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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Jun 26. 2019

경쟁할 필요가 없어도 경쟁하는 시대

경쟁심리 - 남을 이겨먹으려는 마음

뭐든지 남을 이겨먹어야 속이 편한 사람


며칠 전, 눈살 찌푸리는 일을 겪었다. 하다 하다 이제는 사람들이 길거리에서도 사소한 일로 경쟁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할아버지를 보기 위해 가족들 모두가 시골로 내려갔다. 식사를 마치고, 할아버지 약 때문에 자주 가는 약국에 들리려고 했다. 골목을 지나가다가 시장 안에 있는 사거리가 나왔고, 약국이 그 근처에 있다고 하길래 할아버지와 같이 내리려고 했다. 우리 차는 옆 쪽으로 빠져서 할아버지와 내가 내렸다. 근데 양 방향으로 차가 동시에 들어와서 서로 빠져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거동이 편한 정도는 아니어서, 차에서 내리실 때 조금 오래 걸리신다. 그러다 보니 우리 차가 조금 오래 서있었고, 우리 차가 빠져나가려고 하는 방향에서 온 차가 대뜸 운전하던 아빠에게 나가라고 팔을 휘저으며 신경질적으로 화를 냈다.


"아! 아저씨 차 빨리 빼요!"


그 예의 없는 모습을 할아버지와 그 차 앞을 지나가면서 봐버렸다. 난 너무 화가 나서 그 운전자한테 크게 소리쳤다.


"아, 어르신 차에서 내리는데 기다려요 좀!"


그러자 그 운전자는 나에게 "야!!!" 하면서 소리쳤다. 할아버지가 조금 놀래시긴 했지만, 나는 신경 쓰지 마시라고 하면서 무시했다. 그리고 가면서 한번 뒤돌아 노려보면서 혹시나 쫓아오지 않을까 경계했다.


그 운전자는 내가 약국에서 약을 사 오고 나왔을 때도 아직 사거리에서 빠져나가질 못했다. 차에서 내려 본인 앞차한테 뭐라 뭐라 하면서 결국은 앞차가 후진하게 했고, 본인은 편하게 골목을 빠져나갔다. 자기가 옆쪽으로 차를 빼면 누구 하나 후진할 필요 없이 서로 골목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운전자는 양보할 생각이 아예 없었고, 결국 상대방이 양보하게 만들었다.


참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대뜸 신경질적으로 화를 내고, 보기에 자기보다 어려 보인다고 나한테는 반말로 화를 냈다. 게다가 본인이 양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난 이 일을 겪고 나서, 참 경쟁심리가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을 이겨먹으려고 하는 마음. 안 그래도 경쟁할 일이 많은데, 이제는 사소한 일로도 남을 이겨먹으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경쟁하게 된다. 학교에선 성적순으로, 수능에선 등급으로 줄을 세운다. 그리고 성적순으로 수준에 맞는 대학에 가게 된다. 대학교에 가도 학점이 갈리고, 학점에 따라 등수가 갈린다. 취업을 할 때도 경쟁을 해야 한다. 다른 지원자들을 이겨먹어야 내가 선택받을 수 있다. 남보다 더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하고, 필기시험에서 더 높은 성적을 얻어야 하고, 면접 때는 회사에 더욱 적합한 사람인 것처럼 보여야 한다. 취업하면 전부인가? 회사 내에서도 진급 때문에 경쟁한다. 진급 못하면 내가 잘린다. 다른 경쟁자를 이겨먹어야 한다. 그래도 이런 건 시장 경쟁 시스템상, 어쩔 수 없이 경쟁을 해야 하는 분야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경쟁할 필요가 없는 일에서도 경쟁하고 있다. 결혼 적령기에 괜찮은 사람과 결혼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30대 초중반이 되면 본격적으로 결혼 얘기를 꺼낸다. 나이가 많은데 결혼을 못하면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치부해버린다. 또, 결혼을 하면 애를 낳아야 한다고 한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애가 없으면 부부관계나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모아둔 돈이 없는 건가 싶어 한다. 그냥 결혼할 때가 아직 안된 것 같다든가,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다는가 하는 개인적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선 아직도 '문제'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남들과 비교했을 때 무언가 모자란 것이라 생각한다. 모자람과 잘남을 의식하고 구분하는 순간 그것은 경쟁이 되어버린다. 즉, 경쟁에서 뒤처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을 하는 것 같다.


내가 겪은 일도 이러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 조금 서글펐다. 그 사람은 타인을 이겨먹어서 본인 맘대로 상황이 흘러가도록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화를 내고 신경질을 내서 아빠의 기를 죽이려고 했을 것이다. 기죽지 않았던 나에게는 더 크게 소리쳐서 기를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양보하는 건 지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본인이 양보하지는 않고, 상대방이 양보하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왜 경쟁할 필요가 없는 일까지 경쟁을 하려고 하는지 참 씁쓸하다. 일면식도 없는 모르는 사람을 이겨먹어서 좋을 게 뭐가 있을까. 우리는 너무 경쟁밖에 모른다. 앞으로는 상생, 공생이 필요할 것이라 하는데, 다들 과거에 머물러 있다.


경쟁할 필요가 없는 일에서는 양보하며 밝게 살았으면 좋겠다. 서로가 존중하고 배려하며 지냈으면 좋겠다. 이는 상대방에 대해 공감하려고 노력하면 가능하다.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왜 그렇게 사는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느끼려고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미덕만 실천하고 살아도 일상생활에서 서로 경쟁할 일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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