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씽>을 보며 특히 주목했던 지점 중 하나는 극 중 아이를 키우는 주체로서 남성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이 엄마 지선(배우 엄지원)과 조선족 베이비시터 한매(배우 공효진), 그리고 시어머니(배우 길해연)만이 아이에 대해 신경을 쓰는 인물인데, 그나마도 시어머니는 아이를 키우는 것 자체보다 아이를 데리고 감으로써 얻게 되는 명분(대를 이을 자손)을 더 신경 쓰는 인물이다. 따라서 사실상 아이의 성장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인물은 워킹맘인 엄마와 베이비시터뿐이다.
극적 구성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영화 속의 여러 설정들이 과한 면이 없진 않지만(국내 조선족 사회에 대한 극단적 방식의 재현이라든지),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주체는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았을 많은 부분들이 보여 더욱 공감하며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극 중 한매가 아이를 데리고 사라지는 이유는 자신이 아이를 더 사랑한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매일 바빠 아픈 아이를 보러 제때 집에 가지도 못하는 친모보다 자신이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보호자로서 더 적합한 사람이라 믿었던 것이다. 한매는 사회로부터 버림받았지만 아이를 키우며 위로와 기쁨을 얻는 인물이었다.
지금까지 나도 여러 베이비시터들을 만났다. 그녀들은 한결같이 어딘가 슬픈 존재들이었다. 오늘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첫 번째 베이비시터였던 B 이모는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아들 둘을 홀로 키운 분이었다. 험한 일을 하시기에는 무척 세련된 외모를 갖고 계셨었는데, 알고 보니 젊은 시절엔 남편의 사업이 잘되어 서울의 가장 비싼 동네에서 사모님으로 지낸 시간이 길었던 분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부도 직후 세상을 떠나고, 홀로 아이 둘과 남겨진 이모는 이후 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고 했다. 어렵게 키운 아들 둘은 모두 장성하여 결혼도 했지만 이모님은 여전히 자신의 생활을 궁색하지 않게 꾸려나갈, 아들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 생활비가 필요했다.
아이를 대할 때의 그녀는 한없이 밝았지만, 나와 1:1로 대화를 할 때의 그녀는 무척 조심스럽고,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베이비시터 중 가장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았던 분이었다. 하지만 K는 그녀 덕분에 너무나 안정적으로 잘 자라고 있었고, 난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녀가 K를 계속해서 키워주길 바랐었다.
하지만 워킹맘에게 있어 베이비시터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존재다. 한시도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B 이모는 어느 날 갑자기 이별을 통보했다. 돌아가신 남편의 누나가 평생 자신을 많이 도와주신 분인데, 그분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병상에 눕게 되었다고 했다. 지방에 계신 분이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을 했기에, 퇴원을 할 때까지 자신이 간호를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정말 미안하지만 가봐야겠다고 하셨다.
남편이 떠났지만, 남편의 누나를 보필하러 떠나야 한다는 이모의 이야기를 처음엔 믿기가 무척 어려웠다. 하지만 그녀의 삶에서 결혼을 통해 구성된 인간관계를 빼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가족을 위한 희생을 택하는 것은, 남의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기쁨이자 보람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로 K를 돌봐준 것은 J 이모였다. J 이모는 수년 전 남편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큰 빚을 지게 되었는데, 이후로 남편은 경제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J 이모도 B 이모와 비슷하게, 베이비시터 일을 하기 전엔 평생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살았던, 전형적인 전업주부였다. 그런 그녀에게 쉽게 허락되는 일은 베이비시터나 가사도우미, 요양보호사 등의 돌봄과 관련된 노동이었고, 그나마 아이를 좋아하는 J이모는 베이비시터 일을 선택했다.
J 이모는 지금까지 내가 만난 베이비시터 중 단연 최고였다. 지금도 기회만 되면 다시 모시고 싶은 분이다. 선천적으로 밝았고, 긍정적이었으며, 친손주를 대하듯 K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었다. 얼마나 좋았냐면, 'J이모를 만나려고 B이모가 갑자기 떠났나'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난 또다시 꿈을 꾸었다. K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이모가 함께 해주면 좋겠다고.
하지만 또 다른 이별이 찾아왔다. 이번엔 나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커리어적 측면에선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K 엄마의 입장에서는 또다시 K를 돌봐줄 안심할 수 있는 이모를 구해야 하는 새로운 전쟁터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S이모는 지금껏 만난 베이비시터 이모들 중 가장 '평화로운' 삶을 살아온 분이었다. 직장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을 했고, 결혼과 동시에 당연하다 생각하며 일을 그만두었다. 계속 일을 이어간 남편은퇴직을 앞두고 있었고, 두 아들은 모두 장성하여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이모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이모를 부러워했다. 남편의 퇴직 후에도 안정적인 연금이 나올 테고, 아들들도 모두 이 어려운 시기에 취직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도 슬픈 여성이었다. 가족을 돌보기 위해 해야 했던 일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시간, 그녀는 공허했고 우울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을 때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시터 일을 시작했다.
