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분야 갑질과 생산성 간의 연관성
"소장님 오늘도 출근 못 하세요?", "응..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연차 써야 할 거 같아"
내 인생 첫 근무지는 어느 시골 면사무소에 자리 잡았던 현장사업소였다. 공군 전투기 엔진소리가 유리창이 찢어질 것처럼 날카롭게 들렸고, 돼지분뇨 냄새가 오후 4시쯤 되면 동네방네 다 퍼질 정도로 진동하는 지역이었다. 주변은 대부분 논밭, 가끔 가다가 돼지농장과 공장 건물이 보이곤 했었다. 사업소는 산업단지 조성 전에 해당 토지 및 물건의 소유주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역할을 현장에서 수행하는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사업소 파견 준비를 한 달 정도 한 후에 바로 현장으로 출퇴근을 했다. 조직에 적응할 새도 없이 바로 민원 최전선에 뛰어들어버린 것이었다.
회사에서 사업소는 모두가 가고 싶어 했던 곳이었다. 이유는 다양했다. 본사 근무에 비해 업무량이 적고, 기관장과 부장 눈치를 안 봐도 되며, 체제비가 지급되는 등 여러 장점이 있어서였다. 꿀 빨러 간다고 말하는 직원도 있었고, 조용히 쉬었다가 들어오면 된다고 부러워하는 직원도 있었다.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사업소를 나는 입사하자마자 가게 되어 부러워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으나, 난 개인적으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신입 때 직원들과 어울리지 못해 조직 적응에 문제가 있을까 봐 걱정이 되었고, 소장 한 명과 나를 포함한 신입 두 명이 파견가게 된다는 사실이 뭔가 께름칙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사회초년생이면서 신입이기까지 한 내가, 파견 가기 싫다고 의견을 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불길하면서 찝찝한 마음을 안고 자리를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사업소에 파견 나가보니 직원들이 나가고 싶어 했던 이유를 체감할 수 있었다. 내가 수행했었던 보상 업무 특성상 업무량이 꾸준히 많지는 않았다. 기본조사, 보상계획공고, 감정평가, 보상계약 체결 등 각각의 단위 업무는 필요한 적정 소요기간이 있어서 업무 밀도가 낮은 편이었다. 그래서 감정평가 현장실사, 보상계약 체결 등 일부 짧은 기간만 바짝 바쁘게 일하면 되었다. 민원인을 상대하는 경우가 많아서 일정한 이의신청 기간을 제공하는 등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추진해야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신입이었던 나는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여유가 없었다. 보상 업무도 처음이었고, 사회생활 자체가 처음이어서 업무 공부와 함께 문서기안, 보고체계 등 조직생활 전반에 대해서도 배워야 했다. 사업소에는 소장과 나, 공무직이 처음에 자리를 잡고, 나중에 기간제 계약직을 한 명 더 채용을 해서 총 4명이었다. 소장을 제외하고는 전부 신입이었다. 실무자 3명 중 나만 정규직이어서 업무량이 제일 많았고, 실무를 내가 주도적으로 끌고 가야 해서 책임감까지도 무거웠다. 의지할 사수(선임) 하나 없이 맨 땅에 헤딩하면서 이겨나가야 했던 점이 참 서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에 반해 소장은 편하게 지냈다. 툭하면 전날 밤에 폭음을 해서 다음 날 연차 또는 반차를 쓰곤 했었다. 출근시간에서 30~40분이 넘었는데도 소장이 전화도 없이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이 종종 있었다. 그러면 나는 '또 마셨나 보네'라고 생각하면서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한참 지나갔을 때 겨우 전화를 받고, 기운이 없으면서 목에 무언가 걸린 것 같은 목소리로 말을 했었다. 내가 오늘도 또 못 나오냐고 물어보면, 전날 밤에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못 일어나겠다는 대답이 넘어왔다. 본인에게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면 연차를 썼고, 외부출장이나 중요 민원인 또는 부서장의 방문 등 예정된 일이 있으면 반차를 쓰고 오후에 출근했다. 전화를 끊은 나를 다른 직원들이 밝은 표정으로 쳐다보며 "혹시 오늘도 안 오신대요?"라고 물어보곤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렇게 폭음에 의한 당일연차는, 쌓여있던 연차를 사업소 근무기간 중에 다 써버리려는 것처럼 은근히 잦았다.
