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간모자 Dec 01. 2019

약자는 규칙을 지킬 수밖에 없다

샌님이란 어떤 사람인가? (1)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강자와 눈치 보기 바쁜 약자

학교는 강자가 사회를 지배한다는 사실이 가장 눈에 잘 보이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학급마다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힘의 역학 관계가 있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아이, 그런 친구들을 곁에 두고 친하게 지내는 아이, 외모가 뛰어나서 멋있어 보이는 아이들은 자연스레 힘을 얻게 된다. 게다가 무리를 지어 어울리기 때문에 힘은 더욱 강해진다. 학급 내에서 발언권이 강하고, 누군가를 괴롭혀도 주변에서 개입하지 못한다. 같은 반 친구들을 본인이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고,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 가장 강력한 권력자인 선생님에게도 반항할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할 만하다'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생님과 대적해도 주변에서 견제하는 존재가 없다.


반대로 약자는 매일 눈치를 보기 바쁘다. 발언권이 없다시피 하고, 주로 괴롭힘을 당한다. 친구에게 배려심 있게, 착하게 대하지 않으면 친구가 본인을 외면할 수도 있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주변 친구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설득해야만 한다. 말과 행동은 가려야 한다. 힘이 약한 본인의 처지에 맞지 않게 목소리를 크게 내거나, 활발하게 행동하면 강자에게 기가 꺾인다. '왜 나대냐'며 견제가 훅 들어온다.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이 있어도 참아야 하고,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가려야 한다.


선생님에게 반항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동갑인 힘센 친구들도 못 이겨먹는데, 더 강력한 존재인 선생님에게 대적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대적하기라도 한다면, 강자들에게 견제가 들어온다. '나는 선생님에게 대들어도 되지만, 나보다 약한 너는 안된다'는 심보이다. 그래서 약자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다. 선생님은 학교의 규칙으로 상징된다. 선생님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학교의 규칙에 해당한다. 반항할 만한 자신감도 없고, 실제로 힘도 없는 약자들은 학교의 규칙에 순순히 따른다.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이 말이다.



샌님은 규칙을 잘 따르는 약자이다

못생겼으면서 조용한 성격인 샌님은 약자이다. 외모가 우월한 것도 아니고, 인맥이 빵빵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힘이 약하기 때문에 한 사회 내에서 규칙을 잘 따른다. 규칙을 어길 경우의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불이익에 강한 두려움을 느낀다. 규칙을 어기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과 견제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샌님에게는 그것들을 감내할 만한 여유가 충분하지 않다. 학교의 규칙을 어기면 선생님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그리고 강자들의 타깃이 된다. 본인의 분수에 맞지 않게 규칙에 대적한다고 강자들이 인식한다. 강자들은 규칙을 어기고, 규칙에 반항하는 일은 본인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약자들이 규칙을 어기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괴롭혀서 약자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한다. 선생님의 지지를 잃으면서 강자에게 괴롭힘을 당할 경우, 아무도 약자를 구해주지 못한다. 비슷한 처지의 약자나 보통의 친구들은 괴롭힘 당하는 약자를 혼자서 구할 수 없다. 본인들이 타깃이 되지 않길 바라며 숨죽이고 가만히 있을 뿐이다. 함께 덤비지 않는 한, 약자는 강자에게 승리할 수 없다.


학교에서의 샌님은 덩치가 작고 힘이 세지 못하며, 외모가 매력적이지 못하고, 공부를 잘하지도 못한다. 집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친구도 적다. 내가 딱 이랬었다. 학창 시절, 나는 샌님이었다. 학교가 정글처럼 느껴졌었다. 강자는 편하게 생활하지만, 약자에게는 제약이 많고 불편한 곳이 학교라고 생각했다. 늘 눈치를 봤었다. 힘이 강한 친구들에게 나는 만만한 상대였고, 괴롭히기 딱 좋은 사람이었다. 지나가다가 이유 없이 시비를 걸었고, 수업시간에 모두가 있는 곳에서 당당하게 나를 조롱했다. 그런 상황에서 구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나처럼 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있을 뿐이었다. 강자들은 약자들을 괴롭히고 제약을 가하면서 권력의 맛을 느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우월한 위치를 재확인했다.


약자인 나는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았다. 자리에서 잘 벗어나지 않았고, 활동반경 자체가 좁았다. 늘 조용하게 학교생활을 했었다. 강자들이 보기에 내가 조금이라도 나대는 것처럼 보이면 바로 공격이 들어왔다. 비하하고, 조롱하고, 마치 싸울 것처럼 성질을 냈다. 마치 내가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환경에서 내 본래의 모습을 온전히 나타내며 살 수 없었다. 조용하고 소심한 학생으로 낙인찍혔고, 나 또한 나 자신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버렸다.


규칙을 어기는 것은 모든 것을 다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게 느껴졌다. 강자들처럼 나도 약간의 탈선을 저지르고 싶었다. 수업시간에 떠들고 싶었고, 때로는 청소를 대충 하고 싶었고, 야간자율학습을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런 용기는 없었다. 규칙을 어기면 선생님의 실망이 따라왔고, 주변의 날카로운 시선도 함께 느껴졌다. 선생님에게 미움을 받으면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게다가 강자들의 공격과 괴롭힘도 두려웠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며 매일 학교를 다니고 싶진 않았다. 나도 당당하게,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편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떠들면 '쟤는 뭔데 계속 떠드냐'라고 했고, 청소를 대충 하면 나 대신 청소 좀 제대로 하라고 구박하기 일쑤였다. 야간자율학습을 도망가면 '쟤도 도망갔으면 다 도망간 거네'라는 반응이 돌아왔고, 본인들을 위해 자리에 앉아있으라는 눈치를 주곤 했었다. 


힘이 없는 샌님은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이 규칙을 지키게 된다. 규칙을 지키지 않을 때 발생하는 불상사에 누구보다 예민하고 아파한다. 오늘도 사회에서는 수많은 샌님들이 규칙을 지키며 조용히 살아간다. 본인에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길 바라며, 평온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길 바라며 말이다.



이미지 출처 : MartinStr,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대안학교에 가고 싶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