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1년 중 물이 가장 풍요로운 기간, 장마
매년 6~7월만 되면 언론에서 '장마'라는 단어를 많이 듣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옛말이다. 사실 장마라는 용어는 과학적이라기보다 풍토적, 관습적 용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정체전선'이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들어볼 수 있다. 정체전선이란 장마를 형성하는 궁극적인 원인이기에, 이를 특정하는 것이 변화무쌍한 장마철 날씨를 받아들여야 하는 국민들이 이해하기에도 직관적이다. 어쩌면 국민들의 기상학적 수준이 어느 정도 올라간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장마란 서로 다른 기단 사이에서 발생한 공기들 간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차갑고 습한 쪽인 오호츠크해파와 덥고 습한 쪽인 북태평양파로 나뉜다.
흔히 비가 많이 오는 '우기'를 우리나라에서 '장마'라고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가 많이 오기 위해서는 일단 습한 공기들의 유입이 중요하고, 서로 다른 공기들 간의 이질감이 클수록 기여하는 바가 크다.
이렇듯 오호츠크해파와 북태평양파가 만나면 그 어떤 경우보다도 비가 많이 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정체전선이란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듯이 정체되어 있는 전선을 의미한다. 설명만 조금 들었는데 직감적으로 느낌이 쎄하다.
전선은 보통 서로 다른 온도를 가진 공기 덩어리 사이에서 발생하는데, 창문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디테일은 제외하고 큰 맥락에서만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겨울철 따뜻한 공기들이 머무는 실내 공간과 찬 공기들이 머무는 외부 공기들의 경계지점인 창문에는 물방울들이 마구마구 맺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규모를 확장하면 그 창문이 전선이 되고, 창문에 맺힌 물방울들이 전선면에서 발생한 비가 된다.
여기서 참고로 찬 공기의 세력이 더 강하면 따뜻한 공기들을 밀어내는 '한랭전선',
더운 공기들의 세력이 세면 찬 공기들을 타고 올라가는 '온난전선'이 되는 것이다.
둘의 힘이 팽팽해서 어느 쪽의 세력이 특별히 강하지 않은 경우 그대로 온도차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꾸준히 비 구름을 만들어내는 '정체전선'을 형성하게 된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언젠가 싸움은 끝나기 마련이므로 어느 쪽이든지 밀리고, 밀어낼 수밖에 없는데 장마기간에 형성된 정체 전선의 경우 승리는 따뜻한 공기 쪽이 가져간다.
그래서 항상 장마철이 지나고 나서야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것이다. 바로 지금.
이러한 정체전선을 더욱 강화시키는 콜라보레이션이 존재한다.
항상 언급하지만 대기는 3차원 공간이기에 수평적인 흐름과 수직적인 흐름 모두 고려해야만 한다.
첫 번째는 대기 하층에서 수평적으로 남서풍을 타고 유입되는 따뜻한 공기이고,
두 번째는 대기 상층에서 수평적으로 북서풍을 타고 유입되는 찬 공기이다.
이때 기본적으로 수증기의 집합체인 구름이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비의 강도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위에서 말한 두 가지의 수평적 흐름이 수직적으로 복합작용하면서 구름의 발달을 촉진시킨다. 위쪽의 찬 공기는 아래쪽으로 가라앉으려는 성질이 강하고, 아래쪽의 따뜻한 공기는 위쪽으로 떠오르려는 성질이 강한데, 여기에 상층의 공기는 건조하고, 하층의 공기는 매우 습하다. 두 공기 간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섞이면서 나타나는 결과물도 매우 격렬해지는데, 이 두 가지의 효과가 정체전선상에서 나타나면 그 강도가 몇 배로 증대된다.
2022년 8월 초 수도권에 발생한 집중호우가 이러한 콜라보레이션의 결과였고, 서울 신대방동에 시간당 약 140mm라는 매우 기록적인 강수량을 남겼다.
시간당 강수량이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주관적이지만 다음을 참고한다면 시간당 100mm 이상의 강수량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당 0~0.5mm : 비 오는 건가?
*시간당 1mm : 비 온다. (와이퍼 1단)
*시간당 5~10mm : 비가 좀 오네. (와이퍼 2~3단)
*시간당 30~50mm : 퇴근 어떡하지. (와이퍼 4단)
*시간당 50mm 이상 : 이 정도면 홍수 나는 거 아니야?
우리가 흔히 알지 못하지만 2차 장마인 가을장마라는 것이 분명 있다. 시기상 8월 말에서 9월쯤에 해당하는데, 보통 그냥 비 오는 정도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잘 모른다. 사실상 1차 장마인 7월보다 짧고 강도도 약하다.
원인은 1차 장마와 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1차 장마 때는 찬 공기와 더운 공기 간 싸움에서 더운 공기가 승리하면서 이후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메커니즘이었다면, 2차 장마 때는 찬 공기가 승리하면서 이후 무더위가 사라지고 점차 선선해지는 것이다.
여름의 시작이 1차 장마라면, 여름의 끝은 2차 장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 우리나라에 태풍이 자주 찾아온다. 태풍은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움직이는데, 북태평양 고기압이 축소되면서 그 가장자리가 한반도에 위치하게 되기 때문이다. 적도부근 저위도의 따뜻한 공기를 그대로 끌고 올라오는 태풍의 영향으로 끝난 줄 알았던 무더위가 갑자기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
이렇게 한반도의 여름은 시작부터 끝까지 요란하고, 다사다난하다.
축축하고, 우중충하고, 우울하기만 한 장마철.
하지만 장마철이 끝나면 우리는 여름휴가라는 보상을 받는다.
사람 많은 성수기에 놀러 가는 것이 과연 참된 보상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순간을 즐겨보도록 하자.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If you can't avoid it, enjoy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