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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티처 Jul 31. 2021

잡(雜) 생각? 잡(job) 생각!

낭만 티처의 잡생각 2

     

       

잡생각 끄집어내기

내 기억으로 중학교 어느 시점부터 수업시간에 졸음과 더불어 잡념이 스며들었다. 선생님의 중요한 가르침을 놓쳤고 그럴 때면 나만 뒤처진 것 같고 성적도 떨어질 것만 같아 자존감이 점점 바닥으로 떨어졌다. 잡생각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2002년에 ‘5차원 전면교육’에 관한 연수를 받으면서이다. 62시간 동안 연수받으며 ‘아이들의 머릿속에 있는 잡생각이 빠져나와야만 자기 생각이 나온다.’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연수 이후 나는 아이들에게 수업 시작할 때 노트에 날짜를 쓰게 하고 지금 기분이 어떤지 쓰라고 했다. 꿀꿀하다, 잠이 온다, 수업하기 싫다 등 뭐든지 지금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을 써보라고 했고 수업을 마치고 나서는 오늘 배운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노트에 다시 쓰게 했다. 각 단원이 끝나면 배운 내용을 글이든 일기든 기사든 만화든 시든 그림이든 형식과 상관없이 ‘써오라’는 숙제를 냈다. 


교과교사나 담임교사로서 감상문 숙제를 내줄 때면 꼭 20줄 이상 쓰라는 제한 조건을 걸었다. 학기말마다 실시했던 교사 평가서에서조차 이런 조건은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정 쓸 말이 없으면 같은 말이라도 반복해서 줄을 채우라고 말했는데, 결과는 참으로 놀라웠다. 생각하기와 글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서두 부분에서는 정말 형식적이고 영혼 없는 말들을 늘어놓다가도 끝부분쯤 가서는 ‘임팩트’ 있는 자신의 언어를 표현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국어교사도 아닌 내가 아이들을 너무 괴롭히는 것은 아닌가 갈등했지만, 이런 결과를 보다 보니 계속해서 아이들을 귀찮게 만들게 되었다.       


감쪽같이 사라지는 잡생각의 언어

잡생각이라는 게 참 이상하다. 한번 잡생각이 찾아오면 줄어들지 않고 계속해서 늘어난다. 이 녀석은 허락도 없이 어느 순간 불쑥 찾아와서 머릿속을 휘젓고 제 멋대로 나가버린다. 책을 읽다가도, TV를 보다가도, 수업시간에도, 아이들과 상담할 때나 동료 교사나 학부모와 이야기할 때도… 예고 없이 들어와서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나도 모르게 잡생각이 들어와 멍 때리고 있다가, 내가 멍 때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정신을 차리는 순간 잡생각은 쓸모없이 사라졌다. 


요즈음 나는 혼자 있는 시간과 운전하는 시간이 많다. 그럴 땐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음악을 듣는다. 처음엔 그렇게 시작하다가 어느 순간 잡생각 속에 빠져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은 그런 나를 발견하고도 계속해서 잡생각을 내버려 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기발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와, 이건 어디다 적어놓아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찰나 그 생각은 다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기억해내려 해도 그때 그 순간 생각했던 잡생각의 언어는 사라지고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에휴… 정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잡생각은 우연히 나에게 흘러들어온 것일까

내가 의도해서 하는 생각이 아니니, 잡생각이 언제 어디에서 만들어져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에 나오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런데 이런 잡생각에 빠져있다 보니 새로운 잡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만의 생각을 하면서 잡생각도 늘어나는구나, 이 잡다한 생각들 속에 어느새 나만의 생각이 생겨났구나. 


때로 나도 놀라는 나만의 생각은 저절로,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을 두고 오랜 시간 고민하고 멍 때리고 좌충우돌하면서 시간을 투자한 후에야 나만의 생각이 만들어지는 듯하다. 아이들의 과제를 통해서도 느꼈었지만 실제로 내가 무언가를 깊이 탐색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지 못한 것을 발견한다.


