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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무라면 Oct 07. 2018

문학을 외면하는 그대에게 (소설, 에세이 편)

가을은 독서의 계절(문학이 또 기가막히게 어울리죠)


     지금도 나는 가끔 생각한다.

     우리에게 인생의
     시험을 주는 이가 그 누구든,

     어떤 문제를 내더라도

     절대로 우리가 실패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이 문장을 보고 아찔한 충격을 받았다면, 그대는 문학을 즐길 기름진 토양이 있으신 독자라 감히 말하고 싶다. 이 충격적인 문장은 정유정 작가의 소설 7년의 밤의 첫 문장이다.


   흔히들 문학은 고리타분하다! 라 생각한다. 그럴 법도 하다. 우리는 문학을 너무 어렵게 배웠다. 교과서에서, 학원에서, 수업으로 배웠다. 수능 언어영역의 [문학 파트]로 배웠다. 작품에 온전히 스며들어, 마음으로 느끼는 문학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우리는 5개의 선택지 중에 ‘정답이란 괴상한 문구를 골라내야 했으니까.


   하지만, 문학이 고리타분하다! 라는 고정관념이 머릿속에 박혀있는 분들께 죄송하지만, 한 가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어쩌면 그대가 고리타분한 사람은 아닐까요?(‘어쩌면이다!!! 오해는 노노)



   자. 문학을 외면하는 그대에게 문학의 맛을 살~ 보여드리고자 이 글을 준비했다. 브런치의 세계에서는 꽤나 긴 여정이 될 수도 있다. 역시 문학은 고리타분한 거구만! 이라 느끼신다면, 부디 스크롤을 내려, LIKE 버튼을 누르고, 댓글로 욕을 실컷 퍼부어주신 후에, 뒤로 가주시기를 눌러주시기 바랍니다(저에게는 피드백이 중요하다기 보다, 댓글이 소중하니까요.ㅠㅜ)


   어느 정도 각오가 된 분이라면, 이제 긴 여행을 떠날 시간이다. 이왕 이 글의 서두를 소설의 서두로 시작했으니, 문학(소설, 에세이)의 서두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1. 문학 작품의 서두


아직 미혼인 남자가 재산깨나 좀 있을 경우에는 같이 지낼 아내가 필요할 것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진리이다.


-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소설



내 속에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 헤르만 헤세, 소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기 편치 않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엄청나게 큰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변신, 카프카, 중편소설


  어떠신가? 꽤나 인상 깊은 구절들이 아닌가? 문학 작품의 서두는 독자와의 첫 만남이다. 처음이란 언제나 큰 의미가 있다. 첫 수업, 첫 시간, 첫사랑까지. 문학 작가는 독자와의 첫 만남을 위해 이리도 치열하게 애를 쓴다. 슬슬 문학에 흥미가 생기신 분들은 이번엔 문학 작품의 제목으로 가보자(가이드를 잘 따라 오시라).



2. 작품의 기발한 제목


-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박민규, 단편소설, 이상문학상 수상자


- 미시시피 모기 때의 역습, 최민석, 단편소설,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


   피식하게 하는 꽤나 유머러스한 제목들이지 않은가? 고상한 문학에 딜도가 웬 말이냐(19!?). 더군다나, 느닷없이 모기떼의 역습이라니!(그것도 국산도 아닌 외제 미시시피 모기?!)


   진중한 문학적 가치가 훼손됐다고 느끼는 독자들을 위해 이번엔 인간의 심리를 심도 있게 묘사하는 작품으로 가보자.



3. 심리 묘사


   그는 어둠 속에서 잠든 동생의 고른 숨소리, 옆방에서 자고 있는 아버지의 마른기침 소리, 마당에서 암탉들이 겔겔거리는 소리, 모기들이 앵앵거리는 소리, 자신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리, 그리고 그때까지는 주위를 기울이지 않았던 세상의 온갖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어며 더듬더듬 옷을 입은 뒤 잠들어 있는 거리로 나왔다. (중략)


