것만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 현대 사회에서 이들의 성향은 그 자체로 매우 부정적이고 고쳐야 할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좌절하고, 우울과 불안을 쉽게 느끼며 살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늘 돌고 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때가 지금이 아니더라도, 그럼에도 타고난 성향까지 숨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그 이상 다른 이유를 더 붙일 수가 없다.


나는 라면 중에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제일 좋아하고, 요리 중엔 닭도리탕과 간장게장, 메밀 소바를 가장 좋아한다. 아무리 더 맛있고 화려한 음식들을 시도해도 이 취향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타고난 입맛도 있을 테고 어려서 훈련된 입맛 부분도 있을 것이고 더 깊게는 세대를 건너 내려온 후성 유전도 있을 것이다. 뭐가 되었든 노력으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그냥 타고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다양한 나라에서 수많은 지역의 전통 요리와 현대 요리들과 재료들을 맛보았지만, 저 취향은 변하지 않는다. 일본 라멘도 수십 종류를 먹어봤지만 그래도 짜파게티와 너구리가 더 맛있다. 고급스러운 프랑스식 닭요리도 먹어봤지만 그래봐야 그 후 떠오른 건 얼큰한 닭도리탕이었고, 값비싼 킹크랩을 먹은 후에도 간장게장이 떠올랐다. (물론 간장게장도 비싸긴 하다만)


항상 생각이 많다, 다른 것에도 관심을 가져라, 마음을 넓게 써라, 인간관계를 넓혀라...지적을 많이 받아왔다. 나름 노력을 해 본 후 나이가 한참 들어서야 뒤늦게 깨달은 건,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냥 인간의 마음을 주제로 한 글을 쓸 때 가장 즐겁고 행복하며, 깊이 사유를 할 때, 그 사유의 끝에 내가 납득할 만한 결론에 이르렀을 때 가장 도파민과 엔돌핀이 터진다. (여기서 엄밀히 말하자면 도파민이 쾌감을 직접 일으키는 것은 아니고 엔돌핀이 터지면서 쾌감이 느껴진다는 설명도 절반만 맞을 수 있긴 하다. 굳이 사족을 붙이는 바이다. 쓸데없이 진지한 성격이라.)


늘 그래 왔듯, 나는 죽는 날까지 그렇게 고민하고 사유하고 그걸 글로 쓰고, 여력이 되면 만화로도 만들고 또 다른 형식으로 만들면서 그렇게 살다 갈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것 외에 다른 삶의 방식을 나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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