간절히 좋은 이모를 찾던 바로 그때에 그녀가 선물처럼 나에게 나타났다. 만약심사위원이 K라면, 지금까지의 베이비시터 중 최고점은 S이모가 받을 것 같다. 그녀는 아이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봐주었고, 교육 철학이 확실했다. 오히려 나를 긴장시키는 부분도 있었다. 정말 선생님 같았다고 할까.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K가 밥을 못 먹고 있는 날도 많았고, 목욕을 하지 않고 있는 날도 많았다. 이유는 K가 더 놀고 싶어 해서였다. 일하고 돌아온 엄마 입장에선 답답할 수도 있지만, 아이에겐 최고의 놀이 친구가 생겼다. 덕분에 K는 외할머니 집에서 겪은 슬픔들을 모두 걷어내듯, 무척이나 밝아졌다.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난 또다시 꿈을 꾸었다. 이 학교에서 근무하는 동안엔 S 이모가 내 곁에 계속 있어주겠지 하고.
어느 방학, 그녀도 우리도 모두 기쁜 마음으로 각자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오래간만에 편하게 쉬던 휴가 둘째 날이모는차 사고를 당해 입원했고, 갑작스레 우릴 떠났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K를 돌봐주고 계시는 분은 Y 이모다. 가정교육과를 졸업한 그녀는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했다가 결혼을 하며 전업주부의 삶을 살았다. 결혼하자마자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Y이모는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가까이 사는 3명의 고모들은 신혼 초기부터 Y 이모의 집을 제집 드나들듯 했다. Y 이모에게 집은 안식처가 아닌 전쟁터였다. 그녀는 살기 위해 돈을 벌러 나갔다. 집에 있고 싶지 않아서 바깥일을 선택했다. 본인의 아이는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대신 남의 아이들을 돌봐주기 시작했다.
Y 이모는 지금까지 K와 나를 거쳐간 여러 이모들 중 일을 하는 솜씨나 아이를 케어하는 기술 등은 가장 서툰 편이다.하지만 고용자로서 Y 이모가 갖는 강점은 그녀의 심리적 공허감과 결핍감을 K가 많이 채워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경제적 필요와 일할 수 있는 시간대가 나의 상황과 잘 맞는다는 점이다.
결혼을 하며 그녀에게 삶의 위로가 되었던 유일한 존재는 하나 있는 아들이었는데, 이제 타지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남겨진 집엔 여전히 시어머니가 있고, 그녀에겐 집을 나설 명분이 필요하다. 그 명분은 그녀가 벌어오는 돈이다. 돈을 직접 버는 것은 그녀 자신에게도 중요한 일이다. 십여 년간 스스로 돈을 벌며 원하는 대로 쇼핑을 하던 그녀에게 안정적인 월급은 무척 중요한 삶의 요소가 되었다. 그녀는 남편에게서 생활비를 받는 것 자체가 '치사하고 비참하다'라고 표현했다.
치사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시어머니로부터의 탈출을 위해서, 그리고 아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그녀에겐 K를 돌보는 일이 필요하다. 덕분에 나는 오늘도 K를 맡기고 안심하고 일을 하러 나왔다.
"밤늦게까지 일해도 괜찮으신가요? 저는 평균적으로 8-9시쯤 퇴근합니다."
"상관없어요. 어차피 남편도 맨날 10시, 11시에 들어오는데요. 혼자 운동하러 가거나, 사람들이랑 술 마시고 들어오거든요. 저는 맨날 혼자 테레비나 보고 앉아있지요. 먼저 자거나..."
한 때 삶의 전부였던 가족들은 더 이상 그녀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평생의 절반 이상을 가족들의 돌보미로 살아온 그녀들에게 자식들의 성장은 곧 일자리의 소멸을 뜻했다. 기쁘면서도 슬픈 일이었다.
그녀들이 집에서 자식들을 키워내는 동안 남편들의 집 밖 네트워크는 더욱 공고해졌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독립해도 남편은 여전히 집 밖에서 바빴고, 그녀들을 기다리는 것은 만날 사람도 바쁘게 할 일도 없는 긴 시간뿐이었다.
어쩌면 베이비시터들에게 그런 공통점을 발견한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워킹맘이 베이비시터를 필요로 하는 시간에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가정이나 다른 일로부터의 구속이 많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을 선호하는 시장이다 보니, 기혼여성들이 몰린다. 결혼은 했지만, 또는 아이는 키워봤지만 현재는 시간이 자유로운 여성들이 주요 그룹인 것이다.
자신의 집에서 설 곳이나 삶의 의미를 더 이상 찾지 못하는 많은 여성들이 남의 아이를 돌보며 자신에 대한 위로, 그리고 삶의 보람을 갈구하고 있었다. 슬픈 그녀들이 나의 아이를, 우리의 아이들을 키워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