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간모자 Nov 24. 2019

남자도 아이들을 좋아하는구나

성(性)적인 편견 (1)

출근길 초등학생

시내버스에서 한 남자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을 이뻐하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랬다. 주변에서 아이를 좋아하는 남자를 보지 못했었기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매일 아침마다 같은 노선의 시내버스를 탄다. 항상 같은 시간에 타다 보니, 매일마다 보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그중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 2명도 포함되어 있다. 항상 어느 초등학교의 근처 정류장에서 둘이 함께 내렸다. 외모가 닮은 것을 봐선, 형제인 것 같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호자 없이 시내버스를 타고 등교를 하는 듯 보였다.


내가 타는 노선은 출근길에 사람이 정말 많다. 수많은 사람들과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접촉을 해야 한다. 서울의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겨우겨우 납작하게 탑승한 상황과 유사하다. 서로가 서로의 체취를 어쩔 수 없이 맡으며 버스가 빨리 정류장에 도착하기만을 바라고, 듣고 싶지 않아도 누군가의 통화소리를 자연스레 듣게 된다. 그런 버스 안에서 두 아이는 늘 여러 사람들에 끼여 있다. 


외모가 상당히 귀엽게 생겼다. 그래서 친근하게 말을 거는 어른들이 많았다. 간혹, 자리를 양보하는 어른들도 있었다. 붙임성이 좋아서 어른들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밝고 명랑하면서 씩씩한 아이들이었다. 나도 몰래 바라보며 소리 나지 않게 웃곤 했었다.



남자는 꼭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꼭 여자다워야 하나?

며칠 전에는 신기한 일이 있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그 아이들을 보며 사랑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쫙 편 손바닥으로 그 두 명 중에 한 아이의 정수리를 살짝 톡톡 쳤다. 그 아이는 자주 있는 일인 것처럼 당황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그 남자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늘 내리던 정류장에 내렸다.


나는 남자들은 자기 자식을 제외한,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여자들이 아이들을 보며 이뻐하는 것은 자주 봤지만, 남자들이 그러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아이를 좋아하는 남자는 없다. 도리어 아이를 좋아하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대부분, 아이를 봐도 시큰둥하거나, 별 관심이 없다. 어떤 지인은 아이들이 아르바이트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손놈'이라며, 다들 왜 이뻐하는지 모르겠다고 나에게 말하기도 했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만났던 남자들에게는 아이에 대한 애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방의 보수적인 문화에서는 여전히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를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말이 적고, 여자는 말이 많다고 받아들여진다. 남자는 듬직해야 하고, 여자는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힘든 일은 남자의 몫이고, 세심한 일은 여자의 몫이라고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아이는 여자가 키우는 것이 옳으며, 여자들은 아이를 좋아하는 반면에, 남자들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섣불리 판단한다. 


이런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머지, 나는 평생 동안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고를 깊게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나서는 여러 고정관념을 곱씹어보며 왜 그렇게 생각해야만 하는지 늘 의문을 품어왔다. 남자이지만 여성스러운 면을 다소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당연할지도 모른다. 남자이지만 여성스러우면 마치 잘못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회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울 때도 많았다. 


정수리를 톡톡 치며 귀여워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남자가 낯선 아이를 이뻐하다니. 주변에서 본 적도 없고, 그런 사람을 알고 있지도 못하다. 들어본 적도 없었으며, 상상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사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 모습을 보며 놀랐던 나 자신이었다. 사회적 편견을 갖지 않겠다고 유념하며 살아온 나도, 아직까지 편견을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다.


아직은 나도 성역할에 대한 보수적인 관념을 버리지 못한 듯싶다. 수도권은 모르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비롯한 지방은 여전히 보수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한 남자가 낯선 아이를 보며 진심으로 귀여워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으려면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충 썼는데 좋은 글이면 얼마나 좋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