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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Dec 29. 2019

대안학교에 가고 싶었다

나는 학교생활 부적응자였다

공교육의 대안 : 대안학교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씨는 '손축구아카데미(SON축구아카데미)'라는 대안학교를 2018년 3월부터 설립, 운영하고 있다. 폭력과 폭언 등의 가혹행위 없이, 학업과 병행하며 축구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 하는 14세~19세 청소년들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 


2019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조사단은 5,274개 초중고의 운동부 선수 6만 3,211명을 대상으로 스포츠인권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 5만 7,557명  중, 언어폭력 경험자는 9,035명(15.7%), 신체폭력 경험자는 8,440명(14.7%), 성폭력 경험자는 2,212명(3.8%)이나 되었다. 폐쇄적인 운동부 내에서 남몰래 폭언과 폭행, 심지어 성범죄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운동을 하는 학생들은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거의 보기 힘들고, 시험 기간에나 겨우 마주칠 수 있다. 운동부는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매일매일 연습에 몰두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학업은 뒤로 밀리게 된다. 이런 현상은 일반인들이 '운동하는 애들은 무식하다'라는 편견을 갖게 만들었다.


'손축구아카데미'는 이 문제들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했다. 이 대안학교 학생들은 영어 및 일본어, 독서토론, 인성교육, 기타 연주 등 축구 연습 외에 축구 선수에게 꼭 필요한 수업에도 참여한다. 실력뿐만 아니라, 교양도 겸비한 학생을 육성하는 것이 목표이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축구를 연습하면서 혼이 나거나 욕을 듣거나 하지 않는다. 학교는 학생들의 운동 실력과 성적에 집착하지 않고, 학생을 존중하며 훈련을 진행한다. 그래서 운동에 순수하게 몰입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다.


이처럼, 대안학교는 기존 학교교육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일반적인 학교와는 다른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학교를 의미한다.



평범하지 못해서 외로웠던 나는 대안이 필요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대안학교로 가고 싶어 했었다. 학창 시절, 난 바보 같이 소심한 사람이었다. 내가 빌려준 책을 다시 돌려달라고 말하는 것도 주저할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매우 예민한 사람이기도 했다. 총원이 40명 정도인 교실에 학생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었다. 내 주변에 누군가가 지나가는 것조차 불편하게 느껴졌다. 또한, 나에 대한 한 사람, 한 사람의 말과 행동, 표정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과도하게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교실이 복잡하고 시끄러운 장소로 인식되었고, 어떤 것에도 차분하게 집중하질 못했다. 나는 나만의 독립적인 공간이 보장되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사회성이 아주 낮아서 친구가 많지도 않았었다. 당시에 친구들은 모두 온라인 게임에 관심이 많았다. 학교가 끝난 후나 주말에 PC방에서 다 같이 게임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난 판단을 빠르게 하면서 손을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게임에는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대신 이상하게도, 내 마음과 타인의 행동을 천천히 관찰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릴 말한 접점이 거의 없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곤 했었다.


소심하면서 예민하고 친구가 없는 아이는 자연스럽게 교실 내에서 약자였었다. 소위, 잘 논다고 일컬어지던 애들은 지나가다 툭툭 건드리기도 했고, 눈에 띄면 한 번씩 놀리곤 하며 재미있어하기도 했다. 생김새를 보고, 친구가 적은 것을 보고 일상 속에서 무시를 했고, 내가 아무리 화를 내도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학교가 정글처럼 느껴졌다. 친구가 많을수록 힘이 강해지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누군가가 나를 왕따 시키자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것을 눈 앞에서 가만히 보기만 해야 했었다. 친구가 적어서 힘이 없는 나 자신을 보며 자괴감을 많이 느꼈고, 나를 만만하게 봤던 여러 아이들을 증오했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무난히 적응하며 지내고 싶었고, 그에 집착했었다. 하지만 나는 일반적인 친구들과는 달랐다.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나 자신을 평범한 아이라고 내 멋대로 정의하곤 했었다. 사실, 평범한 사람이 너무나 되고 싶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그들과 못 어울린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다른 친구들처럼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며 편안하게 잘 지내고 싶었다. 마음 편히 학교에 다니는 것이 학창 시절 동안의 꿈이었고, 그러기 위해선 내 곁에는 많은 친구들이 필요했다. 무난해서 누구나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 되기 위해 끝없이 노력했다.


