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문제(4) - 늦잠에 최적화된 밤의 파수꾼들

저녁형 인간은 아침형 인간처럼 살 수 없다.

by 치의약사 PENBL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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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과에서 많은 학생에게 존경받던 교수님이 계셨다. 교수님 강의가 종강하던 날, 맥주집에서 교수님과 학생들이 모여 뒤풀이를 가졌다. 맥주잔이 돌았고, 학생들이 교수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자연스레 진로 이야기로 넘어갔다. 교수님은 농담으로 교수라는 직업을 '늦잠 자고 늦게 출근해도 좋은 직업'이라고 하셨다. 물론 우스갯소리였고 교수님은 아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고수하셨겠지만, 나는 문득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뿐만 아니라 꽤 많은 사람이 밤늦게 자고 아침 늦게 일어나는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때문에 힘들어하는 학생과 대학원생도 꽤 있었다. 이게 과연 잘못된 습관의 문제일까? 가정교육이나 사회생활로 고쳐질 수 있는 문제일까? 당시에는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정답처럼 여겨졌다.


수면 패턴은 사람마다 다르며, 크게 아침형과 저녁형으로 타고난다는 연구는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그런 연구가 주목받기는 어려웠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전후 빠른 산업화를 거치면서 새벽에 일어나 일찍 출근하는 생활 방식이 '올바른 습관'으로 당연시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소위 '성공한 기업가'를 비롯한 사회 유명 인사들이 아침형이나 새벽형 생활을 성공 비결로 꼽으면서 이런 통념은 더욱 공고해졌다.