그래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도 소장이 부재한 경우가 꽤 있었다. 한 번은, 우리가 무리하게 짧게 제시한 감정평가 기간을 조율하고자 감정평가사들이 방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도 폭음으로 연차를 쓴 날이었다. 차석인 내가 대응할 수밖에 없어서 평가사 3명을 마주 보고 앉았다. 그들은 당초 제시한 기간 내에는 평가결과를 송부할 수 없으니 기간을 더 달라는 요청과 관련하여 협의를 원했다. 기간을 짧게 줄 수밖에 없다면 정확한 평가결과가 나올 수 없고, 이는 곧 강성민원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협박인지 설득인지 애매한 말들을 들으면서도 신입이고 나이 어린 실무자로서는 딱 한 문장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소장님과 상의해서 결정한 후에 알려드리겠다". 이뿐만이 아니다. 특별민원인의 경우 집중적인 상담 및 원활한 문제해결이 필요한데, 소장이 폭음으로 비웠을 때 특별민원인이 방문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별다른 상담 없이 돌려보내는 경우도 있었고, 내가 대신 상담한 경우도 있었는데, 업무경력이 1년도 안 된 나로서는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었다. 상관없는 사람이 수목 소유주인 척 행세하며 본인이 받아야 할 보상금을 대신 받으려고 한다고 민원을 제기하는 등 추후에 분쟁이 생길 수도 있는 사례가 있었는데도 처리방법도 몰랐고 혼자 결정할 수도 없었기에 "상의하고 연락드리겠다", "알아보고 연락드리겠다"는 말만 하고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사실 폭음으로 인한 상습적인 연차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감정평가 현장실사 때도 직원들이 전부 신입인데도 불구하고 본인은 사무실에서 대기하면서 직원들만 평가사들과 동행하게 한 적도 있었다. 보상계약을 집중적으로 체결하는 기간에는 직원들에게 연차도 쓰지 못하게 했는데, 본인은 자유롭게 연차를 쓰기도 했었다. 우리가 질문도 못하게 했었다. 민원인이 전화로, 보상 결정되고 나서 심은 나무들은 보상금을 받을 수 있냐는 질문을 한 적도 있었는데, 잘 모르기도 하고 소장이 결정해야 할 사안인 거 같아서 소장에게 질문을 했더니 불호령이 돌아왔었다. 그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냐고 도리어 화를 내며 반문하고, 그것도 모르냐 왜 나한테 물어보냐는 식으로 혼내면서 가르쳐주기를 거부했다. 모르는 것을 물어봤을 때 그런 식으로, 초등학생이냐는 소리와 함께 매번 혼을 내서 입을 아예 닫고 살았다. 크고 거친 목소리로 호랑이가 울부짖듯이 급작스럽고 강한 에너지로 성질을 내는 탓에 깜짝 놀람과 동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상당한 두려움이 휩쓸려왔다. 그리고 혼을 내는 기준이 내 가치관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서 혼나는 나 또한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기 일쑤였다. 그런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니까 두려운 감정이 가라앉지 않으면서 계속 유지되며, 사무실과 집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마음 편히 지내질 못했다. 마치 꺼지지 않는 컴퓨터처럼 말이다. 언제 혼날지 모른다는 공포감으로 하루하루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지내야 할 뿐이었다.
그래서 사무실에 보관되어 있었던, 3년도 더 지난 타 기관 매뉴얼을 찾아보고, 다른 선배직원에게 몰래 물어보기도 하며, 인터넷에 검색해서 유권해석 등 정보를 찾아 혼자 공부하며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었다. 소장과 상의를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충분한 공부를 통해 업무지식을 상당히 얻은 후에만 진행했다. 어떻게 업무를 추진할지 보고할 때도 혼자 공부하고 어떤 방침으로 진행할지 혼자 마련한 후 떠먹여 주듯이 보고를 했다.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신입에게는 힘이 부칠 정도로 많이 버거웠지만 혼나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급하지 않은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업무들은 여기저기 알아보고 어떡할지 결정한 후에 상의하기 위해서 뒤로 미루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그렇게 혼자 끙끙거리며 고군분투할 때, 소장은 유튜브 시청, 인터넷 검색 등을 하며 많은 시간을 놀았다. 본인 입으로 "내가 맨날 유튜브 보면서 놀기만 하는 건 아니다"라고 변명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별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업소라는 폐쇄된 공간에서는 그가 왕이었기 때문이다. 신입인데 바로 사업소로 나와서 아는 직원이 없었기에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기도 어려웠고, 폐쇄적인 환경이므로 신고자 특정이 너무 잘돼서 회사 내 감사부서에 신고를 하기도 어려웠다. 내 선택지는 참는 것 말고는 보이지 않았다.