하지만 꿈을 도저히 이룰 수가 없었다. 지나치게 소심해서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도 못했고, 늘 인간관계에서 약자였으며, 조용하고 주관이 없어서 매력이 없어 보였다. 너무 예민해서 타인의 사소한 말과 행동, 표정에 쉽게 감정이 왔다 갔다 했고, 툭하면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항상 주눅 들어 있었고, 굳어 있었다. 이런 성격에 취미와 관심사까지 다른 친구들과 아예 달랐다. 그래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계기 자체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나와 비슷한 친구를 학교에서 찾아보기란 힘든 일이었다. 비슷할 수 없을 정도로 난 특이한 사람이었으니까. 애초에 난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 될 수도 없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내내 무탈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본래의 모습을 숨기고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을 무시하며 마음을 강하게 먹으면서 강한 척을 했었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타인에 대한 여러 감정과 생각들을 애써 무시했다. 정말 관심이 없었지만 게임에 억지로라도 흥미를 느끼려고 했고, 즐기려고 노력했다. 평범한 학생처럼 위장하기 위해, 학교생활을 멀쩡하게 해내기 위해 매일매일 치열했다. 그렇게 살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고등학교 생활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시스템이 똑같으니, 중학교 때와 같이 평범한 사람처럼 지내기 위해 또 고생해야 할 것이라 예상했다. 나답게 살고 싶었다. 내 원래의 모습대로 편안하게, 자유롭게 학교생활을 하고 싶었다.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해방되고 싶었고, 강자와 약자가 나누어지지 않는 곳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안학교에 가고 싶었다. 내가 생각해놓았던 대안학교에 이미 다니고 있는 한 학생의 블로그를 정독했었다. 사진에 관심이 많았고, 미래에 사진을 전공하고 싶어 했던 학생이었는데, 학교생활이 상당히 자유분방한 것처럼 보였다. 직접 찍은 사진을 통해 엿본 대안학교 생활의 현실과 재학생들을 보니 나에게 맞는 학교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러모로 매력적인 부분이 많았다. 학생수가 소수인 것이 마음에 들었고, 교실을 계속 옮겨가며 수업을 들어서, 한 교실에 계속 있지 않아도 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교실수업 외에 체험학습 등의 차별화된 수업을 진행하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나처럼 기존 공교육에 의문을 품고, 대안을 찾는 학생들이 진학한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나와 '비슷한' 친구들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더 이상 평범한 척할 필요도 없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억지로 노력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 기대했다.



평범하지 않은 건 잘못된 게 아니라 특별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일반고에 진학했다. 부모님의 강한 반대와 주변의 만류에 부딪혀 내가 포기해버렸다. 대안학교는 학교생활에 적응 못하는 애들이나 가는 곳인데, 왜 가려고 하느냐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그 적응 못하는 아이인데 다들 왜 아니라며 부인하는지, 당시에는 주변 사람들을 많이 원망하기도 했었다. 아마도 학교생활에 적응 못하는 아이가 아니었으면 하는 욕심에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고등학교 생활은 예상했던 대로 중학교 때와 비슷했고, 정말 많이 힘들었다. 입학 직후에 학력평가 시험을 봤었는데, 중학교 졸업성적에 비해 너무나 추락한 성적이 나왔다. 담임선생님이 나를 개인적으로 불러내고는 "집에 무슨 일이 있어?"라고 진심으로 걱정하시기도 했었다. 불면증 때문에 밤마다 잠을 자지 못했었다. 자다 깨는 것을 반복하기 일쑤였고, 매일 가위에 눌렸었다. 가위에 눌려 귀신을 보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학교에 못 다니겠다는 말을 "검정고시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라고 돌려서 말해 본 적도 있었고, 어느 날에는 참다 참다 하소연을 한 적도 있었다. 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데, 유학을 보내주면 안 되겠냐고 진지하게 어머니에게 말해봤었다. 어머니는 어차피 외국에서도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며, 안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몰래 눈물을 훔치셨었다. 나 자신이 너무나 밉고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난 참을 수밖에 없었다. 3년 동안 평범해지고자 노력했지만, 졸업할 때까지 난 평범한 사람이 되지 못했고, 무난한 학교생활을 하지도 못했었다.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불가능한 일을 계속 붙잡고 있었으니까.


몇 년 전, 친척들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대안학교에는 왜 가려고 했느냐, 갔었다면 제대로 대학이나 갔겠느냐, 다니면서 후회했을 것 같지 않냐?"... 난 아무렇지 않게 바로 이렇게 말했다. "학교생활이 너무 안 맞고 힘들어서 그랬어요, 대안학교에 갔었어도 혼자 공부하는 것을 원래 더 좋아하니까 대학은 지금과 비슷하게라도 갔을 거예요, 만약 갔었다면 후회 안 했을 겁니다"라고... 만약 고등학교를 대안학교로 갔었다면, 적어도 학창 시절이 떠올리기도 싫은 과거가 아닌,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지 않았을까. 최소한, 평범하지 않은 나 자신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쯤 되어있지 않았을까 싶다.


질풍노도의 시기 동안 수없이 나 자신에 대한 관찰과 고민을 거듭해 오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자신이 남들과 다른 존재라고 진심으로 느껴진다면, 정말로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평범한 사람은 자신이 평범한지, 특이한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평범해지기 위해, 남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자신의 개성을 억누르며 아등바등 노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소외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본래의 모습을 부정하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특이함은 고칠 거리가 아니라, 계속해서 유지해나갈 특별함이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다수가 걸어가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모든 분들이 자신의 특별함을 존중하며, 본인만의 스타일대로 행복하게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미지 출처 : SON축구아카데미, http://sfacademy.co.kr/

참고자료 : 중앙일보, "[밀실]잘못되면 초졸인데 왜 몰렸나···손흥민 부친 '대안학교'", 201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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