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는 어디
출장을 참 많이 다녔다.
내가 이렇게 출장을 많이 다니면서 살지 정말 몰랐는데, 역시 사람일은 알 수가 없다.
계속 KTX를 타게 되니 덕분에 포인트가 쌓인다.
오며 가며 항상 특실을 이용하고 싶지만 회사 사정이 뻔하니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내가 특실을 타고 다녀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는데...
대신, 쌓인 포인트가 어느 정도 되면 정말 피곤한 날 한 번씩 특실을 이용하곤 했다.
매번 피곤하긴 했지만 정말 피곤한 날은 집에 가기도 너무 귀찮아 미칠 지경이었다.
더 그런 생각이 많이 드는 게, 서울에, 서울역에 도착했다고 우리 집에 다 온 게 아니니 그때부터 또 집에를 가야 하니 가끔은 너무 까마득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렇게 출장도 오가며 열심히 했으니 직원들도 천직인 것 마냥 일하고 나름 보람도 있고 그런 거 아니겠는가.
KTX를 특실을 예매했다.
원래 커피나 생수 등 탑승 전에 한 병 구입해서 타는데 특실은 아주 조그마한 생수가 있어 그거 한 병이면 충분하니까 그냥 타지만 유난히 힘들었던 하루라 커피를 구입했다.
내 자리를 찾아 의자뒤에 붙어 있는 선반을 내리고 거기에 커피를 놓았다.
가방은 위에 올릴까 하다 그냥 바닥에 내려놓으려고 올리려던 가방을 내리는 순간 커피를 툭 치면서 커피가 쏟아졌다.
그나마 아이스 아메리카노라 다행이지 뜨거운 커피였다면 많이 난감했을 것 같았다.
'아, 피곤해 죽겠는데. 오늘 같은 날 왜 이런담'
속으로 푸념을 하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누워있던 커피잔을 바로 해놓고 가방을 뒤져 항상 가지고 다니는 휴지를 꺼냈는데 양이 턱없이 부족해서 화장실로 갔다.
커피에 뚜껑이 있어 그리 많이 쏟아지지 않아 적당량의 휴지를 화장실에서 뽑아왔다.
KTX화장실에 있는 휴지는 일반 식당에 있는 냅킨통에 꽉꽉 눌러 넣은 냅킨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뽑으면 다 뽑히기 전에 뜯어지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다.
휴지를 뽑는 것도 그날따라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가지고 온 휴지로 커피 흘린 곳을 열심히 찍어냈다.
열심히 커피자국을 제거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아줌마 구두에 커피가 두 방울 정도 튀어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아줌마 얼굴을 보니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자고 있는 사람을 건드리면 안 되는데, 잠깐 생각하다가 휴지 끝을 말아 뾰족하게 만들어서 방울져있는 커피를 톡톡 찍어냈다.
신발이 패브릭이 아니어서 커피가 튄 지도 모르게 감쪽같았다.
감쪽같은 아줌마 구두를 보면 살짝 미소 지어졌는데 생각해 보니 무릎을 꿇고 남의 신발을 정성스레 닦아주는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참 웃긴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어났는데 아줌마가 살짝 실눈을 떠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난 커피를 가리키며 아주 미안한 얼굴로 죄송하다고 얘길 했다.
그리고 휴지를 버리러 화장실 근처에 있는 쓰레기통에 갔다 와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고 앞의자에 붙어 있는 선반을 내리고 가방과 커피를 놔뒀다.
한숨 돌이키고 휴대폰을 봤다.
항상 열차 출발 전에 보게 되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휴대폰을 한번 보고 열차에 붙어 있는 좌석 번호를 한번 봤다.
'아, 정말. 환장하겠네'
지금 앉아 있는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었다.
바로 앞자리가 내 자리였는데 말이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일어나 바로 앞 내 자리에 가서 앉았다.
가끔 이 일을 생각하며 피식 거린다.
그때 그 아줌마도 오랜 기간 내 얘기로 사람들과 같이 즐거웠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글쎄,
내가 KTX를 탔는데 어떤 아저씨가 와가지고는 커피를 쏟은 거야.
그러더니 내 구두에 커피가 묻었나?
나는 못 느꼈거든
갑자기 무릎 꿇고 내 구두를 뚫어져라 쳐다 보고는
일어나서 나한테 사과를 하는 거지.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러더니 자리에 앉더라고,
갑자기 열차 천정을 보고 자기 휴대폰 보고 계속 그러더라고
그러다 잠깐 앉아 있더니
그 앞자리로 가서 앉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