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박 Dec 10. 2019

시어머니에게 며느리의 일이란

언제든 그만두어도 상관없는 것

https://images.app.goo.gl/wsZtqUAywANdgeaMA


지난 방학, 오래간만에 만난 시어머니와 둘이서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시어머니는 70대지만 여전히 소녀 같다. 평생을 남편과 세 아들을 위해 살아온, 70대인 지금도 여전히 남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절대 토를 달지 않는 순종적 삶을 살아오신 분이다.


그런 그녀가 수줍게 웃으며 말을 꺼낸다.


"저기.. 내가 부탁을 좀 하려고 왔다...."

"네, 어머니. 말씀하세요~"

"아니 저기.. 있잖아.. 둘째를 좀 부탁하려고...."


어머니의 부탁은 정확히 "일을 그만두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둘째를 가지라"는 것이었다. 돈이 부족하지도 않은데 굳이 주말부부를 하며 일을 할 필요가 없고, 둘째도 가져야 한다는 이유였다.


시부모님은 우리 부부가 둘째를 갖기를 오래도록 바라오셨다. 하지만 그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신 적은 크게 없었다.


이번엔 달랐다. 매우 구체적이고, 당당했다. 아마도 그렇게 태도가 바뀌신 것은 최근 아버님이 투자 수익을 크게 거두게 되신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며느리가 돈을 벌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으니, 그만두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어렵게 박사학위를 딴 뒤 한동안 방황하다 겨우 자리 잡은 첫 교수직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꾸준히 경력을 쌓아나가야 살아남을 수 있는,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시댁과의 관계 속에서 며느리의 일은 '언제든 그만두어도 되는' 정도의 가치를 지녔을 뿐이었다.


시골에서 외동으로 자란 시어머니에겐 배다른 오빠가 한 분 계신다. 아들에게만 물려줄 수 있는 집안의 유산을 대신 받아주어야 할 남자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시어머니는 그 집의 정당한 상속자가 되지 못했다. 지금도 어머니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그분을 친오빠처럼 섬기신다. 어머님이 받아야 할 유산은 지금까지도 배다른 오라버니의 명의로 되어 있다. '남자 없는 집안'에 대한 사회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자랐을 시어머니에게 결혼 후 생긴 세 아들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자 든든함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며느리의 직업이나 사회적 역할, 급여 수준, 정년 보장 가능성 따위는 중요치 않을 것이다. 그저 며느리 본연의 역할, 남편을 돕고 충분한 자손을 생산해줄 수 있는지 여부가 우선일 뿐. 


이게 2019년을 살아가는, 한 워킹맘 며느리의 현실이다.


어차피 우리 부부는 둘째를 가질 생각이 없고, 시댁의 고루한 말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쿨하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지 않는 걸 보니, 그날의 상황이 계속해서 생각이 나는 걸 보니, 그때 받은 상처가 꽤 깊은 것 같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과 소명의 가치가 한순간에 땅바닥에 패대기 쳐지는 최초의 경험이었다.


이제 명절이 고통스럽다. 일이 있기 전까지는 명절에 해야 하는 여러 가지 '며느라기'의 역할을 재미 삼아 기꺼이 수행했었는데, 그 이후로는 도저히 그래 지지 않았다. 시댁에 머무는 시간 내내 마음이 복잡하고 우울했다. 나의 시댁도 여느 시댁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확인해서일 것이다.


이런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 나도 언젠가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사회에서 정상 가족의 일원으로서 사는 것을, 며느리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게 되는 날이 와버릴지도. 예전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이 잦아지고 있다.


곧 다시 명절이다. 벌써부터 소화가 되지 않는 기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들은 슬픈 여자들이 키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