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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Mar 02. 2021

안개 낀 바다에서 배를 운전하는 기분

취준생 일기

결국 졸업을 하게 되었다. 학과 수석이라는 연락을 사전에 받고, 다른 과 수석들과 함께 단과대학장님께 직접 상장을 받았다. 상장을 들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하는 일 다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덕담을 들었다. 그게 전부였다. 부모님이 과 수석씩이나 했는데 학교에서 취업은 안 시켜주냐고 나에게 물었다. 요즘은 그런 거 없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학교는 그렇게 쿨하게 사회로 나를 보내주었다. 가족들과 함께 학교 캠퍼스 내에서 졸업사진을 찍었다.


고대하던 기관의 채용 전형에서 떨어졌다. 그것도 서류전형에서 광탈해버렸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기대했던 곳이었다. 지원한 기관과 유사한 다른 공공기관에서 현장실습과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지원한 직무와 관련성 높은 직무를 그곳에서 수행했었다. 그 외에, 직무 관련성이 높지는 않지만, 또 다른 금융기관에서 청년인턴으로 근무한 적도 있었다. 직무 관련 자격증도 여럿 가지고 있고, 직무와 관련된 전공이다 보니 관련 교육도 많이 받은 상태였다. 내 입장에서는 나 자신이 관련 직무 경험과 지식이 많아 보이는 사람처럼 보였다. 


게다가 내가 지원한 기관은 지방에 있으면서 대외 인지도가 많이 낮은 지자체 산하기관이었다. 지역 사람 중, 비슷한 공공기관이나 그곳의 지원을 받는 중소기업의 직원이나 드문드문 알 법한 곳이었다. 블로그에 웬만한 공기업 채용 공고는 다 올리는 취업 컨설턴트들도 내가 지원한 곳의 공고는 아예 올리지 않는 정도였다. 그만큼 인지도가 낮으면서, 채용 인원과 연봉도 매우 적고, 비수도권에 있는 지자체 산하기관이기 때문에 경쟁률이 많이 낮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 정도 수준이면 면접에서 떨어질 수는 있어도, 적어도 서류는 붙을 줄 알았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 면접으로 대화를 해보고 싶을 만큼은 내가 매력적인 지원자일 줄 알았다. 


지원한 지 며칠 안된, 예정일보다 하루 늦은 어느 날, 탈락했다는 모니터 화면을 보고 무언가 배신감을 느꼈다. 아침에 확인하고 화가 많이 났었다. 졸린 상태로 봤다가 결과를 보자마자 잠이 확 깼고, 내가 왜 떨어졌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감쌌다. 성질이 너무 나서 바람을 쐬러 나가야 할 것만 같았다. 백화점에 가겠다는 동생을 따라갔다. 동생을 따라다니며 같이 쇼핑을 했다. 이것저것 둘러보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이해가 안 된다는 생각이 드문드문 나타났다. 평소에는 가지도 않을 비싼 레스토랑에 가서 오랜만에 스테이크를 썰었다. 공격적으로 미디엄 꽃등심 스테이크를 썰면서 날 떨어뜨린 그 회사 욕을 정말 많이 했었다. 대체 얼마나 잘난 사람들이 많이 지원했길래 나를 서류에서 바로 떨어뜨리냐, 이런 곳도 나를 떨어뜨리면 내가 갈 곳이 과연 있기는 한 거냐 등등. 백화점 이곳저곳에서 동생 대신 내가 카드를 긁지 않았다면, 하소연이 지겹다고 도중에 도망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전의 여러 글에서 말했듯이, 작가로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말하고 싶었지만 마음속에 꾹꾹 눌러놨던 생각들을 에세이로 표출하고 싶었다. 때로는 나만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싶었고 인간에 대해서 논하고 싶었으며, 때로는 잘못된 것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싶었다. 책을 출간하고, 여러 플랫폼에 글을 기고하며 강연을 하면서 내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래서 브런치에 꾸준히 글도 쓰고, 공모전도 내보고 했지만, 기회가 닿지 않으면서 나이는 계속 먹어서 결국 취업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회사원으로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내키지 않는다. 두 기관에서 일해 보면서 나랑은 회사생활이 맞지 않을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반대로 생각했던 것 같지만, 나는 싫었다. 하더라도 길게 하고 싶지 않다. 작가가 되기 위해 거쳐가는 다리 정도로만 생각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취업준비가 마치 '불구덩이에 자발적으로 뛰어들기 위한 준비'로 느껴졌다.


