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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양 Jun 14. 2021

부부의 슬기로운 효도 생활



부부의 슬기로운 효도 생활 

 우리는 누구나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교우관계에서 우리는 악역이 아닌 

착한 역할을 맡고 싶어 한다. 서로의 민낯을 보고 살아가는 부부 관계에서도 우리는 착한 사람인 척 연기를 하며 살아간다. 서로에겐 못된 사람이어도 상관없을지언정 서로의 부모님에게만큼은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 무뚝뚝한 경상도 딸 

나는 참 무뚝뚝하고 애교가 없는 딸이다. 

'경상도 출신'이라서 걸걸한 사투리에 선머슴아 같은 성격이 이라서 엄마와 팔짱도 껴본 적이 없고 

아빠와 손을 잡아 본 적도 거의 없다. 나는 경상도 사투리로 종종 애정을 표현하곤 하는데


 '밥 무쓰요? 아직 안 무쓰요! 빨리 무요!' 

(밥 먹었어요? 아직 안 먹었다고요? 빨리 드세요~ ^^)


옆에서 듣던 남편은


'무슨 일 있어? 왜 싸워?' 

라고 물어본다.


이건 분명 부모님과 딸의 정이 넘치는 안부 인사였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걸걸한 경상도 딸도 시어머님 앞에선 착한 사람의 탈을 쓴 여우가 된다. 

'어머니~~~ 밥 드셨어요~~~~? 왜 아직 안 드셨어요~~~ 빨리 드셔야죠~~~'


도레미파솔라~ 라의 음으로 콧소리를 한껏 뿜어내며 말한다.


옆에서 듣던 남편은

'코 안 풀었냐? 코 풀고 와'


사실, 시어머님한테도 원래 하던 스타일대로 

'어머니, 밥 드셨어요? 얼른 드세요!"

하면 되는데 나는 언제부터인가 '착하고 애교 있는 며느리'의 역할로 낙점되었고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진짜 '내' 모습을 버리고 말이다. 


대체 왜 그럴까? 그 답은 간단했다.

나는 그냥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것은 인간이 본능과도 같았다. 


# 착한 며느리 옆에 착한 사위가 있었다

결혼 2년 차 때, 참 많은 고민을 했다.

나는 왜 '나 다움'을 버리고 어머님이 원하는 '착하고 애교 있는 며느리'가 되었을까?

시댁에 갈 때 빈손으로 가도 되는데 굳이 음식을 하겠다고, 굳이 뭘 사가겠다고 

내가 먼저 얘기해놓고, 내가 스스로 선택해놓고 왜 힘들다고 남편한테 투정 부릴까?


그래서 '착하고 애교 있는 며느리' 역할을 버리려고 했다. 

걸걸하고 털털한 '나'로 돌아오려고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어머님에게 잘하는 며느리가 될수록 

우리 남편도 우리 집에 잘하는 사위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남편은 쉬는 날만 되면 게임을 하고 거실에 누워서 뒹굴뒹굴 굴러다닌다. (내가 큰 먼지 덩어리라고 부른다) 세상만사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집에 꼬박꼬박 전화를 하고 어쩌다 휴가가 생기는 날이면 우리 집에 내려가자고 하고 우리 부모님이 서울에 오면 나 대신 부모님을 데리고 서울 구경을 시켜주기도 했다. 


한 번은 내가 남편한테 말했다.

'사과 남편아. 우리 부모님한테 살뜰하게 잘해줘서 고마워'


남편이 말했다.

'오렌지야, 네가 우리 부모님한테 잘해주는 게 늘 고마워.

그래서 나도 잘하려고 노력하는 거야'


그랬다! 

아무 생각 없는 먼지 덩어린인 줄 알았던 남편은 내가 시댁에 잘하려고 노력하고, 

착한 며느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본인도 착한 사위가 되어야겠다고, 장모님 장인어른에게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 슬기로운 효도란?

좋은 게 다 좋은 거야~라는 말이 있다.


'내가 어머님, 아버님한테 올해 이만큼 했으니 남편도 우리 집에 이만큼 하겠지?

내가 어머님, 아버님 생신 밥을 차려드렸으니 남편도 우리 부모님 생신 밥을 차려야 해!!"


기브 앤 테이크라는 생각으로 매사에 덤비면 '선의'는 사라지고 '악바리'만 남는다. 


'너는 왜 내가 해준만큼 안 해?! 내가 이만큼 잘하는 걸 왜 몰라!?'


대가를 바라고, 받을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 건 슬기로운 효도가 아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내가 좋아서, 그냥 내가 잘해드리고 싶어서 선의를 베푼다면 

그것이 슬기로운 효도라고 생각한다. 


슬기로운 효도라고 해서 안마 의자를 사드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 전화를 하고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진심을 다해서 시댁 어른들을

'내 부모님'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슬기로운 효도이고 

내가 그렇게 마음을 먹고 행동하는 순간, 

남편도 나와 같이 바뀌게 되더라


(왜 꼭 내가 먼저 잘해줘야 하나?!라고 억울해하지 말고

좀 더 그릇이 넓은 사람이 아량을 베풀어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다들 슬기롭게 효도해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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