   그때 손 하나가 손가락을 활짝 벌린 채 어둠 속을 더듬거리더니 그의 얼굴을 건드렸다 그는 차라리 그렇게라도 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닥 놀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 손에 자신을 내맡긴 채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손이 잡아끄는 대로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 이끌려가 자신의 두 팔은 써먹을 도리가 없이,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옷이 벗겨지고, 감자 포대처럼 흔들리고, 오른쪽으로, 그 반대쪽으로 궁글려졌는데, 그 곳에서는 이제 더 이상 여자의 냄새가 나지 않았고, 대신 암모니아 냄새가 났으며, 자신의 다리가 어디에 있는지, 머리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의 다리인지, 누구의 머리인지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그짓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조차도 모르면서, 또 콩팥을 싸늘하게 훑는 듯한 느낌 뱃속이 텅비어 버린 듯한 느낌, 공포감, 도망치고 싶기도 하고 동시에 그 신경질나는 침묵과 무시무시한 고독 속에 영원히 파묻혀 버리고 싶기도 한 경망스러운 조바심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오래전부터 할 수 있었으면 하고 갈망했으나 실제로 할 수 있으리라 결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혼돈스럽게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의 얼굴을 기억해 보려고 했지만 어머니 우르술라의 얼굴만 떠오를 뿐이었다.


-백년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소설, 노벨문학상 작품



   이 부분은 한 소년이 사창가를 찾아가서, 첫 경험을 하는 장면이다. 가족들 몰래 새벽에 집을 빠져나오는 장면에서 그는 세상 모든 소리를 민감하게 듣는다. 소년의 조마조마하고 콩딱콩딱한 마음이 그래도 이해가 돼 고개를 끄떡끄떡하신다면, 그대는 훌륭한 문학 독자가 될 자질이 있다. 참고로 이 작품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 문장으로 요약 가능한 이 이야기를 소설가란 인간은 (쓸데없이) 이다지도 깊이 있게 묘사한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을 발견한다. 윗글에서 볼드체로 친 부분은 무려 한 문장이다. 이쯤 되면 소설의 세계가 꽤나 흥미롭지 않은가?(길을 잃지 않도록 잘 따라오시라)


    또한, 아시다시피 문학은 전통적으로 사랑을 노래해 왔다.



4. 사랑의 문학


   아우렐리아노는 레메디오스에 대한 사랑을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시로 표현했다. 그는 멜키아데스가 선물한 까칠까칠한 양피지에, 변소 벽에, 팔뚝에 시들을 썼고, 모든 시 속에 레메디오스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른한 오후 두시의 공기 속에 있는 레메디오스, 장미가 조용히 발산해내는 향기 속에 있는 레메디오스, 나방들이 뒤덮고 잇는 물시계 안에 잇는 레메디오스, 아침 방에서 솟아오르는 김 속에 있는 레메디오스, 어디에나 있는 레메디오수, 영원히 존재하는 레메디오스였다.


 -백년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소설, 노벨문학상 작품



   같은 작품이다. 한 소년이 사랑에 빠졌다. 레메디오스라는 이름의 그녀. 이 의미를 전하고자, 소설은 저리도 용을 쓴다. 그런데, 진정한 사랑에 빠져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꽤나 공감되지 않는가? 사랑에 눈이 멀어, 어디에나 존재하는 그().


   때론 문학은 거대한 우주를 창조하기도 한다.


5. 거대한 세계관


   반지 세 개는 하늘 아래 요정 왕들을 위한 것,


   일곱 개는 돌의 전당에 있는
   난쟁이 군주들을 위한 것,


   아홉 개는 죽을 운명의 인간을 위한 것,


   하나는 암흑의 왕좌에 앉은 암흑 제왕을 위한 것,

   그곳은 망령들이 지배하는 모르도르의 땅


   그 모든 반지를 다스릴 반지 하나,
   그 모든 반지를 찾기 위한 유일반지,


   그 모든 반지를 암흑 속에 가두기 위한
   반지는 유일반지뿐,


   바로 망령들이 누워 있는 모르도르의 땅에.


-반지의 제왕, J.R.R 톨킨, 소설
  (*판타지 문학의 시초)



   이 작품이 익숙하다면, 그대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이 영화를 본 독자는 기억할 것이다. 반지의 제왕이라는 그 엄청난 세계관을. 그러나 사실 영화는 본 소설의 극히 일부다. 실로 방대한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톨킨은 이 작품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내 생혈(life-blood)로 썼다.” 작품 내 엘프의 언어를 작가이자 언어학자인 톨킨이 직접 창조했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소설을 위해, 언어를 창조하다니. 심지어 문법적으로 완벽하고 이상적인 언어라고 한다(오 마이 갓)!!!


