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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양 Jul 07. 2021

돌이켜보면 나는 평범했다

결국엔 방송작가



돌이켜보면 나는 그렇게 잘하는, 뛰어난 작가가 아니었다. 

방송 작가라고 하면 대단한, 이력이 화려한 작가들이 많던데

나는 대단하지도, 이력이 화려하지도 않다. 


남들과 똑같이 다큐멘터리로 막내 작가를 시작했다.

데일리 아침 방송을 거쳐 서브 작가로 입봉하고

위클리 매거진, 시사 르포, 데일리 아침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 현장 버라이어티, 건강 쇼 프로그램,

데일리 저녁 방송 등의 과정을 차례차례 밟으며

어느새 9년 차 방송작가가 되었다. 


이쯤이면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좀 더 열심히 해서 메인 작가가 될 것이냐,

아니면 더 늦기 전에 다른 일을 택할 것이냐.


방송작가라는 직업은 늘 고되고 힘들었다.

늘 밤을 새우고 늘 아이템을 찾고 

늘 전화기를 붙들고 살고 

아침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시시때때로 팀장, 메인 작가, 피디한테 연락이 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이라이트는 

촬영 전날 갑자기 전화 와서

'죄송해요, 촬영 못하겠어요'라고 폭탄을 던지는 사례자들.


스트레스가 심할 땐 핸드폰 화면에 불빛만 들어와도

깜짝깜짝 놀라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 


매주 새로운 아이템으로 방송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매주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고, 새로운 사람을 섭외하고

새로운 자막, 새로운 내레이션, 새로운 편집을 한다. 

다가오는 매주 매주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아이템이 안 잡히거나 사례자 섭외가 안 되면

고층빌딩 옥상에 올라가서 '그냥 뛰어내릴까?'

지나가는 차를 보면 '그냥 차에 받힐까?'

대교 위를 걷다가 '강에 뛰어들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점점 당연해졌다.


내 정신이 피폐해지면서 

몸도 함께 피폐해졌다. 


몸속 곳곳에 염증이 생겼고 입원을 했고

평생 치료해야 하는 병이 생겼다. 


건강 쇼 프로그램을 했는데

왜 나는 건강하지 못한 걸까,

왜 나는 맘 편히 잠들지 못하는 걸까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9년 차 방송작가직을 던졌다. 

그래도 배운 것은 도둑질뿐이라고

방송 작가는 던졌지만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을 하면서

어찌 보면 또 다른 방송작가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결국엔 방송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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