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한 블로거의 리뷰를 보고 아내와 함께 영화관을 찾았다. 원래, 블로그의 영화 리뷰는 참고만 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마침 비가 와서 아내와의 운전 연습을 미루니, 시간이 붕 떠버렸다. 그래서 바람도 쐴 겸 오랜만에 영화관에서에 본 「너의 결혼식」.
배우 예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승희 역의 박보영 님, 그리고 우연 역의 김영광 님.박보영의 탄탄한 연기력은 익히 알고 있었다. 반면 김영광은 처음 알게 된 배우다. 훌륭한 배우였다. 능글능청 맞는 표정, 남자의 야성, 그리고 과장된 대사와 행동을 작품에 잘 녹여냈다. 더군다나 입 꼬리가 활짝 올라가는 심쿵한 미소라니. 이미 스타인 박보영에게도 절대 밀리지 않는 내공을 선보이며, 존재감을 각인시켰고 둘의 케미는 폭발했다. 또한 친구 3인방. 배우 셋 모두 이렇다 할 필모가 없다. 신인 급 배우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돼 작품에 다양한 결의 윤활유를 칠했다.
훌륭한 첫사랑 영화였다. 이은선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건축학개론」의 성숙한 동생’ 같은 영화라고. 동의한다. 충무로 첫사랑 영화의 이정표인 「건축학개론」 만큼 아름다웠고, 오히려 능가하는 지점들도 있었다.
영화에는 절대적 악인이 없다. 우연과 승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사랑했고, 자신의 길을 갔다. 누구하나 손가락질 받을만한 잘못을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사랑은 언제나 타이밍이다.’ 란 이 영화의 상투적 문구가 공감되고, 마음이 한켠이 아려온다. 한 남자의 이별 영화임에도 나쁜 여자는 없다(개인적으로 「건축학 개론」에서 여주인공의 인성은 매우 안 좋았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미모가 이를 잠재웠지만).
심지어 대학생 승희의 남자친구였던 럭비부 주장도 바람을 피우는 것처럼 보이나, 바람이라고 단정 짓기에도 사실 애매하다. 모든 배역들은 우리네의 삶처럼 완전한 악인은 없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때로는 흔들리는 그런 평범한 인간들만 있었을 뿐.
영리한 영화였다. 현재와 과거, 더 이전의 과거를 능수능란하게 다층적으로 옮겨 다닌다. 그럼에도 혼란의 여지는 적다. 깔끔했다. 특히 승희가 아버지에게 갖는 트라우마를 초반부터 심도 있게 쌓아감으로써, 둘은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부여한다. 이별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우연의 실언은 하필 승희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나온다. 상처가 깊은 승희는 그가 좋은 남자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를 사랑하지만, 더 이상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환상 캐미를 보여준 박보영 님과 김영광 님. 전 이후로 김영광 님 팬입니다!!!
감초처럼 등장한 3인방 개그 친구들도 빼놓을 수 없다. 저마다 개성을 지닌 친구들이 때로는 각개전투로, 때로는 연합작전으로 관객들의 혼을 흔든다. 그러나 이들의 농담이 산만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스토리에 적절히 녹아져 있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근남의 ‘롤케잌’ 유머는 충무로 영화 역사에 남을만한 개그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아직도 난 낄낄댄다. 남자들, 우리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너의 결혼식」. 제목에서부터 어떤 자신감이 느껴진다. 찌질한 반전 따위는 개나 주고, 엔딩을 관객에게 던져주고, 영화를 시작한다. 우리는 결과를 다 알면서도 한 남녀의 첫 만남에 설렜고, 그녀가 떠날 때 아팠으며, 재회에 기뻤고, 그의 불운에 눈물 흘렸으며, 연인이 됨에 기뻤지만, 결국 이별에 울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사실을 이미 관객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영화에 매료되었다.
한 남자의 내적 성장에 관한 영화. 사랑했던 여자와의 아름답지만 질척였던 관계를 마음에 묻고, 온전히 여물어 가고자 하는 영화.
"당신이 있었기에,
내가 더 이상 비루한 삶을 살지 않고,
이렇게 성장했다.
그러니 떠나간 그대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나 역시 남은 인생을 열심히 살아내 볼게."
그렇게 한 명의 아이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이토록 치열한 성장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리고 유쾌하게 그린 영화.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좋은' 한국영화를 봤다.
오늘 아침, 혼지 산책을 즐기며 영화의 엔딩곡을 온전히 들었다. 박보영이 직접 부른 잔잔한 노래였다.
이 노래를 듣고 결정했다. 아니, 결정되었다.영화 리뷰를 반드시 남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직무유기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내 얘기 좀 들어봐」란 노래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줄곧 우연의 시각으로 진행되던 영화는 마지막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그 순간부터 노래인 척하는 그녀의 혼잣말이 흘러나오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어쿠스틱기타의 부드러운 음악은 그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나 역시 너를 사랑한다고. 근데 너는 왜 모르냐고. 너의 아픔을 보는 내 마음도 많이 아프다고.
우연의 시각에서 본 사랑과 이별을, 승희의 시각으로도 바라보고 싶은 이야기. 그런 아름다운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