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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무라면 Oct 28. 2018

결혼반지를 잃어버렸다. 2화

결혼반지 로스트크 나이트


* 2018.8.8.(수)에 직접 겪은 경험을 에세이화 한 실화임을 알립니다.

** 본 글의 초안은 사건 당일 밤에 작성되었습니다.

*** '결혼반지를 잃어버렸다.' [1화] 를 먼저 읽으시길 권장합니다.

       https://brunch.co.kr/@rhanfkaus/40









   나는 지금 심란하다.
   가방과 결혼반지의 행방이 묘연하다.


   신논현역 PC방에서 글을 작성한 후 향했던 곳은 강남경찰서였다. 분실 지하철역이 강남경찰서 소관이라 사건 접수를 원할 시, 그쪽으로 가야 한다는 파출소 경찰들의 친절한 조언을 따랐다. 오후 6시라 그런지, 경찰서는 어수선하지 않고 조용했으며,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어떻게 오셨냐고 묻는 (위압적이지만 든든한)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사건 접수를 원한다 했다. 이 시간까지 유실물 센터에 물건 접수가 안 된 거는 점유이탈물 횡령일 가능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에 그분들도 동의하셨다.


   그러나 여기보다는 이수역에 있는 서울 지하철수사대로 가는 것이 수사에 유리할 것이라는 세심하고 현실적인 조언도 덧붙였다. 강남경찰서에서 접수해도 어차피 지하철수사대로 이관된다고 한다. 난생처음 경찰서에 출입한 날 세 군데의 다른 경찰서를 가야 하나, 라는 생각에 잠시 머리가 지끈거렸으나 절박함을 연기하면서 마지막으로 하나만 여쭤봤다.


“저기요... 형사님, 혹시...
핸드폰 충전 10분만 가능할런지요?

헤헷... 충전기도 가방에 있었어서요.
지금 3%로 남았네요. 헤헷”


더도 말고 딱 10분을 충전하고(10분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의 마지노선이었다) 도망치듯 나오면서 보니 무려 12% 가 되어있었다.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다는 근원적 욕구 충족의 만족감이 몰려왔고, 흡연자 경찰님들 무리에 껴서 생각도 정리할 겸 앞으로의 계획을 후딱 정리했다.


   이수역은 매우 넓었다. 총신대입구역이랑 이수역은 과연 같은 역인가 하는 엉뚱한 고민은 뒤로하고 지하철 수호자들의 커멘드센터, 지하철수사대를 찾았다. 한참 헤맨 후 발견했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과 무릎에 억지로 힘을 밀어 넣은 채 입구에 들어섰다. 정적이 흘렀고,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내가 들어왔는지도 인식 못 했다).

저기요...
, 어떻게 오셨나요?

...


지하철 수사대!!!




   진술서를 쓰고 있다. 



   초등학생 때 다녔던 아동 글짓기 교실, 중학교 2학년 시절 서오릉에서 했던 교내 사생대회, 학교 대표로 참석한 고등학생 교외 논술대회, 대학 입시를 위한 논술 학원, 대학교에서 쓰던 각종 레포트, 아내의 마음을 훔치고자 썼던 수많은 연애편지, 전 직장에서 작성했던 다수의 보고서, 그리고 현재 수강하는 최민석의 글쓰기를 위한 본격적인 잔기술 수업까지 지금껏 학습했던 모든 글쓰기의 역량이 뇌와 손가락에 집중되어, 수사대의 분위기마저 압도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내가 진술서를 쓴 30여 분의 시간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옆에 계신 형사님께서 육하원칙에 따라, 어쩌구 저쩌구... (멍청하게 가방을 분실한)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초중고 시절 교내 글쓰기 대회에서 단 한 번도 입상한 경력이 없지만, 운 좋게 고등학교 같은 대학교에 입학하여, 독후감 8개를 써야 졸업 자격을 부여받는 학교를 결격사유 없이 졸업했고, 마음을 담은 편지로써 도도한 여자(아내)의 마음을 완벽히 훔쳤고, 자소서 하나로 신의 직장이라 하는 공공기관에 당당히 입사했으며, 근무하던 2년여의 기간 동안 무려 300여 개 이상의 기안을 했고, 퇴사 후 무려 12편의 에세이를 쓴 사람이니, 정신 사나운 말씀은 잠깐 거둬두십사 말하지는 못했지만, 표정만큼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 최치원으로 빙의한 듯 집중하여 진술서를 썼다(고 어렴풋이 기억한다). 사실관계에 근거하여 수사하는데 용이하도록 최대한 객관적으로 작성했지만,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누군가가 해당 물품을 가져가지 않았다면 당일 지하철 유실물 센터에서 발견되어야 하는 게 자연스럽지만, 그러지 않았고, 누군가가 놓인 물건을 가져갔다는 합리적 의심이 듭니다. 우선 결혼반지가 있는 가방을 다시 찾는 게 우선이고, 나아가 가져간 이의 처벌을 원합니다.’ 그리고 진술서를 읽은 형사님 왈.




