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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May 05. 2020

인턴은 두리번거리는 미어캣이다

첫 번째는 어렵고 어설프다


요즘, 직무경험을 쌓기 위해 한 공공기관에서 인턴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속한 사무실에서 인턴은 나를 포함해 두 명이다. 한 여성분과 함께 인턴생활을 하고 있는데, 나보다 나이가 어리면서 처음으로 인턴생활을 하게 된 분이었다. 


그분은 업무수행과 조직생활에 부담을 느끼는 듯 보였다. 업무를 하면서 허둥지둥 대는 것처럼 보였고, 얼굴엔 늘 불안함이 역력했다. 언제 한번,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할 만하냐고 물어봤었다. 그분은 바빠 보이는 직원분들에게 매번 질문을 하는 것이 눈치가 보인다고 했었다. 그리고 일을 잘못했다가 나중에 책임을 지게 될까 봐 불안하다고 하기도 했었다. 나도 그렇다며 웃으면서 위로하고,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혼자 걸어가다가 문득 내 첫 인턴생활이 떠올랐다.


작년 가을 즈음에 다른 공공기관에서 2달 동안 인턴을 한 적이 있었다. 이전까지 알바를 해본 적이 없었으니, 군생활을 제외하면 첫 사회생활이었다. 첫날,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있을 때의 어색함은 희망적이면서도 불안하게 느껴졌었다. 한번 보라고 건네준 안내 책자는 눈에 잘 들어오질 않았다. 대신 주변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 결재를 받으며 상사와 나누는 대화, 내 옆을 누군가가 지나갈 때마다 느껴지는 시선들이 선명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나서서 무언가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어색한 시간을 하루 종일 보내다 보니 첫날이 끝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분위기에 적응하게 되었고, 자리에서 엉덩이를 들 일이 많아졌다. 사무실 막내는 엉덩이가 무거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인 것 같아 모니터 위로 고개를 들며 주위를 살피기 바빴다. 근처에서 핸드카트의 덜그럭 소리가 들리면 내가 도와줘야 하는 건가 싶어서 눈치를 봤고, 직원과 눈이 마주치면 곧장 웃으며 다가갔다. 손님이 오시면 누가 시키기도 전에 차를 드실 것인지 여쭤보고 타다 드리곤 했다. 업무 파악은 물론 분위기 파악도 아직 되지 않아서 어느 일에 끼어들어야 하고, 어느 일에서는 빠져있어야 하는지를 잘 몰랐다. 그래서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는 것이 막내로서의 미덕이라고 생각했고, 가만히 있기엔 불안해서 그런 것도 있었다.


큰 행사의 운영을 돕기 위해 함께 출장을 간 적도 있었다. 인턴을 하기 전만 하더라도 모르는 사람과 전화통화를 하는 게 너무 싫었었는데, 그래서 행사장에 방문할 예정인 손님들에게 전화를 돌려달라는 말을 갑작스럽게 듣고 많이 당황했었다. 원래 낯을 가리는 성격인 데다가 긴장했을 때 말을 잘 못해서 어버버 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싫어서 통화 자체를 불안해하곤 했었다. 전화받은 사람이 맞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내가 어디의 누구이며, 어디쯤 오고 계시고 언제쯤 도착하냐로 구성된 3~4문장을 말하는 것이 그때는 왜 그렇게 어렵게 느껴졌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할지 몰라, 직원들이 통화하는 모습을 허리와 목을 바짝 세워 어깨너머로 보면서 겨우 따라 했던 기억이 난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손을 덜덜 떨고, 당황한 표정을 하면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던 그때의 상황은 지금 생각해봐도 창피하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해본다는 것은 짜릿한 일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일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하나의 조직에 속해서 해보지 않은 업무를 해보고, 처음 겪어보는 조직문화에 적응하는 일은 사회초년생에게는 큰 부담이 되는 일이다. 일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과 함께, 잘 해내야만 한다는 강박이 공존하고, 동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싶다는 기대와 함께, 괜히 미움을 사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공존한다. 그래서 뜨거운 물과 얼음물을 오가는 냉면 사리처럼 기분이 설렜다가 불안해지곤 한다. 그런 복잡한 감정 속에서 인턴은 업무를 배우고 조직에 적응하기 위해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한다. 마치 포식자를 경계하는 겁먹은 미어캣처럼 말이다.


업무를 하며 그 인턴분을 보다가 미어캣 같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불안한 표정으로 모니터와 파티션 너머로 이리저리 둘러보며 끙끙대는 모습을 보니, 전 직장에서의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일을 배울 수 있어서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잘할 수 있을까 불안하다는 그분을 보며 마음속으로나마 이렇게 응원해주고 싶다. 누구나 다 처음엔 힘들어하고, 시간이 지나면 능숙해질 거라고. 그게 바로 성장하는 청년의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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