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할머니1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책을 빌렸다.
어느 모임에서 내가 사위랑 단둘이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연히 이 책 제목을 듣게 되었다. 그림책 내용을 바탕으로 작가의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책이었다.
1부를 채 읽기도 전에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뿐만 아니라 이 책에 나온 동화책도 모두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뒤에 장별로 수록된 책이 생각보다 많았다. 일단 1장에 수록된 책부터 다 주문을 했다. 그림책 가격은 왜 이리 비싼지 웬만하면 중고책을 사지 않는데 절반 정도는 중고로 구매를 했다.
올해 초 이사를 하면서 그동안 책꽂이에 꽃혀있던 절반 정도의 책을 팔고 없애면서 당분간은 책을 사지 말고 빌려읽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한번 읽고 말 수 있는 그림책을 내가 산 이유는 손녀와 함께 책을 읽고 싶어서였다.
고등학교때던가, 아직 결혼을 생각해본적도 없던 시절에 어떤 책을 읽으면서(난 책을 잘 안 읽는 학생이었다) 이 책을 나중에 딸이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같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딸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첫째 아이로 딸을 낳았다.
그 장면과 오버랩되듯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를 읽으며 이 책은 여기에 나온 동화책을 읽고 읽어야 더 의미가 와 닿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야지 했는데 없는 동화책이 있어서 사려고 검색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동화책을 사서 나중에 딸이 임신했을때도 읽고 손녀가 태어나서 읽어도 좋겠네."
딸이 태어났을 때 멋모르고 동화책 셋트를 샀던 기억이 떠올랐다. 글씨를 몰라도 그림만 보여줘도 교육효과가 있다는 상술에 속아 넘어가 그 당시로는 꽤 비싸게 여러 셋트를 한꺼번에 구입했지만 판매원의 말대로 딸은 비용이상으로 동화책을 몇년동안 닳도록 읽었다. 그런 경험때문인지 동화책을 빌려 읽는 것보다는 구매해서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화책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 지금부터 한권 두권 꾸준히 모아서 손녀에게 선물을 해야지. 어느 새 내 생각은 손녀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벌써 할머니가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딸이 임신도 하지 않았고 당연히 손녀가- 첫째 손주가 손녀일지 손자일지도 모르면서- 언제 태어날지도 모르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이 시점부터 나는 어쩌면 할머니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책이 도착했다는 문자 메시지가 쇄도했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책을 주문했나 싶다가도 마음가는대로 주문을 했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어싶어'의 첫 장은 아이도 태어날 용기를 가지고 뱃속에서 나온다는 이야기였다. 책에 수록된 두 권의 동화책과 책 속의 글을 읽으면서 손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내 생각은 자연스럽게 '손녀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을 임신했을 때는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태교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제 할머니가 될 준비를 하는 나는 태어날지도 알 수 없는 생명에게 편지를 쓰려고 한다. 마음이 쓰고 싶다고 하니 그냥 써본다. 준비도 없이 엄마가 되어 실수투성이였던 지난날의 모습을 반추하며 나는 멋진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아무리 할머니가 잘 키워줬어도 결국은 부모에게로 마음을 돌리는 손주들에 대한 배신감을 나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없는 애정으로 손주들에게 마음을 보내는 그런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내 멋대로 내 맘대로 아이같이 시샘하며 손주와 같이 떼쓰는 할머니가 될까? 딸이나 사위나 손주 눈치보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는 이상한 할머니가 될까?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길이라 알수 없지만 내 마음이 끌리는대로 나는 이렇게 글을 써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