“어떻게 가방을 안 메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죠?”
(진심이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네. 저도 이런 적은 처음이고요, 지갑 한 번 잃어버린 적는 사람입니다. 굳이 변명하자면 희대의 역작이 될 나의 글, '<보노보노>, 삼천포를 헤매는 삶에서, 지름길을 찾고파' 에 너무 열중하고 있었을 뿐이고, 이제야 역사에 남을 위대한 천재들이 왜 멍청한 실수들을 했는지 이해가 될 뿐입니다, 라는 말이 목구멍으로 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몰랐습니다...  정신이 딴 세계에 가있어서요... 죄송합니다. 헤헷...”(긁적긁적)


   그때, 친구가 헐레벌떡 지하철수사대로 왔다(놀리러 온 건지, 진정 걱정되어 온 건지는 오직 그만이 알 것이다). 시시콜콜한 잡담과 함께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당초 오늘 밤은 찜질방에서 느긋하게 사우나를 즐기며 밤을 지낼 예정이었으나, 혹시나 왕십리 친구 집에 가방을 놓고 나왔을 희박한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친구의 양해를 구하고 다시 그쪽으로 갔다. 친구는 연수 중이라 집에 없었고, 나는 집 앞에 있는 친구의 소포(청소기)를 집으로 들여놓고는, 집 안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역시나 없었다.


   착잡한 마음에 깡소주를 들이켜던 내게 담당 수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른 분인 것 같았다. 다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잘 부탁합니다, 제게는 너무나 소중한 물건이거든요, 하는 감정 호소도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 경찰 친구에게 있었던 일을 보고하니, 그 친구가 하는 말.


“내가 이 사건을 맡았다면, 범인 찾기 힘들다고 윗선에 보고할 거다. 특정자가 없는 이 사건은 아무리 명탐정 코난이라도 범인을 잡기 어려울 거야...

 코난이 대한민국 국민의 기대치를 너무 올려놨어...”


코난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도 있나요...?ㅜㅠㅜㅠ "범인은 바로... 당신이얏!!!"


   결혼반지까지 잃어버렸다고 이제는 아내에게 이실직고해야 하나 라는 내적 갈등에 고뇌했지만, 페이스 톡을 하며 오히려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아내의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나는 애써 밝은 표정으로 얼떨결에 사랑한다.’ 고 말해버렸다. 기회는 떠났고 마땅히 해야 할 말은 끝내 하지 못했으며, 밤은 이미 깊었다.


   신이시여, 당신의 눈이 바라보는 영혼에게, 당신의 마음이 향한 그곳에 나를 보내주소서.


라는 선교사의 진심 어린 기도가 집주인도 없는 작은 오피스텔에 기거하던 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간절한 기도








* '결혼반지를 잃어버렸다' 라는 장대한 대서사시는 내일 업로드 될 최종화 '결혼반지 로스트크 나이트 라이즈'로 마침표를 찍을 예정입니다.

** 과연 고무라면은 이 일생일대의 위기(!?!?!)     
     어떻게 극복했을까?

     과연 극복은 되는 일이란 말인가?


https://brunch.co.kr/@rhanfkaus/42


ㄷㄷㄷ 무시무시한 사진;;; ㅠㅜㅠ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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