   모름지기, 문학이라고 하면 조금은 무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대들도 있을 수 있다. 좋다.



6. 깊이 있는 묵직한 문학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소설, 노벨문학상 수상자



   읽기만 해도 골치가 지끈거리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지 않은가? 만약에 세상사람 모두가 눈이 멀고, 단 한 명만이 볼 수 있다면 이란 상상의 가정에서 시작된 이 소설은 독자를 엄청난 혼란과 고민의 수렁으로 밀어 넣는다. 주제 사라마구의 환상적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수작이라고 한다(아이고 갑자기 두통이...).


   어려운 얘기는 후딱 지나가고, 이번엔 문학을 빛내는 반짝이는 기지를 구경하러 가보자.



7. 번뜩이는 기지


   “마감 날이 있는 인생은 빨리 흘러간다“는 것은 미국의 어느 저널리스트가 한 말인데,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다. 유식한 체를 해서 죄송하지만, 영어에서는 마감 날을 데드라인(dead line)'이라고 한다. 데드라인이라는 말에는 그 밖에도, 사선(死線 : 죄수가 이 선을 넘으면 사살당한다)’고 하는 의미도 있어서 이것은 일본의 마감 날보다는 훨씬 어감이 절실하다. 무시무시하다.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요즘 우리나라에서 자주 쓰이는 '소확행' 이란 개념은 사실,  그의 에세이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나오는 개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2006년 이후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훌륭한 작가다. 이 짧은 글만 봐도 문학가의 어떤 기지가 느껴지지 않는가? 죄수가 이 선을 넘으면 사살 당한다는 데드라인이라니... 나도 이 글을 제때 올리지 못하면 사살당하는 것인가, 하는 두려움에 잠시 떨어보지만, 누구도 나 같은 이를, 브런치에 글을 안 올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총살할 일은 없을 테니, 다시 여정을 떠나보자.


이번에는 내가 가장 소개하고 싶었던 문학의 개그적 요소이다.



8. 농을 치는 문학(전성기 개콘보다 웃기다)


   나는 똥개그 문학을 지향한다.


   현재 세계문학의 흐름은 지나친 엄숙주의에 빠져있다. 이건 모두 노벨문학상이 무게를 잔뜩 잡은 작품에 상을 계속 주기 때문이다. 독자는 노벨문학 수상작을 이해하지 못해 괴리감에 빠지고 있고, 이는 ‘인류복지에 공헌한 사람’보다는 ‘인류의 자괴감에 공헌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 아이러니를 낳고 있다.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하고, 비웃고, ‘이까짓 거 나도 쓸 수 있다’하는 만만한 글이 진정 인류의 복지에 공헌하는 것이다. 군림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용기를 주는 것은 더 어렵다. 스웨덴 왕립과학 아카데미는 나의 이러한 희생적 글쓰기의 자세를 지금이라도 주목하기 바란다.


-청춘 방황 좌절 눈물의 대서사시<노벨문학상에 대하여 1-스웨덴 왕립아카데미는 들어라> 최민석, 에세이



또한 때론, 이 같은 저질스런 개그를 하기도 한다.


   결혼 이 년차에 접어들면서 우리의 결혼 생활은 항로를 이탈했다(참고 : 아내는 스튜어디스다).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것이다. 원래 기내식처럼 요란하게 흔적을 많이 남기는 여자여서 곧 들통이 나고 말았다. 아내의 경고대로 안전벨트를 단단히 맸어야 했는데 나는 순진하게도 그녀를 철석같이 믿었다. 그 바람에 충격이 더 컸다.


   상대는 그녀가 다니는 피트니스클럽의 헬스코치였다. 말처럼 섬세한 근육과 말처럼 큰 성기로 여성 회원들을 여럿 홍콩으로 보내버린 바람둥이였다. 나는 나를 배신한 아내와 헬스코치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간통죄 폐지론자인 나로선 법이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까지 침범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불륜에 대해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되고 보편적인 응징을 방식을 택했다. 즉, 헬스코치를 좆나게 두들겨 패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그 잘생긴 얼굴을 ‘나주가리 씹빠빠’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생전 운동이라곤 숨쉬기와 술잔 들기 말고는 해본 적이 없는 내가 말처럼 강건한 사내를 어찌해볼 수는 없었다. 이때도 나는 역시 약자가 강자를 상대할 경우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되고 보편적인 방식을 택했다. 즉, 상대보다 더 강한 사람을 데려간 것이다. 그가 바로 오함마였음은 물론이다.


