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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무라면 Oct 15. 2018

상견례는 ‘처음’이라

이렇게 상견례를 해도 되는 건가요?


첫 만남,

그 무게감이 사람을 짓누를 때가 있다.


낯선 사람과의 조우.

그건 서로 다른 은하계들의 첫 접촉이기에,

융합과 포용이 될지

균열과 폭발이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건,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모.

     

태에서 낳고,

품안에서 보살피고,

사랑으로 양육했던,

눈도 못 뜨고 꼬물거리던

한 생명이 장성하여

낯선 이를 데려왔다.

그리고 그()와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 한다.

     

의례적으로 그들은 누군가를 대면해야한다.

     

그 낯선 이의 부모.

     

부모란 숭고한 존재에게도,

상견례는 여간 당황스러운 상황일 것이다.








   결혼 얘기가 솔솔 흘러나오던 2016년 3월 즈음의 이야기다. 매서운 추위가 따스한 봄바람에 산뜻하게 증발하던 아름다운 계절의 문턱이었다.


   두 달 전에 비해 극적인 변화가 하나 있었으니, 후드티와 스니커즈를 즐겨 입고 신었던 지질한 취업준비생이었던 한 청년은, 수트와 구두만이 패션의 완성이라는 허망한 고집으로 똘똘 뭉친 사회인이 되었다. 그건 인생 패러다임의 단절이자 확장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취업의 환희와 연인관계의 숙성과는 별개로, 결혼이란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1년 반 정도 시간의 풍화도 있었기에, 연애초기의 달달함은 다소 희석되었으나, 그 맛은 어느 정도 완숙한 풍미를 품게 되었다.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여자와 정말 결혼할 수도 있겠구나.’


때문에, 당시 입사동기들에게 이런저런 고민들을 털어놨지만(이러다 저 진짜 20대에 결혼 하는 거 아녜요?), 아직은 서먹해서 실질적인 조언을 받기란 여의치 않는 상황이었다.


   이쯤에서 나는 한 가지 중대한 실수, 는 아니지만 삶의 기로에서 큰 결정 하나를 하게 된다. 우리 부모님께 여자 친구를 소개시켜 준 것이다.


  이전에 미리 언지는 드렸다. 세 살 연상에, 직장인이고, 학교, 학과, 동아리 (대) 선배님을 만나고 있다 말씀드렸다. 꽤나 당황하셨던 분위기임을 감지했다. 허나 부모님께서는 한껏 날카롭고 아둔한 대한민국 취업준비생을 자극시키지 않으려는 지혜와 혜안이 있으셨는지, 당시에는 별다른 특이한 반응은 없었다.


   이제 나도 어엿한 사회인이다, 혹은 능력 있는 남자다, 라는 걸 부모님께 자랑이라도 하겠다는 심리였는지, 그녀를 정식으로 인사드리고 소개시키는 자리를 마련했다(그리고 이 날이, 조회수 1만6천 회를 찍었으나, 구독자 증가수 3을 기록한 희대의 문제작. 「아내와 강아지」 사건의 그 날이기도 했다. 궁금하면 링크로).




https://brunch.co.kr/@rhanfkaus/13




   정식으로 아내를 부모님께 소개시키고 나니, 거대한 물줄기에 휩쓸린 것처럼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을 경험하게 되었으니, 우리의 상견례가 그랬다.


   황당하게도 우리 커플 및 양가 부모님은 사전에 아무런 약속도 없이, 당일에 번개 상견례를 했던 것이다.


   3월의 어느 주일, 나와 여자친구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마침 대전에 계시는 여자친구 어머님께서(지금은 장모님이시) 일이 있으셔서 서울에 오셨다는 사실을 여자친구를 통해 들었다. 이후의 상황은 내 역량으로는 유려하게 쓸 자신이 없으므로, 시간 순으로 정리해 보겠다.




1. 어머님께서 여자친구에게 서울 온 김에, 남자친구 한 번 볼까? 제안하심

 (몇 달 전에 처음으로 만나 뵐 기회가 있었다)

2. 잠시 뒤, 여자친구 어머님께서 아예 이참에 우리 부모님과 차 한 잔 하는 것은 어떨까? 여쭤보심

3. 그 소식을 듣고, 나는 우리 부모님께 의향을 여쭤봄

4. 갑작스러운 소식을 전해 들은 우리 부모님께서는 대()긴장!

5. 서울까지 먼 길 오셨는데 차만 마시는 것은 실례가 아닐까, 식사는 어떻시냐고 나에게 물어보심

6. 그 사실을 여자친구에게 전달함

7. 여자친구가 부모님께 의견을 구함

8. 대전에서 이 상황을 관망하고 계시던 여자친구 아버님(장인어)께서 불현 듯 이런 생각을 하심

    어랏, 나만 서울 올라가면, 사돈이 되실 분들과 만날 수 있겠네!’

9. 여자친구 아버님께서 서울행을 결정하심

10. 우리 부모님과 나는 비상이 걸림

    * 참고로 나는 전날 파마를 해서 힙한 컬(curl)을 유지하기 위해 당일, 머리도 안 감았다.

11. 시급히 서울역에서 멀지 않은 상견례 장소를 물색하고, 안국의 한 일식집 예약

12. 3시간 후, 당사자 6명의 참을 수 없는 그 무겁고 알싸한 자리, (번개) 상견례의 엄숙한 시간을 갖게 됨





   대한민국 결혼의 역사에서 이와 같은 번개 상견례의 사례가 이전에도 있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임은 분명해 보이고, 모든 일이 긴박하게 흘러갔으며, 기어이 당일 상견례를 마쳤다. 위의 1번-12번까지는 불과 6시간 만에 진행되었다.


   상견례 시간은 겪어본 사람들만 알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따님이 있으셔서, 얼마나 자랑스러우시겠어요?”

   아직 모자란 점이 많습니다. 점잖은 아드님 든든하시겠어요~”



   이런 유의 어색하고 훈훈한 대화가 약 2시간 동안 진행된다고 보면 된다. 흠흠...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번개) 상견례는 별다른 문제없이 무사히 끝났고, 그렇게 우리 커플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 자리에서 대략적인 결혼 날짜와 장소, 비용 등이 결정되었으므로(양가 부모님께서 참으로 호쾌하시다).


   돌이켜 보건데, 나름 유쾌한 에피소드였고, 어차피 했을 결혼, 탄력 받았을 때 후다닥 급속도로 추진한 것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을뿐더러, 강력히 드라이브를 걸어주신 양가 부모님께 감사하다.


   다만, 그 때의 일을 떠올릴 때마다 드는 상념은,






  ... 우리 부모님이나

  장인어른, 장모님께서도

  적잖이 당황하셨겠구만.


  역시 처음이란 언제나 어려워.

  어른들께서도 아직도 종종 상견례

  얘기를 하시는 것을 보면,

  그분들도 상당히 진땀을 빼신 것 같구만.








   양가 부모님, 감사드립니다(꾸벅).

   저희 부부 앞으로도 

   알콩달콩 잘 살아보겠습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 공경하겠습니다.


   2세를 위해서 필사의 

   전투적 노력을 다 하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 생각은 되고요.


   그러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부부금슬은 매우 좋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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