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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무라면 Sep 16. 2018

홱 돌아누운 그 남자,
더위에 굴복한 그 여자

연상연하 커플의 (살벌한?) 부부싸움


이제야 결혼의 참맛을 느낀다.
서로 다른 두 우주가 만나 하나가 되었는데,
어찌 균열과 폭발이 없겠는가.
싸우면 싸울수록 그녀가 더 사랑스럽고,
그녀를 알아가는 매 순간들이 행복하다.






   최근 들어 우리 부부는 자주 싸운다.


   나와 아내는 주말부부다. 3개월 전까지는 순수 주말부부였지만, 지금은 반(半) 주말부부다. 아내는 부산에, 나는 서울에. 학업을 더 하고자, 직장을 나온 뒤 대부분의 시간을 부산에서 보내고 있으며, 일이 있거나, 지인을 만날 때만 서울에 올라간다. 그 때문에 보통 2주에 한 번 약 2~3일 동안 떨어져 지낸다.


   순수한 주말부부였을 때에 우린 싸움이라고는 모르는 순둥이 평화주의자였다. 둘 다 성격이 둥글둥글하고 아량이 넓어 그렇다고 굳게 믿었는데, 지금 보니 이는 초인적인 인내심의 결과였다. 주중에 떨어져 있기에 함께 있는 순간이 소중하고 애틋했으며, 이틀 뒤면 헤어지니까 감정을 터뜨리기보다 압축시키는 편이 합리적이었던 것이다. 내가 ‘이 직장은 이제 안 되겠다, 더는 안주하면 안 될 것 같다, 나의 열정과 영혼의 소생을 위해 공부를 시작해야겠다!’라 선언할 때도 아내의 뚜껑은 열리지 않았고 각오했던 싸움은 (싱겁게도)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내 결정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돈은 자기가 벌 테니 너는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한 그녀였다(진정 대인배 누님이시다).


   아직 가을학기가 시작되지 않아, 우리에게는 처음으로 온전히 함께할 시간이 많아졌다. 결혼한 지 1년 6개월 만에 진정한 결혼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저희 부부는 원래 잘 안 싸워요.”라고 떠벌렸던 자랑이 무색하게, 이틀에 한 번씩은 꼭 싸운다. 작은 생활 습관부터, 정치적 견해, 양가 부모님과의 관계, 소비습관까지 다방면에서 살벌한 전투를 한다.


   그제 밤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사소한 건으로 의견 대립이 있었고 서로 감정이 상했다. 어쨌든 일단 잠은 자기로 합의하고, (아내의 표현에 의하면) 나는 !’하며 돌아누웠다(사실 나는 오른쪽으로 자는 자세를 선호할 뿐이다). 옆에 있던 아내의 분노가 침대의 진동을 타고 그대로 느껴졌다. 잠시 뒤, 아내는 분이 덜 풀린 듯 방을 뛰쳐나갔고,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도 감정을 다스리고, 냉정하게 생각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겠지, 싶어 굳이 달래러 나가지 않았고, 가정의 기둥인 나라도 숙면을 취하고자 마음을 바꿔먹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아내가 씩씩거리며 안방으로 다시 들어와 침대에 몸을 푹하고 뉘었다.





   다음 날 아침, 늘 하던 대로 정성스레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부드러운 스킨십으로 아내를 깨웠다(주부 역할에 매우 충실하고 있다. 돈줄은 그녀가 쥐고 있으니까요.). 그녀는 피곤한 듯 조금 뒤척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일어나 씻으러 갔다.


   아침 식사 시간. 전투 후 첫 대면 협상이었다. 사실 난 터지는 웃음을 겨우 참고 있었다. 그녀가 지난밤, 왜 돌아왔는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거실은 사람이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더웠던 것이다.


   화를 주체하지 못해, 안방을 뛰쳐나간 아내는 거실의 찜통더위를 참지 못하고, 결국 에어컨이 켜진 안방으로 슬금슬금 들어왔다. 식사를 하며, 나는 더위에 굴복하여 자존심까지 판 게 아니냐고 아내를 놀렸고, 그녀는 반격으로 온몸을 비트는 과한 액션과 함께 을 외치며 나를 조롱해댔다. 그렇게 슬그머니 또 하나의 전투 능선을 넘었다.


   우리는 자주 싸우지만, 감정의 골이 하루를 넘지 않는다. 아내가 쿨한 성격이라 잠 한숨 자면 포맷이 된 듯 다시 애교를 부린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런 다툼의 시간이 싫지 않다. 그녀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과정이자, 자신을 알아가는 성숙의 시간이다. 이제야 결혼의 참맛을 느낀다. 서로 다른 두 우주가 만나 하나가 되었는데, 어찌 균열과 폭발이 없겠는가. 싸우면 싸울수록 그녀가 더 사랑스럽고, 그녀를 알아가는 매 순간이 행복하다.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혼 위기의 부부는 예외 없이 상대방을 너무 잘 안다고 주장하는 반면, 화목한 부부는 서로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상대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고.

.

   애석하게도 한동안은 전격적이고 지속적인 전투가 있을 것 같으나, 이 과정이 그렇게 힘들고 괴롭지만은 않다. 서로를 더 알아가는 통과의례라고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단지,





아내의 싸움 내공이 날로 강해져

그게 버거워지고 있긴 하지만.


꽤나 다정해 보이쥬?


* 2018.08.07.(화)에

  최초 작성한 원고입니다

** 매우 더웠던, 2018년의 여름이었죠.

    저는 정말 죽을 뻔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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