-고령화 가족, 천명관, 소설

     


  (나는 또 낄낄거린다. 나주가리 씹빠빠래ㅋㅋㅋ) 이걸 읽고도 피식조차 안한다면, 그대는... ... 너무 고상하셔서 웃음의 역치가 지나치게 높다... 라고 치고 넘어가자. 최소한 이쯤 되면, 문학이 만만해질 때도 됐다. , 이까짓 거 별거 아니네. 좋다, 일단은 계속 가자.


   때론 문학은 대놓고 구라를 치기도 한다.


   어제 네이버로부터 8월 첫째 주의 <지식인의 서재>에 출연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물론 거짓말이다. 서두를 거짓말로 시작하는 것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B급 소설가들의 전통 같은 것이다. B급 소설가로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적절히 해야 하는데, 쉽진 않지만 아무튼 꾸준히 제 살을 깍아가며 감내하고 있다.  


-청춘 방황 좌절 눈물의 대서사시, <지식인의 서재>, 최민석, 에세이


   소설이란 결국 구라다(에세이 역시 과장은 불가피하다). 지어낸 얘기일 뿐이다. 그러면 어떠한가. 최소한 독자는 거짓말쟁이는 아니다. 거짓말에 속는 순진한 영혼의 소유자일 뿐. 그 영혼은 분명 삶을 살아가는 데 꽤나 큰 재미와 흥미를 느낄 가능성이 높다.


   자, 그럼 이번에는 센스로 가득한 한 작품을 구경해 보자.


9. 산뜻한 센스


   단 것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쓸 만한 아이디어 하나 건지지 못한 채 뜬 눈으로 밤을 꼬박 샜을 때, 내가 콘셉트를 잡은 광고기획안 프리젠테이션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릴 때, 참을 수 없이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내 머릿속 난쟁이는 악다구니를 써댄다. 단 것을 달라고. 그럴 땐 초콜릿이 효과만점이다. 입 안에서 녹아내린 초콜릿을 달콤함이 심장을 달구고, 달궈진 심장이 피를 힘차게 펌프질해 뇌 구석구석까지 퍼올리면 내 머릿속 난쟁이도 거짓말처럼 온순해진다. 초콜릿 중에서도 아몬드가 씹히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씹히는 맛도 맛이려니와 견과류가 두뇌활동을 촉진한다지 않는가. 그리하여 내 책상서랍과 주머니에는 언제나 아몬드 박힌 초콜릿바가 동나는 법이 없다. 그를 처음 봤을 때도 내 머릿속의 난쟁이는 단 것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누군가를 대면했을 때 초콜릿 생각이 간절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별일도 다 있다 싶었다.)


   그는 출현부터 파격적이었다.  


-99%, 소설, 김경욱, 2008 현대문학상 수상


    단 것이 땡기는 그 순간을 참으로 그럴듯하게, 그리고 센스 있게 표현하지 않았나? 머릿속 난쟁이는 악다구니를 써댄다니(키득키득). 그리고 화자는 그런 난쟁이가 다시 난동을 피우게 한 유일한 인물인 를 만났다.


  산문은 때때로 센스 있게 시와 같이 통통 튀는 리듬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기회가 되시면, 아래의 글은 입으로 소리 내 읽어보길 권한다.


    유쾌한 사람은 농담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며, 상쾌한 사람은 농담에 웃을 줄 알며, 경쾌한 사람은 농담을 멋지게 받아칠 줄 알며, 통쾌한 사람은 농담의 수위를 높일 줄 안다. 고민스럽고 복잡한 국면에서, 유쾌한 사람은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할 줄 알며, 상쾌한 사람은 고민의 핵심을 알며, 경쾌한 사람은 고민을 휘발시킬 줄 알며, 통쾌한 사람은 고민을 역전 시킬 줄 한다. 유쾌함에는 복잡함을 줄인 흔적이, 상쾌함에는 불순물을 줄인 흔적이, 경쾌함에는 무게를 줄인 흔적이, 통쾌함에는 앙금을 없앤 흔적이 남아있다.