부서장이 사업소에 방문할 때는 어린 직원들을 잘 케어하는 소장인 것처럼 이미지메이킹을 했었다. 면허 취득 후에 한 번도 운전을 해보지 못했던 나에게 스마트키를 던지며 운전을 강요했던 소장은 부서장 앞에서는 180도 바뀌었다. 식사를 하러 갈 때 본인이 흔쾌히 운전을 하며 직원들을 데리고 다니고, 평소에 내던 불같은 신경질도 부서장 앞에서는 절대 발산하지 않았다. 소장의 그런 가식적인 모습과 그걸 보고 유능한 소장이라고 생각하는 부서장을 보니, 나는 보호받을 수 없을 것이란 생각과 함께 부글부글 화가 끓었다. 이에 더해서, 혼자 알아서 다 해내야 하는 업무 부담감, 지속적인 폭언과 과한 질책 등의 갑질 때문에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스트레스가 심해서 결국 소장에게 직설적으로 내질러 버렸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를 대하면 같이 일 못하고, 앞으로 안 바뀌면 퇴사도 고려하겠다고 둘만 있는 자리에서 통보했다. 몇 달 동안 지켜봤지만 태도가 유의미하게 변하지 않아서 퇴사를 결정하기 직전, 상황이 갑자기 바뀌었다. 불화에 관해 회사에 떠벌리고 다녔던 소장 때문에 경영진도 상황을 알게 된 건지, 결국 나를 다른 부서로 인사이동을 시켰다. 인사이동 직전, 소장은 나에게 타 부서로 이동하고 싶은 생각이 있냐고 떠봤다. 나는 가야 한다면 가겠다고 말했다. 당신과 일하기 싫다고 돌려서 표현한 셈이었다. 그렇게 사업소 생활은 끝이 났다.
나는 권위주의적인 갑질문화가 공공 분야를 좀먹고 있다고 확신한다. 당시 사업소장이라는 자리는 전결권이 없었다. 단독으로 결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는 뜻이다. 이는 소장이라는 자리가 부장, 실장 등의 관리자가 앉는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소장은 해당 현장에서 추진되는 업무 전반과 직원들을 관리하면서 실무까지도 해야 하는 자리였다. 결재권도 없는, 관리자가 아닌 소장이 실무에서 손을 떼지 않고 실무자 1명이 하던 업무를 맡았다면 인력 1명이 세이브되었을 것이다. 추진 업무에 관해 방침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업무처리 방법에 관해 능동적으로 가르쳐주는 식으로 직원 관리에 철저했다면 업무 효율성과 신입직원들의 적응력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 그리고 직원 간의 불화도 생기지 않음으로써 불필요한 인력 변경도 없었을 것이다. 공공 분야의 생산성은 지금보다 더 향상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인이 편하게 회사에 다니려고 후배직원을 착취하는 일부 직원들의 갑질 때문에 비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믿는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이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는지 체크해보고 싶다는 발언을 한 것을 봤다. 내가 재직했던 기관뿐만 아니라 많은 기관들에서 내가 겪은 일과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본사에서 멀면 멀수록, 규모가 작으면 작을수록 폐쇄성이 강해져서 내부에서 갑질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지사, 지점 또는 현장사업소 등 지방에 흩어져있는 소규모 사업장부터 본사까지 전사적으로 갑질로 인한 비효율성이 발생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서 자신의 본분을 다른 직원에게 전가하거나 제 역할 수행을 소홀히 한다면, 결국 다른 직원이 대신해내야 하고 감내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점점 실제로 일하는 직원이 줄어든다면, 직원당 수행하는 업무량이 줄어든다면 쓸모없는 조직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직원들이 떳떳하고 인간답게 공공기관에 재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국가가 강하게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