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버티는 것만큼은 자신 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라 딸아
최근 국내 영화 <어쩔수가없다> 가 화제다. 박찬욱 감독, 이병현 배우라는 믿고 보는 조합으로 한창 인기몰이인데, 해당 영화의 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 '만수(이병헌)'이 회사로부터 돌연 해고 통보를 받으면서 생겨나는 에피소드를 다뤘다고 한다. 나는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우리 아빠가 생각났다. 회사의 경영난으로 인력을 감축해야 할 시기가 되자, 회사는 가장 먼저 회사를 위해 오랫동안 일했던 50대 중후반 구성원들에게 칼을 빼들었다. 그리고 그 칼의 끝은 우리 아빠에게로 향했다. 당시 정년퇴직이 64세 즈음이었는데 회사는 그 시기를 앞둔 사람들에게 자진 퇴사를 권하고 응하지 않으면 회사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하고 업무를 주지 않았다.
아빠는 그 시기를 겪으면서 부쩍 생기를 잃어갔다. 늘 껄껄웃음이 만발이던 아빠는 퇴근 후 산을 올랐고 주말이면 1박 2일 산행을 떠났다. 현실을 떠나 복잡한 마음을 산속에서 달랜 것이다.
그때 아빠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빠는 버티는 것만큼은 자신 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라 딸아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아빠가 잘 버티고 있을게"
나는 그때 사회초년생이라서 아빠가 말하는 '버티는 것'에 숨겨진 의미가 몰랐다. 되려 회사에서 버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다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회사를 다니지 않는가? 출근하기 싫어~ 하면서도 월급을 받고 그걸로 또 한 달을 버티지 않는가? 다들 버티고 나도 버티는데 아빠도 당연히 버텨야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의 '버티는 것'은 그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생존과도 같은 일이었다. 아빠의 '버티는 것'은 아빠를 내보내려고 하는 자들의 멸시와 천대를 버티면서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견뎌내는 것이었다.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역 같았을까. 회사로 출근하는 발걸음이 얼마나 천근만근이었을까.
30대 후반이 되고 가정이 생기고 나니, 아빠의 '버틴다'라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아! 버틴다는 것은 그냥 회사에서 자리를 지키고 하기 싫은데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구나. 버틴 다는 것은 우리 가정의 생계를 위해서, 살기 위해서 버티는 것이구나'라고 말이다. 당시 아빠가 나에게 했던 '아빠가 버텨 볼게!'라는 말은 아빠의 다짐이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가 볼게', '아빠가 어떻게든 힘내볼게'라는 스스로의 다짐과도 같은 말이었던 것이다.
만약 가족 중 누군가가 회사에서 버텨내고 있다면,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다 그렇게 살아, 열심히 다녀'
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힘들면 잠깐 쉬어가자, 힘들면 잠깐 내려놔도 돼'
라고 할 것인가
자세히 귀 기울여보면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라는 말은 '나 못 버티겠어, 나 살려줘'와 같은 절규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절박한 심정으로 내뱉는 말이다. 그러니 그들에게는'괜찮아, 힘내자'라는 위로 대신, '힘들면 쉬어가도 괜찮아'라는 지지와 도움이 절실할 것이다.
나는 아빠에게
'아빠 그냥 그만두고 나오세요! 제가 열심히 돈 벌게요. 아빠는 이제부터 편하게 쉬세요!'
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된다. 비록 말뿐이라도, 아빠의 짐을 덜어줄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줄걸. 이제껏 가족을 위해 고생하셨으니 이제는 쉬어도 된다고 말해줄걸. 아빠를 진심으로 지지해 주고 도와줄걸... 하고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직장에서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우리 부모님이, 나의 배우자가 그런 상황이라면 이 말을 꼭 기억하자. "직장에서 버티는 것은 생존과도 같다" 그러니, 그 고통과 힘듦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따뜻한 손길로 지지와 도움을 건네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