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간모자 Mar 16. 2019

너랑 나랑은 무슨 사이니?

현대인의 관계 습관 : 비즈니스 관계


인간관계는 원래 비즈니스 관계인가?


식사 자리에서 이런 얘기가 오간 적이 있었다. "선배, 대학교 인간관계는 어때요?", "뭐.. 비즈니스 관계일 수밖에 없지". 나는 옆자리에서 이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럼 나랑도 비즈니스 관계겠네?'. 난 소름이 돋았다. 친한 사람이 옆에 있는데도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우리가 비즈니스 관계인 거 알고 있었잖아? 뭘 새삼스레..'라고 생각하는 게 들리는 듯했다. 사람을 다시 보게 되었다.


서로가 이익을 교환하기 위한 목적으로 친구 또는 지인이 되어 연락을 주고받는 관계가 비즈니스 관계이다. 학창 시절에는 비즈니스 관계라는 개념 자체가 뭔지도 몰랐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몸소 체득할 수 있었는데, 깨달아가면서 난 조금씩 상처 받았다. '정이 없는데 친구인 관계가 있을 수 있구나'. 상대방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예측을 하게 되니까 서운함이 밀려왔다. '이런 게 사람들이 말하는 비즈니스 관계구나'



학교 축제 에피소드


내가 신입생이었던 때,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자연스레 대학 동기, 선배가 생기게 되었고, 그 가운데서 '친구'가 생겼다. 처음에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비슷한 '친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얼마 안돼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번쩍번쩍하는 조명에 크게 울리는 노랫소리. 후반부에는 연예인이 축하공연도 온다. 신입생 때는 이런 축제문화가 상당히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친구들끼리 구경을 가기로 했다. 모두가 처음이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갔었다. "축제 구경에는 역시 술이 빠질 수 없지!"라며 신나게 술을 마시며 놀았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유명 연예인들이 하나둘씩 나올 때가 됐을 때, 나를 뺀 나머지 친구들이 점점 지루해하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야, 가자. 점점 재미없어진다." "그래 뭐 볼 것도 없는 거 같고 이제". 속으로 당황했다. 난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나 빼고 모두가 집에 가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고, 길게 생각하는 것 없이 바로 결정이 났다. "아, 난 가야겠다". 그러자 다른 애들도 하나둘씩 가야겠다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더 있고 싶다고 하는 나에게 별 말없이 홀연히 각자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나 혼자만이 남아있었다. 예의상 하는 사과, 양해조차도 없었다.


벙쪄있던 나는 혼자 청승맞게 있는 나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져서 집으로 그냥 왔다. 가면서 딱 한 문장만 생각났다. '다들 이기적이네'. 이 한 문장이 내 인간관계에 대한 시각을 한순간에 흔들었다. 집에 오고 다시 생각해봤다. '이기적이다'라는 생각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 것이 '나와의 관계가 엄청 만만한가 보지?'였다. 난 화가 났다. 내가 더 있자고 얘기했지만, 괜찮겠냐, 미안하다 등 기본적인 배려도 없이 본인들의 욕구에만 집중했다. 자기 맘대로 해도 상대방은 아무 말 안 할 것이라는 그 오만한 믿음. 그 믿음의 기저에 나에 대한 존중은 하나도 없고, 이기심만 차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때부터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기심을 기준으로 인간관계를 세심히 살펴봤다. 조금씩 일상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연락하는 건데, 뭐 물어볼 거 있다고 안부 묻는 것도 없이 물어봐놓고, 모른다고 하니 바로 카톡 읽씹 하는 사람. 공모전 같이 나갔는데 나만 아이디어 제시, 내용 구성, PPT 제작하고, 본인은 마지막에 발표만 한번 하고 상금 받아간 사람 등등 엄청 많았다. 어떠한 사람이 본인의 '이기심'에 충성하는지, 나를 누가 친하게 생각하고 누가 필요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대학교 내에서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나와의 관계를 '비즈니스 관계'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 대학교 인간관계는 똥망이구나.



채근담이 전하는 인간관계의 지혜


내 주변에는 이기적인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나와의 관계를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친구'들과 나와의 관계는 철저하게 이익에 의하여 작동되는 관계였다. 내가 인간관계에 너무 순진했었다. 그래서 상처를 받았다. 이때, '채근담'이라는 인문고전을 읽다 우연히 인간관계에 관한 좋은 조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채근담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배고프면 달라붙고, 배부르면 떠나가며, 따뜻하면 몰려들고, 추우면 버리나니, 이것이 바로 인정의 널리 퍼진 폐단이다." - 채근담


사람은 인간관계를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은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서 많은 자원을 가져야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어서 교환을 해야 한다. 인간관계의 기본 원리는 교환이다. 우리는 교환을 통해 '이익'을 주기도, 또는 얻기도 한다. 즉, 인간관계를 통해 생존을 위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관계가 인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이다.


또 이런 구절도 있다.


"벗을 사귐에는 모름지기 세 푼의 협기를 띠어야 하고,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한 점의 본마음을 지녀야 하느니라" - 채근담


협기(氣)란 자신을 희생해 남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려는 마음을 뜻한다. 이 구절은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해야 하며, 30%의 희생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남에게 받기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니 진심으로 상대를 대해야 하며, 30%는 줄 줄도 알아야 한다.


너무 이익만을 좇는 인간은 금방 들통나기 마련이다. 사람은 모두가 자신의 이익에 더 집중한다. 모두가 자신이 이익을 얻기를 원하지, 주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너무 이익만 좇는 사람은 미움을 사게 된다. 상대방이 손해를 보는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양보해야 한다. 더불어 살기 위해선 서로가 서로의 이익을 조금씩 양보해서 같이 욕구를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싸우지 않는다. 이게 공동체 미덕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의 미덕, 성숙한 이기심


인간관계에 대한 좋은 말들은 많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30%의 희생이 아니라 3%의 희생도 하기 싫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나친 이기심은 인간관계에서 장기적으로 독이 된다. 지나친 이기심은 무배려를 낳는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잃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상대방은 의외로 금방, 그리고 귀신같이 알아챈다. 게다가 악감정은 어느 순간 갑자기 올라오는 법. 사람 잃는 거 한순간이다.


살아가기 힘들어 여유로움은 사치인 사회라고들 한다. 자신을 챙기기도 바빠 남 챙길 여유도 없다고 한다. 그렇게 바쁘게만 살아가면 과연 인생이 행복할까?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이와 함께할 때 더 웃지 않는가? 힘든 인생일수록 누군가의 위로가 더욱 필요한 법이다. 혼자만의 행복만 가득한 삶은 온전한 삶이 될 수 없다. 본인에게만 충실할수록 주변인은 떠나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주변인도 챙길 줄 알아야 한다.


인간관계가 삭막한 사회에서 이제는 좀 더 높은 수준의 이기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남에게 조금 양보하고, 배려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것. 그래서 길게 봤을 때 상대방에게 주는 것보다 더 많이 얻는 것. 이걸 가능케 하는 게 '성숙한 이기심'이 아닐까. 많은 이들이 그냥 이기적인 사람이 아닌, '성숙하게 이기적인 사람'이 되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이 말하길, '나 좀 챙겨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