    우리는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유쾌해지고, 좋은 공간에 놓였을 때 상쾌해지며, 좋은 컨디션일 때 경쾌해지고, 지리한 장마처럼 오래 묵은 골칫거리들이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될 때 통쾌해진다. 나쁜 사람의 불행을 구경하며 우리는 유쾌하거나 상쾌하거나 경쾌해질 수는 없지만 통쾌해지기도 하는 걸 보면, 통쾌하다는 것의 쾌감이 위험한 수위에서 찰랑대는 감정임에는 틀림없다.


마음사전<유쾌:상쾌:경쾌:통쾌>, 김소연, 에세이



   저자는 시인이다. 즉, 이 글은 시인이 쓴 산문이다. 산문이지만, 소리 내 읽어보면 운율이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결국, 글이란 말을 표기한 것이다. 그렇기에 소리 내 읽을 때 그 자체로 어떤 재미를 느낀다면 그 이유만으로도 좋은 글로서의 조건을 하나 만족시키는 것이다. 글쟁이의 최고봉이라 하는 시인이 쓴 글이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오래도 달려왔다. 오늘의 패키지여행은 여기까지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았다. 원래 패키지는 몸이 힘들다. 빡빡한 일정은 패키지여행만의 매력이 아니었던가.


   이 글을 다 읽으니, 문학이 좀 말랑말랑해졌는가? 혹은 그렇게 고리타분하지만은 않네 라고 느껴지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제 만만한가?! 그렇담 나는 가이드로서 꽤나 성공했다.



   소박한 바람이 있었다. 비슷한 취미를 나눌 수 있는 한 사람이 더 생기기를. 그리고 문학에서 내가 느꼈던 아득한 재미, 희열, 감동, 웃음 그리고 공감을 어느 누군가라도 한번 경험해보길.


   미국의 작가 폴 오스터는 빵 굽는 타자기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의사나 정치가가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 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 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 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이쯤 되면, 사실 문학가 혹은 진정한 글쟁이들이 불쌍해지기 시작한다. 험한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글쓰기 말고는 도저히 이 처참한 삶을 살 수 없는 이들이 밀리고 밀려 문학 작가가 되는 것이다(눈물이 앞을 가린다. 깊은 연민이 느껴진다). 그러니 이 불쌍한 이들을 위해 그가 땀으로, 피로 쓴 글 한 조각 먹어볼 용의가 생겼는가?


    아, 하나 놓친 것이 있다. 이 글이 아무리 길어도 여기까지는 하고 가야겠다.



    문학은 때로, 그대들의 처절한 삶과 상처 깊은 마음을 담담하게 위로한다.






        지금도 나는 가끔 생각한다.


        우리에게 인생의 시험을 주는 이가
        그 누구든,


        어떤 문제를 내더라도


        절대로 우리가 실패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내 생애 단 한번<실패 없는 시험>,
                            장영희, 에세이









* 눈치마저 빠른 문학적 소양이

  훌륭한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 글의 진짜 부제는
  사실은 아내에게 이다.

  즉, 아내와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싶은

  한 비루한 남편의 간절한 편지인 것이다

  (흐미ㅠㅜ).



  세뇌는 될지언정, 설득은 당하지 않는다!


  라는 삶을 사는 우리 아내는

  (「아내와 강아지 에세이 참조),

  문학과 그닥 친하지 않다.


   사실 그녀는 영문학도였다.


** 또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아마 알아챘을 것이다.


   그렇다.


   이 글은 고(故) 장영희 교수님
헌정하는 글이다.


   혹여나, 발췌한 장영희 교수님의 글이 교조적이라 느끼는 독자가 있다면, 그런 마음은 고이 접어, 해운대 바다로 던져버리시길 권한다. 그럴 자격이 있는 분이시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글을 쓰신 분이셨고 문학의 아름다움을 전하고자 노력하셨던 분이다. 궁금하시다면 장영희 나무위키를 검색해 보도록.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을걸.


https://namu.wiki/w/%EC%9E%A5%EC%98%81%ED%9D%AC



그랬다. 사실 아내는 고(故) 장영희 교수님의 사랑하는 제자였던 것이다!(그런데 이 편지를 보니, 왜 눈물이 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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