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엄마가 사다 놓은 청양 고추가 냉장고 쇼케이스 앞쪽 사이에 껴있던 걸 발견한 건 얼마 전이었다.
고추 봉지를 손가락 끝으로 겨우 끌어올리고 살짝 눌러보니 물렁해져서 이걸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 갈등을 하다 상태가 안 좋은 몇 개는 버려버리고 나머지는 살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엄마는 매운 것을 전혀 먹질 못한다.
내 기억에는 아마도 70대까지는 즐겼는데 80대가 되면서 어떤 자극은 상당히 무뎌졌고 또 어떤 자극은 조금이라도 소스라치는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걸 지켜보는 나는 대체 어떤 기준일까 많은 고민을 했지만 알 길은 없었다. 하지만 꼭 매콤하거나 칼칼해야만 하는 음식이 있는데 그런 음식들에 청양고추가 들어가지 않는 걸 엄마는 싫어한다. 그래서 나름대로 기준을 정한 게 된장국에 1리터의 물을 썼다면 청양고추 하나가 적당하다.
숭덩숭덩 썰어서 넣으면 들어갔다는 사실 때문에 더 맵게 느껴지니 세로로 삼등분을 해서 아주 얇고 작게 썰어 넣으면 다른 재료들과 섞여 보이지도 않으니 눈에는 안 보이고 칼칼함을 살아 있어 주로 그런 식으로 사용을 한다. 이제 끔은 이런 식으로 했던 게 성공적이라 다행이다.
바라는 게 있다면, 한 개 분량이 반개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만큼 더 어떤 자극은 더 무뎌지고 또 어떤 자극은 더 민감해지는 지점일 테니 말이다.
물렁해진 청양고추를 깨끗이 씻어 살리고자 반을 갈라서 까매진 씨는 다 빼놓고 다듬어서 냉동실에 넣어놨다. 그래서 청양고추의 형태는 세로로 두 동강 난 채 얼어있는 형태였다.
예전 같았으면 잘게 썰어 넣어 놓고 필요할 때마다 썼을 텐데, 이건 내 방식이지만 언젠가부터 고추나 파 같은 걸 냉동실에 넣을 때 최대한 그 형태 그대로 유지를 하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하고 있다.
꽁꽁 언 고추와 파는 얼은 상태로 썰면 안 얼었을 때 써는 느낌보다 오히려 더 좋다는 느낌이 있고 그 편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반으로 갈라져 냉동실에 들어간 청양고추로 엄마는 가지볶음을 했다.
고추가 그렇게 냉동실에 들어 있으니 청양고추라 생각하지 않고 가지를 볶을 때 그냥 넣어 버린 것이다.
엄마는 음식 할 때 맛을 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들어간 게 청양고추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의심을 해보자면 분명 볶을 때 매콤함이 올라와서 기침이라도 한번 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지볶음은 내가 다 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나 매웠던지 화가 날 정도로 매웠는데 덕분에 그날의 스트레스는 풀어진듯했다.
이런 일이 있었고, 최근에 검색하다 이 책 제목이 흥미로워 읽게 되었다. 드라마로도 나왔던데 이건 나중에 시간이 되면 꼭 한번 봐야겠다.
어떤 것이든 무뎌지기 마련이다.
언제까지나 그대로 일 것만 같으니까, 아니 항상 그대로 이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클지 모르겠다. 그래서 한껏 무뎌져 소중함이 조금씩 사라짐이 느껴질 때는 꼭 상기해서 그 소중함을 찾아와야 한다.
그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모르게 될 지경에 이르게 되면 추억할 게 없을 수도 있겠다.
적어도 추억은 '그땐 좋았어'여야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