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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무라면 Oct 27. 2018

결혼반지를 잃어버렸다. 1화

결혼반지 로스트 비긴즈

* 2018.8.8.(수)에 직접 겪은 경험을 에세이화 한 실화임을 알립니다.

** 본 글의 초안은 사건 당일날 작성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난처하다. 
   조금 전 난생처음 경찰서를 다녀왔다.


   오전에 가방을 잃어버렸다. 그 안에는 보물 7(노트북 / 이름 : 치타 무늬 냄비받침)가 들어있다. 그래서 이 글은 지금 PC에서 작성 중이다.


   어제부터 3일간 서울 여행 중이다. 모바일 메모장에는 서울 여행으로 저장되어 있어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 3일간 병원 치료도 받고, 글쓰기 수업도 듣고, 친구 집에서 1박 숙박을 하며 회포도 풀고, 맘껏 책도 읽고, 홀로 철야 찜질방을 즐기며, TED 현장 강의도 듣는 알찬 여행 계획이 있었다. 어젯밤 수업을 마치고 왕십리역 근처의 친구 집에서 맥주 한 잔 하고 알찬 하루를 마무리했다. 편안한 잠자리에서 숙면을 취한 후 상큼한 마음으로 기상, 온전한 독서의 환희를 만끽하고자 교보문고 강남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가는 길에 <별책부록 : 그때 그 시절 만화 주제곡> 시리즈 제3편, 보노보노에 대한 에세이를 구상하기 위해 관련 자료도 검색하고,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했다. 동시에 메모장에 수시로 샘솟는 아이디어를 기록했다. 제목은 “<보노보노>, 삼천포를 헤매는 삶에서, 지름길을 찾고파로 정하고, 만족스러운 네이밍에 뿌듯했다. 시대의 역작이 탄생하리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호기롭게 단락 구조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신논현역 역내 벽면에 기대어 GS25에서 산 김밥(아침)을 먹고(이 와중에도 보노보노의 철학적 의미 라는 동영상을 시청), 교보문고에 입성하기 직전이었다. 그때 알아챘다.





내 어깨가 허전하다는 사실을.





   가능성은 크게 세 가지였다. 왕십리역-선정릉역 열차에서 놓고 내림(분당선), 선정릉-신논현역 열차에서 놓고 내림(9호선), 김밥 먹다가 놓고 감. 먼저 김밥을 먹었던 역내 벽면을 확인했지만 없었고, 곧장 분당선 분실물 센터에 연락해 대략적인 열차 탑승 시간, 탑승 열차 칸, 탑승 위치 등을 전달했다. 아차, 노약자 보호석 위 편 짐칸에 가방을 올렸던 사실이 기억났다. 더운 날씨에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위로 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신논현역 안내센터로 가서 CCTV를 확인했다. 09:53, 게이트를 지나가는 나의 모습을 확인했다. 어깨에는


가방이 없었다(보노보노 동영상에 집중하는 나의 표정이 CCTV에 고스란히 찍혀있었다).


   GS25의 CCTV도 확인했지만 역시 가방은 없었다. 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에 9호선 분실물 센터에도 가방 수색 요청을 한 후에는 기다림 이외에는 할 수 있는 행동이 없었다. 의외로 마음이 편해졌다. 노트북은 비록 보물 7호라 하더라도 5년 넘은 구식 기기였고, 그 밖에 책 3권, 처방받은 약, 그리고 세면도구가 가방에 들어있었다. 찾으면 좋겠지만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내 인생에 지대한 타격은 받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꽤나 가벼운 마음으로 교보문고로 향했다(찾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


   오전이라, 빈자리가 많았다. 나는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보노보노와 같이 솔직한 삶을 살자, 라는 책의 메시지에 공감하려는 그때, 우연히 나의 왼손을 보게 된다.






마땅히 있어야 할 반지가 없다.


결혼반지 역시
가방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오늘 아침, 친구 집에서 담소를 나누며 반지를 가방에 넣었다(곧 샤워할 예정이었으므로). 내 인생에 지대한 타격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보이자 등 뒤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아내와의 첫 만남부터 어제 아침 출근하던 모습까지 지난 4년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머리를 스쳤다(물론 3일 전 대판 싸운 살벌한 추억까지도). 곧장 경찰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 상황이 이러하다, 경찰에게 도움을 받을 수는 있냐, 분실물 수사협조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공권력에게 할 수 있는 정당한 요구인가 등을 물었다. 지금 당장 경찰서에서 분실물 접수를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현직 경찰의 의견에 따라 뜨거운 공기를 가르며 가장 가까운 파출소로 달렸다(정말 더운 날이었다).


   처음 가본 경찰서는 드라마에서 보던 대로였다. 넓지 않은 칙칙한 공간에 경찰 10명이 옹기종기 잡담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보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가방과 노트북은 잃어버려도 내 삶에 큰 지장은 없으나, 결혼반지는 그렇지 않다, 기혼자는 이해하지 않느냐, 감정에 호소하기도 하고, 기억하는 정확한 경위를 최대한 논리적으로 말씀드렸다. 접수되었단다. 일단 2~3일 기다려보고, 그래도 찾지 못하면 경찰서에서 사건접수(점유이탈물횡령죄)를 할 수 있다는 친절한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PC방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몇 년 만에 와본 PC방인지라 한참을 어버버 하며 헤맨 후에서야 동정심이 발동된 여성 알바님의 안내를 겨우 따라 회원가입을 하고, 선불 요금을 무인기기에 삽입하고(5천원), PC를 부팅시키고, 무료 한글 프로그램 체험판을 다운받고 나서야 비로소 이 글을 시작했다. 그리고 56분 만에 여기까지 왔다.


   이미 아내에게 모든 보고는 끝냈다. 결혼반지가 그 가방 속에 있다는 1급 핵심 비밀정보는 제외했지만 말이다. 기다릴 수밖에 없는 나의 처지가 처량한 한여름의 오후가 아닐 수 없다. 이방 땅에서 신의 가호가 있기를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선교사의 심정을 나는 낯선 월드와이드 웹 영역으로 향하는 시공간의 포털 -

     

PC에서 느끼고 있다.


간절한 기도








* 2편에서 계속됩니다.

** 2편 3편으로 갈수록 반전에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총 3부작의 대서사시입니다.






* 이렇게 힘들게 탄생한 글이 바로 이 에세이입니다.  


https://brunch.co.kr/@rhanfkaus/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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