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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Jul 12. 2020

지금까지 2번 실패했는데, 이제는 화가 나지 않습니다

'인생사 새옹지마'

아직 20대의 절반을 넘겼을 뿐인 어린 나이이지만, 나는 내 인생에 2번의 실패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나이에 실패할 일이 그렇게 많은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고, 실패라고 할 만한 일인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실패의 기준이 각자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내 기준은 '1년이 지났는 데도 생각만 하면 화가 나는 일인가?'이다. 그런 일이 2개나 있다니. 그래서 꽤 오랜 기간 동안, 화가 많은 사람으로 지내왔다.



첫 번째는 대학 입시의 실패였다

단순히 수능을 못 보거나, 수시전형에서 탈락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원 없이 공부를 하지 못했던 것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게 된 원인이었다. 공부에 한창 집중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집중을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적응자였었다. 난 친구를 사귀는 데에 상당히 서투른 아이였었고, 특히, 상대방의 심리를 잘 파악하지 못했었다. 애들이 나에게 무슨 의도로 장난을 치는 건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를 무시해서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고, 나에게 다가오는 대부분의 애들을 튕겨냈었다. 친구와 적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나를 만만한 애라고 생각하며 무시한다고 받아들였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주변에는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친구들만 남았다. 놀림받지 않으면서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는 애들을 볼 때마다 정말 부러웠다. 나는 어떻게 저런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 매일 고민했던 것 같다. 고민해도 답은 당연히 나오지 않았고, 내 주변은 초라할 뿐이었다. 그래서 늘 외로웠다. 특히, 같이 어울릴 친구가 없을 때 참 외로웠던 기억이 난다. 외로움은 곧 나에 대한 비관으로 이어졌고, 사춘기 때문에 취약해진 마음속에 우울한 감정이 급격하게 피어올랐다. 그러다 우울증이 심하게 왔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늘 우울해서 손에 잡히질 않았다. 교실에서 공허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자기 비관을 하기 일쑤였고, 집에서도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기는 경우가 많았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머릿속이 항상 고민으로 가득 찼었으니 당연했을 것이다. 지식이 들어갈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제대로 공부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래서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학창 시절 생각만 하면 화가 났었다. '누가 명문대에 합격했다더라' 같은 소식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났었다. 유튜브에 SKY대에 다니는 학생의 공부법을 소개하는 등의 영상이 보일 때 일부러 '관심 없음' 버튼을 누른 적도 많았고, TV 예능을 보다가 명문대 학생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올 때는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채널을 돌려버린 적도 있었다. 명문대 학생들에게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을 불행하게 지냈던 나에게 화가 난 것이었다. 학교생활이 행복했었더라면 공부도 미련 없이 열심히 했을 것이고, 그러면 지금보다는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을 것이란 후회는 마음속에서 매일 나와 함께했었다.



두 번째는 대학생활의 실패였다

또다시 실패하기는 싫어서, 대학생활만큼은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학창 시절과는 다르게, 활발하게 사람들과 어울리며 열심히 노력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은 소심한 나에게 어색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삶을 다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꾹 참았었다. 학과 행사에 전부 참여했고, 동아리에도 들어갔었다.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선후배 사이의 군기 문화에 질려서 도망쳐 나왔고, 나에 대한 잘못된 소문이 퍼져서 선후배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나를 피했다. 새로 사귄 친구와는 작은 오해로 크게 싸워서 얼굴도 안 보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나를 싫어하고 뒤에서 욕을 했던 모두에게 화가 났었다. 그리고 참으로 미웠었다. '나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존재이구나', '나는 사람들과 못 어울리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들이 마음속에 깊게 박혔다. 이런 생각들은 대인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어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피하게 되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거나 무언가를 같이 하는 일이 두렵게 느껴졌다. 단순히 얼굴을 맞대고 말 몇 마디 나누는 일조차 하기 싫었다. 그냥 사람 자체가 싫으면서 무서웠었다. 모든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사람들과의 교류 자체를 끊어버렸다. 학과 활동은 물론이고, 친구들도 안 만났다. 학교와 집만 오가며 사회활동을 최소화했었다. 이런 생활은 4학년이 될 때까지 5년 동안 이어졌다. 



실패를 극복하게 된 우연한 기회가 생겼다

4학년이 되니 위기감이 생겼다. 아무것도 안 하면 졸업 후에도 아무것도 아닌 백수가 될 것만 같아 너무 두려웠다. 아무리 마음의 상처가 깊고,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먹고살려면 돈벌이를 해야만 한다. 취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급작스럽게 나에게 찾아왔다. 더 이상은 마음의 벽을 쌓고 숨어 살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사람이 무서웠지만, 조금씩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잘 못 어울리더라도, 누군가에게 또 상처를 받더라도 나는 사회경험을 쌓아야 했다. '에라 모르겠다'라고 외치며 눈을 질끈 감고 여러 봉사활동, 대외활동, 인턴에 지원했다.


처음에는 만만한 자원봉사부터 시작했다. 미술관 자원봉사, 대기업 대학생 자원봉사단, 교내 유학생 도우미 등 다양한 활동들을 시도해봤다. 조금 여유가 생긴 후에는 공공기관 두 곳에서 인턴생활을 몇 달 동안 했었다. 처음에는 참 두렵고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적응할 수 있었다. 여러 관람객들을 상대하며 낯선 사람을 상대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고, 대학생들과 자원봉사를 함께 하며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인턴생활을 통해서는 직장 내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직원들과 어울려야 하는지를 터득할 수 있었다. 사람의 심리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해서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노는 내 모습을 보며 괜스레 흐뭇했다. 나도 사교적인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과 함께 몇 년 동안 쌓아온 두려움과 걱정이 사라지며 뿌듯함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여러 활동을 하면서 지금까지 봐 오지 못했던 나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여태까지 내가 사람 마음을 참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했었지만, 의외로 나는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걱정하고 있는 사람에게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줄 알았고, 같이 일하는 직원이 업무적으로 놓친 점이 있으면 센스 있게 챙겨줄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사람이 싫다고 벽을 치고 지냈었지만, 알고 보니 역시나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나에 대해 깨달아가면서 화는 조금씩 가라앉았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는 믿음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나에 대해 조금씩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을 못 사귀었던 건 아직 어려서 인간관계 스킬이 부족해서, 대학교 신입생 때 내가 상처 받았던 것은 그때 만난 사람들이 나랑 안 맞았거나, 인성이 나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수 있다는 여유로운 생각을 할 줄 알게 되었다. 그땐 그랬었지만, 앞으로는 안 그럴 것이니 괜찮다는 믿음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실패했던 과거를 떠올려도 화가 나지 않게 되었다. 


실패를 극복하는 데에는 자신에 대해 충분히 성찰하고, 자신의 숨겨진 능력과 가능성을 발견하는 노력이 필요했었다. 그리고 노력하기 이전에, 그보다 먼저 용기 있는 도전이 필요했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고, 단지 먹고살기 위해 용기를 내어 마련했던 기회가 실패를 극복하는 데 우연히 도움이 되었다. 역시 인생사는 새옹지마인가 보다.


세상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경험하고 좌절한다. 우리는 실패를 하더라도 계속해서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 마음의 짐이 가슴속에 가득하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상처 때문에 온전한 곳이 하나도 없다고 하더라도 꿋꿋이 하루하루를 버텨나가야 한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주어진 삶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삶을 포기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실패는 극복해야만 한다.


숨어있는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조금만 용기를 내어 새로운 일에 도전하시길 바란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바뀌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너무 지칠 때마다 이 말을 생각하시기 바란다. '인생사 새옹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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