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사람

by Rey

아들 정우는 오늘도 해가 중천에 뜬 뒤에야 눈을 떴다. 갈 곳을 잃은 사람에게 아침의 햇살은 잔인했다. 별일 없는 아침은, 이상하게도 사람을 작게 만들었다.


머리맡을 더듬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 읽지 않은 메일 알림이 떠 있었다.


'서류전형 결과 안내'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문장이 떠올랐다. 감사 인사, 아쉬움, 다음 기회.


통보를 받던 날이 떠올랐다. 회의실로 불려 갔을 때, 임원은 평소와 다르게 살갑게 차를 권했다. 달콤한 향기 뒤로 "회사 사정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정우는 그 자리에서 따지면 더 작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옅은 미소까지 지었다.


퇴직 처리가 완료됐다는 문자가 오던 날, 정우는 조용히 사물함을 정리했다. 십수 년을 바친 자리였지만 짐은 조그만 종이 박스 하나면 충분했다. 마지막 야근을 하던 날 사두고 마시지 않은 캔커피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중에 마시려고 하나 더 샀던 것이었다. 차갑게 식어 있었다.


박스를 들고 가면 엄마가 알 것 같았다. 정우는 짐을 쇼핑백에 옮겨 담았다.


쇼핑백을 들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는 묻지 않았다.


"왔어?"


"응."


그 침묵이 고마웠다. 동시에 숨이 막혔다.


백수가 된 뒤로 정우는 밥을 천천히 먹었다. 서둘러 먹어야 할 일도 없고, 예전에는 잘 넘어갔던 것들이 쉽게 넘어가질 않았다. 그래서 뜨끈한 국물이 있어야 했다. 뜨거운 것이 목을 타고 내려가야 자신이 아직 여기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불 속에서 뒤척이는데 부엌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칼이 도마에 닿는 소리가 이어졌다.


무슨 탕인지 알 것 같았다.


잠시 후 엄마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물소리에 묻혀 작게 들렸지만,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정우는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당겼다.


'괜찮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바깥의 엄마에게 하는 말인지, 자기 자신에게 거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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