예를 들면, 나는 영화나 연극, 뮤지컬, 전시회를 보고 나면 글을 쓴다. 감동받은 대사를 하나 쓰고 내 생각을 쓴다. 또 다른 대사를 하나 쓰고 내 생각을 또 하나 써본다. 쓰다 보면 내가 펜을 잡기 전에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이야기가 써지기 시작한다. 그런 후에 다른 사람이 쓴 리뷰도 읽어본다. 나와는 다른 관점들의 글을 읽으면 또 다른 나의 생각이 나온다. 다시 글로 써본다. 희한한 것은 글을 쓰면 처음 쓰려고 했던 생각 이외의 것들이 써진다는 것이다. 


이 생각들은 깔때기처럼 어느 순간 내 잡(job)인 수업과 교육에 연결이 된다. 바로바로 연결되는 것보다는 나도 모르게 잊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수업을 할 때 갑자기 떠올라 자료를 찾아 연결하고, 어떤 날은 운전을 하다가 떠올라 그것을 수업 도구로 만들고, 어떤 날은 내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신념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통찰하게 해 준다. 그렇게 잡(雜) 생각은 잡(job) 생각으로 변하게 된다.      


내가 주체로 서있는 시간

글로 써야만 잡(雜) 생각이 영글어져서 잡(job) 생각으로 변화되는 것만은 아니다. 글을 쓴 것은 흔적으로 남아서 그것이 어떻게 새로운 생각으로 변화되었는지를 알 뿐이고 다른 것들은 나도 모르게 우연히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자연에 나가 생각 없이 걷다가 꽃이나 바람, 구름, 나무, 강, 사람을 우연히 마주할 때 스쳐 지나가듯 잡(雜) 생각이 생겨난다. 이렇게 쓰다 보니 또 하나의 예가 생각난다. 언젠가 초겨울에 걸어서 학교 밖을 나간 적이 있다. mp3를 꽂고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데 갑자기 귀에서 바람소리가 들렸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소리였다. 효과음향이 아닌 자연의 바람소리가 내 귀에 들린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당연히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처음 느끼는 그 기분이라니...


매일 똑같은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사실 하루하루는 다른 삶이고 그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멈추어 생각하지 않으면 그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한마디로 ‘멍 때리고 의미 없이 보내는, 헛되다고 느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걸 통해서 무엇을 얻어야지, 이걸 하면 무언가를 얻을지도 몰라하면서 목적을 가지고 보내는 시간이 아닌 아무 생각 없는 헛헛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속에 생각지도 못한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기에 아이들에게도 노는 시간이 필요하고 자연 속에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쓰잘머리 없이 낭비하는 시간 같아 보여도 내가 주체로 선 시간이라면 어느 날엔가 불현듯, 자연스럽게 생각이 나에게 찾아온다.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내 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미 남들이 했던 이야기가 아닌지 의심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세상의 글들이란 누군가의 글과 생각을 기초로 해서 태어난 이야기니 말이다. 의미도 모른 채로 누군가를 흉내 낸 말이 아니라 내 속에서 경험하고 해석한 것이라면 나만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 잡(雜) 생각이 성장하여 나만의 잡(job) 생각이 된다면 나는 누구의 수업이 아닌, 나만의 온전한 수업을 하게 될 것이다.      


낭만적인 잡생각

이런 글을 읽을 시간에 교육과 관련된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해보라. 교사라면 무엇을 하든지 교육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과 관련된 일과 공간에 한정되어 있다면 그 이상을 뛰어넘기 어렵다.


이미 가지고 있는,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그 무엇, 그 잡(雜) 생각이 싹이 나고 열매를 맺도록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투자해보라. 헛손질하는 그 시간이 나를 빚는 시간이 될지도 모르니. 


이 경험을 한다면 아이들이 헛되이 보내고 있다고 느껴지는 시간들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 알 것이고 자신이 누구인지, 부모와 학교로부터 벗어나 무엇을 할지 찾기 위해 ‘지랄’을 떨고 있는 아이들을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이 그 아이들에게는 든든한 ‘백’이 되어 언젠가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쓰고 보니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참 낭만적인 잡생각으로 읽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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