그러나 1980년대~90년대에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물에게 고유의 생체시계가 있으며 그 작동 원리를 밝힌 공로로 2017년 록펠러 대학의 마이클 영(Michael W. Young) 등 세 명의 학자가 노벨상을 수상하자, 그간의 수면 연구들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현재는 사람마다 수면-생체시계 주기가 다르며, 크게 아침형과 저녁형으로 나뉜다는 사실도 꽤 널리 알려진 편이다. 다만 산업 구조와 직장 근무 형태는 여전히 유연하지 않다. 몇몇 직장에서 자율 근무제를 도입하기도 하지만, 모두가 같은 시간대에 일해야 효율적인 분야에서는 굳이 그런 변화를 꾀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일상과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쪽은 저녁형으로 타고난 사람들이다. 물론 습관으로 저녁형 인간도 아침형으로 패턴을 어느 정도 바꿀 수는 있지만, 핵심은 그 과정이 몸에 무리를 주어 아침형보다 늘 피로에 젖은 채 하루를 보내게 될 수 있다는 대목이다. 아직 더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하지만, 저녁형 인간은 유전적으로 결정된 생체리듬이 아침형과 다르므로 억지로 아침형 습관을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장기적인 생체 균형을 교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2017년, 보통 저녁형보다 더 극단적인 유형, 즉 '지연수면위상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유전자 변이에 관한 연구가 발표되었다1). 용어가 어려워 보이지만, 한마디로 보통 저녁형보다 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에서 벗어나기 힘들 뿐 아니라 매일 수면 주기가 점점 뒤로 밀리는 유형을 뜻한다. 말하자면 천성적인 늦잠꾸러기인 셈이다. 이들뿐 아니라 그 가족의 유전자를 연구해 보니, 놀랍게도 보통 사람보다 유전자에 변이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생체시계 관련 유전자가 생성하는 주요 단백질에는 CLOCK, BMAL1 등이 있는데, 간단히 말해 이 단백질들은 생체시계를 작동시키는 한편, CRY1이라는 또 다른 단백질은 CLOCK과 BMAL1을 억제한다. 그런데 지연수면위상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이 CRY1을 생성하는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데, 이 때문에 CRY1이 CLOCK, BMAL1과 더욱 견고하게 결합하여 생체시계가 남들보다 뒤로 밀리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지연수면위상장애를 겪는 일부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면 문제 때문에 병원을 찾거나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는다. 밤에 잠이 안 오면 습관을 잘못 들여서라고 치부하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스스로 게을러서라고 자책한다. 하루종일 피곤해도 그저 어젯밤 흥미로운 일에 몰두하느라 잠잘 시간을 놓쳤다고 스스로를 탓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날 밤, 다음 날 밤이 되어도 상황은 조금도 변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쯤 되면 혹시 천성이 그런 건 아닌가 의심할 법도 한데, 대부분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미 사회적으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은 교정 가능한 습관으로, 이를 따르지 않는 것은 개인의 게으름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2025년 말,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의 성인 데이터와 미국 어린이 대상 ABCD 연구 데이터를 활용한 수면 패턴 연구가 발표되었다2). 이 연구는 사람들의 수면 패턴이 생각보다 더 다양할 수 있다는 자못 흥미로운 사실을 드러냈다. 이 연구는 사람들의 뇌 fMRI 자료뿐 아니라 진단받은 질병, 생활 습관, 성격 같은 기질적 특성 등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하여, 저녁형은 약 3가지, 아침형은 약 2가지 유형으로 나뉘며 저녁형이라고 모두 고통받거나 아침형이라고 모두 성실하고 생산성이 높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저녁형 중에는 삶이 더 불편한 유형이 있는가 하면 별다른 지장이 없는 유형도 있고, 아침형 역시 유형에 따라 다른 유형보다 생활 습관이 불량하거나 질병에 더 취약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 연구는 인과 관계를 명확히 규명하지는 않았다는 한계가 있지만, 사람들이 서로 다른 수면-생활 리듬을 타고난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 연구라 할 수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야행성인 예술가가 많다는 속설이 있었다. 농담처럼 그 이유를 사실상 반백수 같은 게으른 생활 습관에 쉽게 빠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그런 생각도 반박되기 시작했다. 예민한 사람, 즉 감각 정보를 남들보다 더 세밀하게 처리하고 깊이 사유하는 뇌를 가진 사람은 저녁형 인간으로 타고나는 경향이 짙다는 보고가 있다. 남들이 자는 밤에 오히려 뇌가 깨어나 더 활발히 활동하며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핑계가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뇌와 저녁형 생체 리듬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지 모른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은 오늘 하루라고 말한다. 그런데 만약 자신과 맞지 않는 생활 패턴으로 평생을 살아 늘 피곤하다면 어떨까? 하루를 피로에 젖어 사는 것은 하루를 허비하는 것과 같고, 매일 그렇게 산다면 평생을 낭비하는 셈이다. 세상에는 분명 지금의 사회 구조에 더 유리하게 태어난 사람들이 있는데, 특히 아침형 인간과 현실적인 가치를 추구하도록 타고난 사람들이 그렇다. 반대로 저녁형 인간이면서 이상적 가치를 추구하도록 타고난 사람들은 사회생활에서 더 불편을 겪을 수 있지만, 아직 이에 대한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은 탓에 어디 가서 당당하게 '나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겠다'고 주장하며 맞춰달라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자신의 몸 상태와 컨디션을 세심하게 살피고, 혹시 자신이 그런 유형이 아닐까 의심된다면 충분한 시간을 들여 다양한 수면 패턴을 시도하며 하루의 기분과 컨디션을 점검해 보는 것이 좋다. 어쩌면 남은 인생의 경로를 바꿔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수면은 실로 중요하다. 어쩌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수면의 비밀까지 밝혀진다면 더더욱.



1) Patke A., Murphy P., Onat O., Krieger A., Özçelik T., Campbell S., et al. Mutation of the Human Circadian Clock Gene CRY1 in Familial Delayed Sleep Phase Disorder. Cell. 2017;169(2):203-215.e13. doi: 10.1016/j.cell.2017.03.027


2)Zhou L., Saltoun K., Marotta J., Aggarwal S., Kopal J., Carrier J., et al. Latent brain subtypes of chronotype reveal unique behavioral and health profiles across population cohorts. Nature Communications. 2025;16(1). doi: 10.1038/s41467-025-667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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