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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Mar 27. 2019

완벽해지고 싶어요

그런데 더 후퇴하는 것 같아요

책... 별로 안 좋아해요


난 읽는 속도가 일반 사람들에 비해 30%~40% 정도 느리다. 게다가 하루에 읽을 수 있는 페이지 수가 정해져 있다. 평범한 난이도의 책은 80페이지 정도, 어려운 책은 40페이지 정도가 한계이다. 그 이상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읽어도 뜻이 이해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중학교 때인가, 한창 공부할 때 난독 증상이 생겼다. 당연히 공부에 영향을 미쳤다. 시험기간에는 과목당 책을 한 번, 많이 보면 두 번만 읽고 시험을 봤다. 더 읽으면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못 읽을 정도였다. 자연스럽게 책 읽는 게 싫어졌다. 그래서 내 방에는 책이 별로 없다. 있어봤자 학교 전공서적,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 몇 권 정도? 그나마 전공서적은 중고로 전부 판매할 예정이다.



불행에 대한 보상


왜 글자가 잘 안 읽힐까 심각하게 고민을 해본 적이 있었다. 


문장을 한번 읽어본다. 그리고 떠올린다. '무슨 의미였더라?'. 떠올려보면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다. 근데 불안해서 한번 더 확인해봐야 될 것만 같은 감정이 올라왔다. 불안해서 한번 더 읽어본다. '어 맞네.' 근데 또 불안해서 한번 더 읽어본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거 맞네'. 글자를 읽으면서 놓친 것은 없는지, 제대로 이해한 것은 맞는지 확인에 확인을 계속하고 있었다. 안 하면 큰일이 터질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이게 강박증이었다. 외출할 때 불안해서 가스밸브를 계속 확인하는 것처럼 제대로 읽었는지 불안해서 계속 확인하는 것이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글 속에 있는 모든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했다. 즉, 완벽한 독서에 대한 지나친 집착. 이게 문제였다. 그럼 왜 내가 완벽한 독서에 집착하는지 나 자신에게 물었다. 많은 것을 알고 싶어서. 많은 지식을 알아야 성적도 좋고, 좋은 대학도 가고,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그럼 난 왜 성공에 집착할까? 불행한 학창 시절에 대한 보상을 성공을 통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게 내 마음을 관찰해서 내린 최종 결론이었다.



완벽함에 대한 집착이 나를 망쳤다


사실 내 학창 시절은 불행한 시절이었다. 가장 큰 원인은 사회성 부족이었다. 그때만 해도 친구들과 잘 어울릴 줄 몰랐다. 친구가 소수였고, 살갑게 지내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금 무뚝뚝하고, 적당히 거리감이 있는 관계랄까. 당시에는 인간관계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활발한 성격도 아니었다. 그래서 따돌림을 받지는 않았지만, 무시를 많이 당했었다. 그냥 교실에 몇 명씩 꼭 있는 샌님. 그게 바로 내 이미지였다. 샌님 이미지와 잘 나가는 애들의 무시, 이것들이 너무나도 싫었었다. 나도 평범한 다른 애들처럼 친구들과 잘 어울리면서 활발하게 지내는 학생이고 싶었다. 단지 그게 내 유일한 목표였다. 하지만 난 그 목표를 졸업할 때까지 이루지 못했다.


내 처지가 불행하다는 생각이 날 때마다 상처를 받았다. 그러한 마음속 상처가 성공에 대한 집착을 만들고, 집착이 완벽한 독서에 대한 강박관념을 만들었다. 완벽함을 추구했으니 원하는 대로 성공했냐고? 전혀. 난 결국 평소 모의고사 수준에 맞는 대학에 진학했다. 수능 성적은 평소보다 낮았지만, 운이 좋아 예상했던 수준만큼의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완벽한 독서를 하려고 노력했어도, 그만큼의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었다. 같은 양인데도 남보다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독서에 할애했다. 그래서 한 번 정독하는 데 너무 힘이 들었고, 결국 공부를 이전보다 더욱 안 하게 되었다. 즉, 완벽함을 추구했지만 난 더욱 불완전한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불완전의 역설


완벽은 쫓아가지만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애초에 완벽할 수 없는데 완벽하려 하니, 욕심이 끝이 없다. 채워지지 않는 만큼 불안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다. 불안은 우리를 방해한다. 평정심을 가혹하게 흔들고, 마음의 중심을 무너뜨려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쓸데없는 생각이 마구마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또 시야를 아주 좁게 만든다. 확신이 생기지 않으니, 여러 가지를 볼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한 가지에 집착하게 된다.


내가 독서할 때를 예로 들면, 완벽한 독서에 대한 불안이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전체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한 문장을 여러 번 읽고, 이에 따라 독서 속도가 느린 것이다. 이해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완벽을 지향한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든 여러 번 검토 및 수정 과정을 거친다. 더 나아가 위인을 존경하고, 신을 섬기며, 지도자를 따른다. 이들은 우상(Idol)이고, 우상은 완벽한 존재라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완벽한 성과를 만드는 완벽한 인간이 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완벽할수록 경쟁과 협력을 통한 이익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익이 많다는 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나 이익(Profit)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완벽을 지향함으로써 완벽함에 조금이라도 다가가려 노력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집착해서는 안된다. 절대로 완벽함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착이 끝이 없게 된다. 집착은 불안 그 자체이다. 그래서 지나친 완벽주의는 우리에게 도리어 해롭다. 


대신, 불완전은 관용을 통해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완벽하지 않아도 그냥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관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용을 가지려 노력하길 바란다. 그래야 더 많은 것을 시도하고, 이룰 수 있으니. 이게 바로 불완전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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