그래도 먹고살기 위해 취업을 하긴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취업 목표를 정해야 했다. 현장실습으로 일했던 곳은 지원한 기관과 비슷한 지자체 산하기관이었다. 거기서 같이 일했던 직원들은 부끄러울 정도로 나에게 칭찬을 많이 했었다. 나는 시키는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었는데, 그분들은 나를 과분하게 좋게 봐주셨다. 우리 기관에 관심이 있어서 만약 다니게 된다면 우리가 미안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할 정도였다. 그리고 몇 개월 뒤 나는 여러 방면에서 차이가 있는 다른 금융기관에 인턴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이전에 근무했던 기관보다 연봉이든 인지도든 뭐든 훨씬 높고, 대신 일도 훨씬 많은, 누구나 가고 싶어 할 만한 그런 국책금융기관이었다. 상반된 두 기관을 다니면서 취업에 관해 많이 고민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는 어떤 부류의 기관을 목표로 정할지 결정했다. 결국 첫 번째로 일했던 곳이 조금 더 끌렸다. 


나는 돈 욕심, 일 욕심이 없으면서 워라밸, 연고지, 조직문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연봉이 많이 낮았지만, 업무량과 난이도도 낮아 마음에 들었다. 원래부터 물욕이 없어 소비를 잘 안 하고 모으기만 하는 스타일이라 적은 연봉으로도 사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지도가 낮았지만, 높으면 아무래도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는 지역의 공공기관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여기저기 전국으로 팔도 유랑을 떠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조직문화가 많이 보수적인 정책금융기관보다는 그나마 덜 보수적이었다. 버틸 만한 문화라고 느꼈다.


솔직히 말해서, 나와 비슷한 수준의 취준생들은 내가 지원했던 기관 같은 지자체 산하기관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주변에 물어보든, 학교 앱을 살펴보든 나와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많이 한 성실한 취준생들은 남들이 다들 가고 싶어 하는 곳을 지망한다. 정부 산하 공기업이나 금융기관 같은 규모가 크고, 연봉 높으면서 인지도도 높은 곳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나처럼 과에서 성적이 높은 애들은 대기업이나 공기업을 지망하는 사람도 있지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회계사 등의 전문직을 지망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지원한 기관 같은 곳은 대부분 모르거나, 알더라도 후순위로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지 걱정을 많이 했었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


이번에 서류라도 붙으면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잘못된 건 아니라고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당연히 서류는 붙을 거라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떨어졌으니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꿈을 한수 접었지만, 최대한 내 라이프스타일대로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조차 맘처럼 되질 않는다. 내가 내 인생에서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데, 남들이 끌고 가는 대로 끌려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산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요즘은 안개 낀 바다에서 배를 운전하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 멀미는 엄청나는데,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전혀 모르겠다. 그냥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황 속에서 때로는 파도가 치는 대로, 때로는 그냥 생각 없이 막 전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늘 막막하고 가슴이 답답하다. 


졸업하고 나서는 밥도 잘 안 들어간다. 걱정이 두 배 세 배로 늘어났다. 매일매일 책을 보며 공부를 하고, 컴퓨터로 채용 공고를 훑어보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마음이 쉽사리 편해지지도 않는다. 열심히 노력하면 웬만하면 불안감이 가라앉았는데, 요즘은 다르다. 그래도 계속해서 앞으로 정진해야 한다. 계속 백수로 살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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