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남편의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

by 오렌지양



우리는 어느덧 8년 차 부부다. 2년 정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으니 도합 10년은 함께 지낸 셈이다. 우리는 연애할 때 참 많이 싸우고 결혼 초에도 참 많이 싸웠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은 싸울 일도, 싸울 힘도 없을 줄 알았다. 그랬는데 어느 날 남편의 머리에서 뿔이 자란 걸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새끼 염소 뿔처럼 작은 모양이었지만 점점점 커지더니 코뿔소 뿔 못지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뿔이 되었다. 대체 뭐가 그렇게 문제였나 싶어서 물어봤다.


"여보, 요즘 왜 그래? 왜 그렇게 입이 댓발 나와있어?"

"....."

"내가 뭐 기분 상하게 했어?"

"... 자기 때문이잖아!"

"내가 왜?"

"나한테 강요 좀 하지 마! 압박도 하지 마! 제발 잔소리 좀 그만해!"


이 일의 발단은 며칠 전 택배 한 박스로부터 시작되었다. 남편이 생일 선물로 신발을 받았는데, 택배로 받다 보니 신발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7일 이내에 교환을 신청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택배가 도착하자마자 남편에게 '여보, 신발 사이즈 맞는지 한 번 신어봐'라고 말했다. 그런데 요 며칠 일이 많이 힘들어서 지쳐졌던 남편은 '응, 알았어~'라고 대답만 하고 소파에 누워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남편에게 '여보, 신발 신어봤어?'라고 또 물어봤고 남편은 피곤에 절여있는 상태였기에 소파에 누운 상태로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 날, 어떻게 됐을 것 같은가? 신발 택배 박스가 그~~대로 놓여 있었고 결국 나는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여보! 신발 좀 신어보라니까 왜 안 신어봐?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 볼 시간은 있고 이거 잠깐 신어 볼 시간은 없어? 신발 사이즈가 안 맞으면 교환해야 한다니까, 제발 좀 신어봐!"


그러자 남편이 대뜸 화를 냈다.


"내가 알아서 한다고! 제발 날 좀 압박하고 강요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그리고선 안방에 들어가서 문을 쾅 닫았다. 그때부터였다. 남편의 머리에 뿔이 세차게 자라나기 시작한 순간이. 나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 딴에는 남편이 피곤하고 바쁘니까 챙겨준답시고 알려준 건데, 저 좋으라고 알려준 건데 왜 나한테 화를 내지?라고 말이다.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이 지나고 남편은 머리에 커다란 뿔을 단 채로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똑같이 화를 내고 대응하기보단 '왜 남편이 화가 났을까?'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남편이 퇴근하고 나서 말을 걸었다.


"여보, 미안해. 여보가 알아서 한다고 했는데 내가 몇 번이고 하라고 잔소리하고 들들 볶아서 스트레스받았지? 미안해"


남편은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뿔난 얼굴을 잠시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


"모든 걸 네 스케쥴에 맞추지 마 제발!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으면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둬. 나도 신발 신어야 하는 거 알아. 근데 너무 피곤하니까 아무것도 못 하겠는 걸 어떡해. 근데 너는 계속 나한테 하라고 강요하잖아. 왜 네 스케줄이 맞춰서 내가 움직여야 해? 왜 네가 하라는 건 당장 해야 해? 나도 의견이 있고 생각이 있어. 가뜩이나 회사 일 때문에 피곤하고 힘든데 너까지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면 나는 어디서 편하게 쉴 수 있어? 나는 어디서 숨을 쉬어?"


속사포처럼 뱉어내는 남편의 말을 가만히 들어줬다. 그리고선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담아 꼭 안아줬다. 정말 진심이었다. 집에 와서 편하게 누워서 좀 쉬고 싶은데 아내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계속 잔소리를 퍼부어대고 그것도 모자라 '했어? 언제 해?'라고 전방 압박수비를 계속 해 오니 남편은 숨통이 조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리라. 제일 편해야 하는 공간인 집에서마저 숨통이 조이니 펑하고 폭발해 버린 것이다. 남편은 화가 다 풀린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뭘 잘못했는 스스로 고찰해 보고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주려고 했다는 점에 조금을 마음을 풀은 것 같았다. 그리고 코뿔소 뿔처럼 거대했던 뿔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우리는 참 대화를 많이 하는 부부다. 부부싸움의 원인 중 하나가 '대화가 부족한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오히려 대화가 너무 많다 보면 상대방이 편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스케줄에 맞춰서 내가 원하는 모양새로 바꾸려고 한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딱 맞다. 과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한 것이다.


그러니 꼭 기억하자. 남편이 하겠다고 했으며 그 말을 믿고 기다려주는 걸로. 내가 생각한 정답대로 움직이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남편이 책임질 일이지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신발 사이즈가 안 맞아서 교환을 못하게 되면 당근에 중고거래로 팔면 되는 거고 그 상황은 남편이 책임지면 되는 것이다. 남편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답답해도 참을 인사를 마음 속에 새기고 딱 두 번까지만 말하고 기다려 주자. 그런데도 안 하면? 그냥 내가 하면 되는 거다. 자존심이 상하는가? 지는 것 같은가? 괜찮다. 우린 가족인데 뭐. 평생 함께 살아야 하는 동반자인데 뭐. 대신 해주는게 별 대수인가.


그러니 퇴근하고 지쳐있는 남편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이건 왜 안 했냐' 잔소리 무한리필을 퍼붓지 말자. 그러다 보면 남편의 머리에 자란 뿔이 어느 날 뿅 하고 뽑혀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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