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을 되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by 오렌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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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넌 아직 여기다



초심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에 먹은 마음' 이라는 뜻으로 내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처음에 가졌던 순수한 마음과 열정을 나타내는 말이다. 동시에 어떠한 정신을 나타내기도 한다.


나는 25살에 처음 사회에 뛰어들었다. 연고도 없는 서울에 혼자 올라와 자취방에서 살며 사회의 쓴맛을 제대로 느끼며 성장해갔다. 그리고 5년 뒤, 제법 내가 일하는 업계에서 조금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연차가 되었다. 더는 막내가 아니었기에 날이 밝을 때 퇴근도 할 수 있었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쉴 수 있었다. 막내 시절에는 매일 밤 10시, 11시에 퇴근하고 2~3주에 하루 정도만 쉴 수 있는 극한의 스케쥴이었다. 제법 연차가 차고 날이갈수록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듣다보니, 점점 콧대가 높아졌고 소위 말하는 '어깨 뽕'이 가득차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예전만큼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았다. 대충만 해도 어느정도의 결과물이 나왔기 때문에 옛날만큼 100% 최선을 다해서 일하지 않았다. '나는 대충해도 잘 하니까~ 난 조금만 해도 일 잘한다고 칭찬을 받으니까~'라는 마인드에 젖어들 때였다.


아빠와 통화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딸~ 회사 잘 다니고 있어? 일은 힘들지 않아?"

"일이야 다 똑같죠 뭐~ 그래도 이제 할만해요!"

"그래도 항상 초심을 잃지말고 겸손하게 최선을 다해서 일해야 한다"

"네~ 알아서 잘 하고 있어요"


그러다 문득,


"저번주에 하던 일은 잘 마무리 했고?"

"그거 그냥 대충 잘 마무리 됐어요"


나도 모르게 건방진 태도를 아빠에게 들키고 말았다. '대충, 그냥, 잘' 이런 말은 내가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절대 하지 않는 말들이었다. 나의 이런 태도를 알아 챈 것일까, 아빠는 이런 말을 했다.


"딸아, 너는 아직 여기야"

"네?"

"너는 아직 여기라고. 너는 아직 일을 처음 시작했던 그 순간에 있어. 지금은 네가 높은 곳에 올라간 것 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너는 아직도 여기야"


그때 당시에는 그게 무슨 말인가 했다, 그냥 부모님의 흔한 잔소리 같기도 했다. 뭐래, 아빠가 뭘 안다고! 아빠가 얼마나 잘났길래!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몇 개월이 지났을까, 한 선배가 나를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


"너 요즘 좀 건방진 것 같아. 네가 일을 잘하는 건 알겠는데 그건 일에서 끝나야지, 왜 태도까지 건방져? 너 앞으로 그렇게 일하면 앞으로 1년 안에 넌 끝나. 너랑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어질 거야. 당장 태도부터 고쳐"


내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가 나에게 대차게 쓴소리를 한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작 5년차인 내가 얼마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건방지게 일을 했으면 선배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나의 행적을 돌아보니 나 잘난맛에 주변 동료들을 무시하기도 했고 일도 대충대충~ 설렁설렁~하며 예전만큼 꼼꼼하게 일을 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때 아빠의 말이 떠올랐다.


"너는 아직 여기다"


그랬다. 높은 곳에 올라왔다고 자부했지만 나는 여전히 출발선에 있었고, 일을 잘한다고 거들먹거렸지만 나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고, 중요한 건 내가 이렇게 건방지게 구는 동안 내 동료들이 서서히 내 곁을 떠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태도와 정신을 모두 고쳐먹었다. 막내 때 이후로 하지 않았던 모니터링을 다시 시작하고 필사를 하고 독서를 하고 논평을 읽고 서평을 읽었다. 내 직업과 관련되어 성장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 찾아나서서 했다. 그리고 항상 동료를 존중하고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비판하지 않았다.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라며 늘 새로운 관점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성실하려고 노력했다. 약속시간을 항상 지키고 정해진 기한 내에 업무를 수행하려고 노력했고 게을러지고 건방져지지 않도록 늘 채찍질하고 스스로를 독려했다.


가끔 건방진 생각이 들 때면 아빠의 말을 떠올린다. '너는 아직 여기다, 나는 아직 여기다... ' 그래, 나는 아직 이곳, 초심의 출발선이다. 나는 아직도 배울 것이 많고 아직도 부족하다. 그러니 건방지게 굴지 말고 항상 낮은 자세로 배우며 성장하자. 내가 아직 여기라는 것은, 나는 아직도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뜻이고 앞으로도 성장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가끔 스스로 자만심에 빠져들 때쯤 한 번씩 소리내어 말해보자


"나는 아직 여기다. 나는 아직 여기, 초심의 출발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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