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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모자 Jun 04. 2021

지원자를 비웃는 면접관

기억에 남는 경험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모 대기업의 대학생 대외활동에 지원한 적이 있었다. 사회경험이 부족했던 내가 큰 맘먹고 시도했던 새로운 도전이었다. 


물론 현실적인 목적도 존재했었다. 직원 채용 시에 작성하는 자기소개서에서 필수적으로 빼놓지 않고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직무와 관련해 어떠한 경력 또는 경험이 있는가?'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청년들은 대부분 경력이라고 할 만한 것이 마땅히 없다. 그래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경험을 앞세워 자신을 어필해야 한다. 이때, 만약 지원 직무와 관련된 경험이 없는 경우, 지원 회사에 어필할 만한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예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쓸 내용이 아예 없게 되어 서류통과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경험을 쌓는다는 것은 블라인드 채용 시대의 청년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나 또한 이러한 똥줄 타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는 청년이기에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경험'이라는 '스펙'이 없었기에 작은 기회라도 상당히 간절했다. 그래서 대외활동 지원에 상당히 정성을 들였던 기억이 난다.


어쩌다 보니 운 좋게 면접을 볼 기회가 주어졌었다.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진행되는 대외활동이어서 대학생들 사이에서 상당히 유명했다. 큰 규모의 기업이고, 판매하는 제품에 대해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알아챌 정도로 유명한 회사이다. 그래서 인터넷에 치면 후기가 엄청 많았었다. 후기들을 참고해서 면접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준비를 했다. 자기소개는 어떻게 해야 눈에 띌까? 사회성이 좋다는 걸 강조해야 뽑아줄까? 옷은 어떻게 입고 가야 하지? 등등 생각해야 할 것이 많았다. 면접이라는 소중한 기회가 주어졌으니, 최대한 성의껏 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면접 기회조차 얻기 힘든 것이 요즈음의 현실이니까. 나같이 특별한 재능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회는커녕, 작은 기회조차도 매우 귀중하다.


지각이라도 하면 안 뽑아줄까 봐 면접시간 40분 전에 도착했다. 교통이 편리한 곳에 위치해서 왔다 갔다 하기도 편하겠다며 뽑힌 후를 상상하며 걸어갔다. 도착 전까지는 그래도 희망에 가득 차 기분이 좋았는데, 막상 도착하니 부담감과 함께 긴장감이 올라왔다. 면접 대기장은 조용하고 낯설었다. 면접 대기장에서 어떤 태도로 있었는지를 관찰하여 평가에 반영한다는 후기를 봤었다. 준비성이 없어 보이고, 성실해 보이지 않으면 그게 면접관들에게 흘러들어 간다는 것이었다.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렇지 뭐..."라고 중얼거리며, 뽑아온 자소서를 봤고 미리 생각해 온 예상 질문과 답변을 되새기며 면접을 기다렸다. 물론 나 이렇게 준비해왔다, 면접 준비 열심히 해왔고 지금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일부로 티 나게 보여주면서.


고대하던 면접이 시작되었다. 면접장의 분위기는 조용했지만, 면접관들에게서 무언가 비아냥스러운 태도가 느껴졌었다. 다른 지원자의 말을 경청하면 면접관들이 좋게 봐준다는 후기에 따라, 고개를 돌려 다른 지원자를 쳐다보기도 하며 열심히 듣는 모습을 보였다. 긴장 안 하고 말을 매끄럽게 잘해야 좋게 봐준다는 얘기에, 말을 논리적으로 최대한 잘하려고 등에 땀을 흘리면서까지 신경을 썼었다.


하지만,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건지, 아니면 어린 대학생이라고 무시하는 건지 모를 면접관들의 애매하면서도 기분 나쁜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 면접관 한 명이 모두를 대상으로 질문을 했다.


"혹시 포토샵이나 영상편집 프로그램 같은 거 다룰 줄 아는 사람 있어요?"


눈치를 한번 쓱 보니까 만질 줄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난 중학교 때 포토샵을 배운 적이 있었다. 고급 과정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인 기능은 모두 다룰 수 있을 정도로 배웠기 때문에 어필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로 손을 들어 말했다.


