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간모자 Dec 17. 2019

못생기고 조용하면 인맥이 좁다

샌님이란 어떤 사람인가? (2)

씁쓸한 과팅 후보자 탈락의 추억

대학에 다니면 과팅(한 학과의 여러 학생들이 다른 학과의 여러 학생들과 소개팅을 하는 것)을 할 기회가 생기곤 한다. 신입생 때, 여러 학과의 많은 사람들과 알고 지내는 소위 '인싸'들은 학과끼리 과팅을 주선하기도 한다. 주선자는 과팅을 할 날짜와 시간, 장소, 인원수 그리고 인원 등을 정한다.


과팅과 관련해 슬픈 경험이 있다. 학과 동기들과 다 같이 수강하는 강의의 쉬는 시간이었다. 동기 한 명이 과팅 할 사람을 구한다고 강의실에서 외치고 다녔다. 이미 상대 학과에서 3명의 여자 학생들이 정해진 상태였다. 과팅을 할 3명의 남자를 구한다며 한 사람 한 사람 의사를 묻고 있었다. 물론 모든 학생들에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본인이 생각하는 기준에 적절한 사람에게만 다가가서 과팅을 하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당시에 난 뒷자리에 앉아있었다. 그 '인싸'는 앞자리에 있는 동기들부터 물어보고 다녀서, 누구한테 물어봤었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어떤 동기는 관심이 있어 보였고, 반대로 시큰둥한 동기도 있었다. 한 명 한 명 물어보며 내가 있는 자리 쪽으로 다가왔다. 은근히 궁금했다. 과연 나한테도 물어볼까. 기대 반 의심 반인 마음을 추스르며 기다려봤다. 역시, 그 인싸는 나를 은근슬쩍 지나쳤다. 나는 과팅 후보자에도 못 올라갔다.


실망감이 컸었다. 나를 제외하고, 물어보지 않은 사람이 또 누가 있나 살펴봤다. 이내,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 간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하나같이, 못생기고 조용한 '샌님'이라는 것. 안경 쓰고, 통통하거나 뚱뚱하고, 패션이 튀거나 세련되지 않고 머리 스타일이 평범해서 칙칙한 사람들... 마음 한편이 씁쓸했다.


한정된 인원을 뽑아가야 하니까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못생기고 조용한 사람은 과팅에 가봤자 커플로 이어질 확률도 낮고, 재미있게 놀지도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소개해주는 본인의 체면이 있으니까 제일 성공률과 만족도가 높을 사람들을 선택했을 것이다. 못생긴 외모는 덜 매력적이고, 조용한 성격은 노잼이라는 것,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마음은 심란했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었고, 그 인싸에게 조금 실망하기도 했었다.



'샌님'은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적어서 인맥이 좁다

인간관계를 맺는 계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주변 사람의 소개에 의해 만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소개팅이 있고, 친구나 지인이 자신의 친구나 지인을 소개해주기도 한다. 여러 사람을 소개받는다면 인맥이 자연스럽게 넓어지게 된다. 얕고 넓은 인맥과 좁고 깊은 인맥 중 어떤 것이 더 좋은지는 개인의 사정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소개받는 사람은 본인이 원한다면 두루두루 여러 사람과 친하게 지내며 얇고 넓은 인맥을 구축할 수 있다. 반면에, 못생기고 조용한 샌님은 그럴 수조차 없다.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연애를 목적으로 하는 소개팅은 외모와 성격을 본다. 일단 외모가 뛰어나면 합격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 잘생기고 이쁜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에 더해 성격까지 스윗하고 따뜻하고 착하면 더 좋다. 잘생기고 이쁘면 조용한 성격이어도 괜찮다. 그마저 개성 있는 매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못생겼다면? 활발하고 재미있는 성격이라면, 커플은 안되더라도, 소개팅 자리는 괜찮은 자리로 평가될 수 있다. 못생기더라도 활발하고, 적극적이고, 재미있는 사람은 성격이 큰 매력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못생겼는데 조용한 경우라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조용한 성격의 샌님을 재미없어한다. 대화가 잘 이루어진다면, 서로에 대해 원활히 알 수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긴 한다. 행동을 적극적으로 한다면, 서로의 마음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으면서, 관계를 진전시킬 기회를 더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긴 한다. 조용한 성격의 샌님은 말이 적고 행동이 소극적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샌님은 말을 별로 안 해서 소개팅하는 내내 어색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곤 한다. 게다가 행동이 소극적이면 상황을 주도하지 못하면서, 찌질해 보이기까지 해서 소개팅 상대방이 매력을 못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외모가 못생기고, 성격이 조용하면 주선해줘 봤자 소개팅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 섣불리 확신하는 것이다. 주선자는 본인의 체면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우월하고 잘난 사람을 소개해주면서, 그 사람과 알고 지내는 본인도 우월하고 잘난 사람인 것처럼 느낀다. 마치 '나 이런 사람과도 아는 사이야'라고 자랑하듯이 상대방에게 뿌듯해한다. 설사 우월하고 잘난 사람이 아니더라도, 본인이 창피하게 느끼지 않을 정도의 사람을 소개팅 당사자들에게 서로 소개해주려고 한다. 스스로 체면을 깎아먹으려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샌님에게는 소개팅을 주선해주겠다고 나타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애초에 새로운 인연을 만날 기회 자체가 생기지 못하는 것이다.


친구나 지인을 소개해주는 경우에는 외모의 비중이 줄어들게 된다. 누군가의 친구나 지인이 되는 것은 외모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성격도 마찬가지로, 어떤 성격이든 서로 어울리기만 한다면 관계가 이어질 수 있다. 조용한 성격이어도 상대방과 성격이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연애 목적의 소개팅이 아닌, 일반적인 만남에서는 꼭 재미있을 필요도 없고, 적극적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서로 좋은 추억을 나눌 수 있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나 지인을 모두가 원하기 때문에 조용한 성격의 사람도 곁에서 괜찮은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 친구나 지인을 소개해주는 자리는 소개팅보다는 따져보는 조건들이 훨씬 적다. 그러므로, 더욱 쉽고 편하게 여러 자리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친구나 지인 등의 주변 사람을 소개해주는 자리 자체를 샌님이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조용한 성격이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어색해하고 어려워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조용한 성격의 사람은 안정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존재와의 접촉에 호기심보다는 불안감을 느낀다는 고정관념이 사회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주변 사람을 소개해주는 자리를 애초에 만들려 노력하지 않는다. 친구나 지인이 될 수도 있는 새로운 인연을 만날 기회도 소개팅의 경우처럼 애초에 생기지 못하는 것이다. 안 그래도 아는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먼저 말하지 못하는 샌님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누구나 연인, 친구, 지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샌님은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누구보다 더욱 적다. 그래서 인맥이 좁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겨우 버텨낼 수 있는 불안한 세상에서 샌님은 외롭다. 인맥은 지치고 힘들 때 물질적, 심리적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다. 나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샌님은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길 바란다. 샌님에게는 작은 인연도 소중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약자는 규칙을 지킬 수밖에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