"중학교 때 포토샵을 배웠었습니다. 기본적인 기능에 대해 배웠습니다. 조금 오래되기는 했지만 메커니즘은 알고 있기에 금방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풉.. 중학교.. 크킄


붙어야겠다는 절박함 때문에 중학교 때 배운 포토샵 실력을 어필했었다. 면접관들이 나의 포토샵 실력을 대외활동에서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라고 판단할 것이라 기대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내 열정을 표현하기 적절한 때라고 생각했다. 내가 원한 건 대외활동에 대한 나의 절박함과 열정을 면접관이 알아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면접관은 크게 비웃었고, 제일 높은 직급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였던 한 면접관은 되게 어이없어했었다. 그들은 내 절박함과 열정을 평가절하했다. 


순간 기분이 확 나빠졌다. 그런데도 혹여나 티가 날까 봐 같이 웃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일단은 붙는 것이 더 중요했다. 경력, 경험이 전무한데 졸업을 앞두고 있었기에 자존심 따위는 개나 줘야 할 정도로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었다.


'혹시 말도 안 되는 어필을 해서 맘에 안 들었던 건 아닐까? 내가 그때 그 말을 왜 했지 하..'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더 짜증 났던 점은 내가 면접이 끝난 뒤에 했었던 이 '후회'였다. 그렇게 무시를 당해놓고 나는 나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내 절박함을 무시했던 오만한 면접관들을 욕한 것이 아닌, 역량이 부족했던 나를 문제 삼았었다.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또한, 내 감정을 애써 무시했던 것도 후회되었다. 합격을 위해 숨겼던 내 감정이 그제야 솔직하게 다가왔다. 면접관들은 '예의'가 없었다. 그렇다. 지원자에 대한 '예의'가 없었던 것이다.


대학생들은 자기소개서에 쓸 경험을 하나라도 더 만들기 위해 수많은 '지원'을 한다. 경험을 쌓기 위해 다른 경험을 쌓아야만 하는 현실이 요즘 대학생들이 처한 상황이다. 정규직에 채용되지 못하면 오랫동안 경제적, 심리적으로 고생해야 하는 현실을 충분히 알기에 죽기 살기로 경험 쌓기에 뛰어든다. 이렇게 절박한 대학생들에게 대외활동은 기업들이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기업들에게는 대국민 이미지 개선, 지역사회와의 관계 개선 등의 의미겠지만, 대학생들에게는 미래가 걸려있다. 경험이란 스펙이 없어서 매일 고민하는 학생들이 참 많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예절은 지켜야 한다. 경쟁에서 탈락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요즘 청년들은 잘 안다. 그래서 더욱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하지만 지원자들도 사람이다.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면 누구나 분노한다. 면접관이나 지원자나 사람이다. 사람을 뽑을 권리가 있다고 무시할 권리도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 내에서는 예절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모두가 지켜야 할 도덕규범이다.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예의범절은 꼭 지켜져야 하는 미덕이다.


면접관의 언행과 태도에 상처 받는 지원자들이 많다. 나 또한 그 비웃음에 상처 받았다. 절박한 마음을 갖고 지원하는 만큼, 적어도 지원자들의 입장을 헤아려보려는 노력은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면접관으로서 나의 언행과 태도가 지원자들을 불쾌하게 만들지는 않는지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신입사원이 될 수도 있는 청년들에게 면접관은 기업의 대외 이미지이다. 지원자들은 면접관의 행동을 통해 해당 기업의 조직문화를 파악한다. 최근 면접 때 성차별적인 질문을 해서 물의를 일으킨 모 제약회사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지원자들은 회사가 면접 때 성차별적인 질문을 하면,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하며 성차별적인 질문을 스스럼없이 하고, 또한 성차별적으로 서로를 평가하기도 한다고 믿는다. 면접관이 지원자에게 예절을 지키지 않는 것은 임직원들끼리 서로 예절을 지키지 않는 문화가 조직 내에 형성되어 있다고 자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 또한 그 일 때문에 그 기업의 문화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면접관에게 반문하고 싶다. 기업 이미지가 경영활동에서 상당히 중요해졌는데, 혹시 본인이 쓸데없이 깎아먹고 있지는 않은지?


면접관님. 평소에도 그렇게 동료들 비웃고 무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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